1년 만의 복직신고
공감 사무실까지의 출근길을 참 좋아합니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면서부터 느껴지는 안국역 특유의 정취, 오른쪽엔 창덕궁 돌담을, 왼쪽엔 원서공원을 두고 한참 걷다 보면 점점 가까워지는 빵 굽는 냄새, 그렇게 낡은 극장 건물에 도착해 3층 계단을 냅다 뛰어 올라가면 있었던 사무실.
매일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갔던 공감 사무실이 한순간에 그렇게 까마득하게 느껴질 줄이야. 지난 해 7월 두 다리를 모두 다쳐 걷지 못했던 제게 출근길의 아름다웠던 구간들은 잔인하게 길었고, 높았고, 멀었습니다.
다시 공감 사무실로 돌아오기까지 꼭 1년 걸렸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당연하게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제한되는 경험을 하며, ‘내가 소수자가 되어버린 현실’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짧은 시간 공익변호사로 일하며 항상 소수자의 입장에 대한 공감과 역지사지를 강조해 왔지만, 정작 내가 이렇게 예상하지 않은 방식으로 갑자기 소수자의 입장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나 봅니다.
‘다치니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승차를 위해 힘들게 올라야 하는 계단을 없앤 저상버스들이 있었고, 지하철역들은 최소 한대 이상의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구비하고 있었습니다. 사용자 재량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나 병가나 휴직을 허용하는 회사가 있었습니다. 그간 치열하게 진행되어 온 장애인 이동권 운동, 노동자 권리 운동의 결과였습니다.
한 번도 나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제도의 수혜자가 되고서야, 아주 오래 전부터 이러한 운동에 함께 해 온 공감의 활동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참 감사했습니다. 아직 쟁취하지 못한 권리들도 보였습니다.1) 그리고 장애인, 저소득층, 비정규직 노동자, 난민, 이주 노동자, 성소수자, 감염인, 여성 – 당장은 나의 상황과 무관해 보이지만, 이렇게 우리 사회의 모든 소수자의 권리를 끊임없이 이야기하다보면 후에 내가 또 어떤 소수자의 모습이 되던 나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아직 계단 이용이 자유롭지 않고 장시간 걷는 것도 어렵기에, 복귀 후의 출근길이 예전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나의 활동이 언젠가 어느 취약한 상황에 놓인 누군가에게 혜택으로 가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출근길의 그 어떤 풍경보다 더 강한 원동력이 되어 저를 설레게 합니다.
1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한결같이 응원하며 기다려주신 공감 동료들께 고마운 마음을 담아, 침대 맡에 써 붙이고 매일 보았던 문구로 복귀신고를 마칠까 합니다.
“겨울은 반드시 봄을 데리고 온다. 인생도 그러하다”
1) 그래서 이 투쟁들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평등열차에 탄 사람들 – ‘지하철 단차 장애인 차별구제청구소송 항소를 제기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코로나19로 갈 곳을 잃다
▶임신하려면 직장을 그만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