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위헌소원 변론기 1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11일, 형법 제269조 제1항의 자기낙태죄 조항과 형법 제270조 제1항의 업무상 승낙낙태죄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고, 2020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는 내용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습니다(2017헌바127 형법 제269조 제1항 등 위헌소원 사건). 공감은 2017년 8월부터 이 사건 청구인의 대리인단에 참여하여 형법 제269조 제1항의 위헌 변론계획 수립과 변론 준비, 2018년 3월 변론요지서 제출, 2018년 5월 공개변론, 선고 직전까지 의견서 제출 과정을 함께했습니다. 헌법재판소 결정문 정본이 대리인단에 송달되지 않아 결정의 자세한 내용은 결정문 정본을 송달받은 후 공감 뉴스레터 ‘공감 포커스’에서 다룰 계획입니다(이하에서 인용하는 헌법재판소 결정은 선고기일에 낭독된 결정문과 헌법재판소 공보관실에서 발송한 보도자료를 기초로 한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공감 포커스’에 앞서 한국 여성인권사에서 기념비적인 결정으로 평가받는 이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기까지의 변론 준비 과정을 돌아봅니다.
변론
발견
이 사건의 청구인은 산부인과 의사로, 임신한 여성의 촉탁이나 승낙을 받아 낙태했다는 공소사실(업무상 승낙낙태)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청구인은 이 재판 중에 청구인에게 적용된 형법 제270조 제1항(업무상 승낙낙태)과 이 조항이 전제로 하는 형법 제269조 제1항(자기낙태죄)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면서 ‘법원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해달라’는 신청을 법원에 했으나 법원은 청구인의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그래서 청구인은 2017년 2월 헌법재판소에 직접 두 법률조항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심판(낙태죄 위헌소원)’을 청구하게 되었습니다.
이 위헌소원 사건이 공익소송으로 발굴된 것은 우연과 필연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7년 7월, ‘성과 재생산 포럼’에서 활동하던 한 변호사의 눈에 ‘낙태죄’를 다룬 짧은 기획기사 마지막 단락에 ‘지난 2월 낙태죄에 대한 위헌소원이 다시 제기돼 헌재에서 심리 중이다’라는 구절이 들어온 것입니다. 낙태죄로 기소된 여성은 매년 한 자리 수에 그치고(검찰 통계 1993-2012년), 업무상촉탁낙태죄로 기소되는 의사를 포함한 남성과 여성은 합쳐도 두 자리 수를 넘지 않을 정도로(대법원 사법연감 2006-2016) 낙태죄 사건은 희소합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원이 제기된 사건이 있으니, 2012년 합헌 결정 이후로 다시 낙태죄의 위헌성을 다투어볼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기사를 읽은 변호사는 이 사건 변론을 같이할 대리인단을 모으는 한편, 사건 당사자(위헌소원 청구인)를 찾아 공익소송으로서 변론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대리인단
신문기사로 사건을 찾은 변호사와 함께 ‘성과 재생산 포럼’에 참여하고 있는 변호사, 한 국회의원실과 모자보건법을 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법률로 전면 개정하는 법률안을 준비하던 변호사, 2013년 낙태죄로 기소된 여성 공동변호인단이었던 변호사, 낙태죄에 관한 학위논문을 준비했거나 위헌 변론에 참여의사가 있는 변호사, 젠더 이슈에 관한 국제 논의와 국제인권규범에 해박한 변호사가 대리인단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성인권 사안에 정통하면서도 국회의원 선거 1인 1표제, 호주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사건에서 위헌이나 헌법불합치결정을 받아 헌법재판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가 대리인단에 합류했습니다. 공감도 2013년 활동의 연장선에서 위헌소원 대리인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대리인단 소속 변호사들은 모두 어떤 책무감을 가지고 선고까지 최고의 협업을 해 나갔습니다.
준비
대리인단은 헌법재판소의 공개변론이 필요하다고 보아 공개변론기일 신청을 하고 헌법재판소의 답을 기다리면서, 정기적으로 모여 변론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염두에 둔 것이 있습니다.
대리인단은 이 사건의 변론을 준비하면서, 지금까지 형법상 ‘낙태죄‘에 관해 나온 한국의 모든 논의와, 최신의 국제적 흐름을 담으면서, 동시에 여성이 임신, 출산, 양육 과정에서 경험하는 현실을 모두 변론에 담겠다는 암묵적인 목표가 있었습니다.
2012년의 낙태죄 합헌결정 분석을 시작으로, 2013년 법원에서 기각되었던 낙태죄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서, 낙태죄를 다룬 연구논문, 학위논문, 학술대회 발표문, 도서 등 현재까지 출판되거나 발표된 거의 모든 문헌을 대리인단 변호사들이 나누어 검토했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발주한 연구용역보고서나 형사정책연구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같은 국책 연구기관에서 발표한 실태보고서나 연구보고서, 입법평가보고서, 검찰과 대법원의 통계도 훑어 보았습니다. 비교법으로, 국제인권법의 관점으로도 접근했는데, 국가 단위로는 이미 위헌결정을 받은 외국의 판결례를, 지역 단위로는 미주나 유럽과 같은 지역 인권재판소 결정례를 검토하고 변론에 참고할 수 있는 내용을 논의했습니다.
법리 구성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임신, 출산, 양육 과정에서 여성이 경험하는 현실을 어떻게 변론에 담을 것인가였습니다. 임신 지속 또는 중단의 결정 과정이나, 임신과 출산 이후의 양육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해서 헌법재판소가 명확히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위헌 여부에 대한 심사를 하기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학에 한정하지 않고 임신으로 인한 여성 신체의 생물학적․의학적 변화, 임신과 출산 이후의 가족, 노동, 양육, 사회보장의 현실 중 여성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핵심 사실에 관하여 산부인과 서적부터 연구보고서와 통계를 활용해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임신 중단의 상황에 대해서는 임신중단(낙태) 자체가 범죄였기 때문에 정보가 극히 제한적이었지만 2010년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임신중절수술 병원 고발 이후 재생산권 이슈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이후부터 쌓인 공개발언과 인터뷰, 기사, 연구논문에 인용된 사례, 여성단체가 상담한 사례 유형을 정리해서 미성년자, 미혼여성, 장애가 있는 여성, 성폭력 피해 여성, 성매매여성 등의 사례를 조사하고 20여 개의 사례 유형을 변론요지서 전체에 걸쳐 상당한 분량으로 직접 인용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런 변론의 방향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상당한 영향을 **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헌법상 임신과 출산에 관한 자기결정권의 의미가 더 깊어졌습니다. 지난 2012년 낙태죄 합헌결정(2010헌바402)은 임신․출산에 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자기운명결정권의 일종으로 ‘임신과 출산에 관한 결정, 임신과 출산에 과정에 내재하는 특별한 희생을 강요당하지 않을 자유’로만 풀이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2017헌바127)은 이에서 한 걸음 나아가 ‘여성이 존엄한 인격권을 바탕으로 하여 자율적으로 자신의 생활영역을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고, 여기에는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신체상태를 임신상태로 유지하여 출산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결정할 권리가 포함’되어 있고, ‘임신․출산․육아는 여성의 삶에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므로, 임신한 여성이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신체적․심리적․사회적․경제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 결정’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또 헌법재판소는 자기낙태죄 조항의 과잉금지원칙 위반 여부를 심사하면서 이른바 ‘낙태갈등 상황’으로 십여 가지의 상황을 예시하기도 했습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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