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09 명의 영덕군민이 원전유치에 대한 의사를 표명한 날
2015년 11월 11일과 12일 양일간 영덕에서 원전유치 찬반의사를 묻는 주민투표가 시행되었다. 주민투표는 원래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실시하고 선거관리위원회가 관리하여야 하나, 영덕군민들이 직접 실시하였다. 과연 어떻게 된 일인가.
발단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말 당시 영덕군수는 영덕군의회의 동의절차만을 거치고 원전유치를 신청하였다. 신청서에 399명의 주민 의견 동의서가 첨부되어 있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지기 직전이었다. 이후 정부는 2012년 영덕군 영덕읍 일대를 원전건설 예정구역으로 지정ㆍ고시하고, 2027년까지 원전을 짓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정작 주민들 사이에서는 원전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아만 갔다.
「주민투표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주민투표 실시를 청구하려는 주민은 주민투표청구인대표자를 선정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청구인대표자증명서 교부를 신청한 후, 대표자 명의로 일정 기간 안에 주민투표를 청구하려는 주민들의 서명을 일정 수 이상을 모은 후 주민투표 실시를 청구할 수 있다. 이에 영덕군민들은 핵발전소찬반주민투표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2015. 7. 7. 영덕군수에게 청구인대표자증명서 교부를 신청하였다. 그러나 영덕군수는 같은 달 21일 원전유치가 국가사무라는 중앙정부의 입장에 따라 주민투표를 시행할 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청구인대표자증명서의 교부를 최종 반려했다. 주민들의 의사를 묻지도 않겠다는 입장을 확고히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자체적으로라도 주민투표를 시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관의 협조가 없다보니 투표권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는 선거인명부가 없었다. 결국 주민들이 신분증을 지참하고 현장에서 등록한 후 투표에 참가하는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선거인명부를 사실상 현장에서 작성한 셈이다. 일일이 주소지를 확인해서 해당 투표소 관할인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약 7천 명에 달하는 부재자는 명단과 소재를 파악할 방법이 없어서 부재자투표가 아예 불가능했다. 게다가 정부와 지자체는 주민투표를 노골적으로 방해하기 시작하였다. 2015. 11. 5.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다음의 내용이 포함된 ‘영덕군민에게 그리는 글’을 발표했다.
11월 초 영덕원전유치 찬반 주민투표에 참관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일정상 11월 11일 수요일 오전에만 참관하기로 하고, 영덕읍 1,2,3 투표소를 배정받았다. 10일 밤 영덕에 내려가면서 비로소 보통 영덕대게라고 할 때의 영덕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원전이 들어설 경우 이제 더 이상 영덕대게라 부르지 못하게 되겠구나, 원전이 유치되면 지역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된다는 것은 대체 어디서 나온 말일까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밀려왔다.
다음날 새벽 투표소로 향하는 길의 양쪽 면은 현수막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주민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현수막 옆에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불법투표 하지 말자”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주민들의 의사를 묻는 것도 불법이란 말인가. 찬성 쪽이든 반대 쪽이든 주민투표 하자고 얘기해야 맞는 게 아닌가 다소 의아스러웠다.
영덕읍 1투표소에서 6시 투표개시선언과 함께 투표가 시작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투표하러 온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누군가에게 항의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남성이 투표소 앞에 차를 세워놓고 투표하러 온 주민들을 촬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민의 항의에 일단 자리를 피하는 듯했지만, 얼마 후 다시 나타났다. 투표소 근처에 집회신고를 했다고 하면서도 어디에 신고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결국 경찰이 와서 촬영이라든지 위화감을 조성하는 행위에 대해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돌아갔다. 영덕읍 2투표소는 영덕시장 옥상주차장에 설치되어 있어서인지 상대적으로 평온한 듯했다.
3투표소로 향했다. 영덕읍 3투표소에 도착하니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투표소 앞 삼거리에서 경찰차와 검은색 차량이 서로 대치하듯 마주 보며 정차하고 있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마스크를 쓴 남성들이 검은색 차량에 앉아서 투표소를 촬영하는 바람에 투표하러 왔다가 그냥 간 주민도 있어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이 와도 꿈쩍도 안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검은색 차량은 심지어 주행 역방향으로 세워져 있었다. 투표소 관계자와 함께 경찰차 쪽으로 가는 순간 오히려 경찰차가 차를 빼려는 듯 후진하기 시작했다. 출발하기 직전 경찰차를 멈춰 세우고 불법주정차하고 있는 차량도 규제 못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경찰관은 그제야 차에서 내려 검은색 차를 탄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을 했고, 검은색 차량은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런데 얼마 후 길 건너편 저만치에 마스크를 쓴 남성 4~5명이 다시 나타났다. 이들은 보슬비가 내리자 우비를 꺼내 입어가며 투표가 진행되는 내내 투표소를 주시했다. 촬영 외에도 투표하러 온 주민들의 수를 집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원을 알 수 없지만(“한수원 직원”으로 알고 있는 주민도 있었지만, 공기업에서 마스크를 쓴 남성들을 내보내어 주민들을 감시하게 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투표소 안에 찬성, 반대 측 투표참관자리가 마련되어 있었음에도, 굳이 밖에서 위화감을 조성해가며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2투표소로 향했다. 그런데 거기서도 투표소 앞에 주차된 차량에서 누군가가 블랙박스로 투표소를 촬영하고 있다가 발각된 해프닝이 벌어졌었다는 얘기를 듣고 어안이 벙벙했다.
이틀간의 주민투표는 11월 12일 20:00 최종 마감되었다. 그런데 결과는 놀라웠다. 11,209명이 투표에 참여하고, 이 중 91.7%인 10,274명이 원전유치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관의 협조가 없었기 때문에 총 유권자수도 정확히 파악된 바가 없지만, 지난 지방선거 기준으로 볼 때 부재자 7000여 명을 포함한 총유권자 3만4432명 중 10,274명이 “불법투표”라는 유치 찬성 측의 대대적 선전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이틀 동안 일부러 주민투표소를 찾아가서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할 것인지, 아니면 이제라도 존중하고 미래지향적인 해결책을 찾을 것인지, 공은 이미 정부와 지자체에 넘어갔다.
글_박영아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