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인 듯 혐오 아닌 혐오 같은 것 – 국제결혼중개업 온라인 광고 규제 필요
광고인 듯 광고 아닌 광고 같은 것
이국적인 베트남의 공원 분수, 유람선에서 즐기는 야경, 해산물 요리를 먹여주며 데이트하는 모습, 신혼 부부나 커플의 일상을 담은 듯 한 유투브 영상. 브이로그인가? 뭐지. 실제로는 오늘 맞선을 보고 매칭에 성공한 연인을 보여주는 국제결혼중개업체의 광고 영상입니다. 검색창에 국제결혼을 검색하면 관련 동영상을 여럿 볼 수 있습니다.
결혼중개업법 상 국제결혼중개업 광고는 등록된 업체만 할 수 있고, 광고를 게시할 때는 등록번호를 기재하여야 하지만 어딜 봐도 업체가 직접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추가 정보를 얻고 싶다면 접속할 수 있는 카카오톡 채팅방 주소나 네이버 밴드접속 링크가 화면 아래 기입되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짧은 자기소개가 담긴 이주여성의 인터뷰 장면도 흔한 플롯입니다. 나이, 직업, 가족관계, 한국으로 시집가고 싶은 이유 등을 물어보면 여성이 답을 합니다. 이 여성에게 질문을 던지는 남성은 누군지, 몇 살인지, 직업은 뭔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건지… 할 수 있다면 화면 안에 들어가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국제결혼중개업 광고 규제 방안 모색을 위한 모니터링 사업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이주여성지원단체로, 국제결혼중개업체의 광고 행태에 대한 연구와 실태조사를 진행해 왔습니다.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사거리에서 볼 수 없게 된 것도 단체의 꾸준한 실태조사와 문제제기 덕분입니다. 최근에는 국제결혼중개업 광고가 정보 통신 매체를 이용해 다양한 형태의 영상으로 떠도는 것을 보고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졌고, 국제결혼중개업 광고 모니터링 사업을 기획하였습니다.
공감도 사업에 참가하여 기획에서부터 모니터링단 교육, 이주민 당사자 그룹인터뷰, 보고서 작성 및 보고회까지 함께했습니다. 현행 결혼중개업법 상 금지된 차별적 광고의 내용과 이 규제 근거로 적발이 용이치 않은 이유에 대해 간략히 분석했습니다. 제도적 규제가 실효성이 있기 위해서 규제 대상을 더 세분화하고 다양한 유형의 광고에 빠르게 대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차별 혐오 표현에 대한 법적 제동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차별· 혐오 표현, 소수집단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 재생산
광고로 넘기기엔 과하게 불쾌한 표현물입니다. 규제가 필요한 차별 혐오 표현이란 무엇일까요? 끊임없는 논의가 필요한 문제입니다. 누가 하는 말이냐, 누구를 대상으로 하냐, 어디서 어떻게 전달되느냐, 누가 들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노골적 혐오 표현은 덜하지만, 서사의 전제는 언제나 이주여성에 대한 왜곡된 일반화와 대상화입니다.
국제결혼 광고에서 억지로 만들어낸 ‘정상성’은 너무 많은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남성과의 나이 차이나 언어불통은 운명적 사랑(실제로는 짧은 단체 맞선으로 맺어지는 상업적 매칭)으로 포장됩니다. 남성의 장애유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지적장애 남성과 이주여성의 성혼사례를 자랑합니다. 카메라에 등장하지는 않는 자는 “요즘엔 이렇게 젊은 분들도 국제결혼은 많이 하세요”, “한국여성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국제결혼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바뀌고 있죠”라고 말합니다. 선주민 여성에 대한 알 수 없는 비교에 이어 국제결혼이나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으라고 설득합니다.
이주여성에 대한 편견만 재생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선주민 이주민 가릴 것 없이), 장애인, 종교, 국적 등에 대한 섣부른 일반화가 난무합니다. 어떤 집단에 대한 칭찬이나 배려인 듯 보이지만, 결국 반대집단을 비하하거나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내용입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속기 십상입니다. 모니터링의 어려움이기도 했습니다. 모니터링 단에 속한 이주민 여성도, 선주민 여성도 각기 다른 맥락에서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한 감정을 토로했습니다.
왜 그것이 문제인지, 섬세한 논의 필요
모니터링 보고회에 참석한 결혼이주여성 한 분이 손을 들고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이 온라인 수업을 많이 듣다보니 엄마의 나라(국적)에 대한 검색을 할 기회도 많아지고 하니 엄마는 아빠랑 어떻게 결혼했느냐는 질문을 듣는데, 이런 광고를 아이들이 볼까 걱정이다.” 문제적 광고들이 단순히 소비자를 향한 광고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해악이 되는 이유입니다.
결국 무엇이 왜 차별이고, 어떻게 혐오가 되는가에 대하여 끊임없는 논쟁을 통해서 우리는 차별과 혐오에 대해 겨우 알아차리곤 합니다. 정부 차원의 꾸준하고 꼼꼼한 모니터링과 실태 조사가 필요한 이유겠습니다. 더 나아가, 광고의 존재 필요성에 자체를 의심할 필요도 있습니다.
한국에 거주 중인 베트남, 캄보디아 출신 결혼이주여성들에게 광고를 보여 준 후 나눈 인터뷰에서 “이런 광고를 굳이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국제결혼중개업체를 통해 입국한 분들조차 이런 광고가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는지 몰랐다는 반응도 있었고, 자신이 인터뷰한 내용도 혹시 자기도 모르게 퍼지고 있는 것 같다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소비자(내국인 남성 소비자로서 국제결혼중개업 이용자를 의미) 보호 차원에서 입법된 결혼중개업법은, 필연적으로 중개서비스 광고를 명목으로 이주여성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내용의 광고의 존재를 정당화합니다. 국제결혼 피해자로 자칭하는 한국남성이 이주여성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유튜브 채널을 버젓이 운영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법률을 통해 국제결혼중개업 광고를 허용하면서 형식적 내용규제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차별· 혐오적 표현들에 익숙해지는 것을 경계하면서, 광고의 존속 자체에 대한 진지한 의문을 던져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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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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