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 제10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 다큐멘터리 “Unsettled(언세틀드)” 관객과의 대화
조금 늦었지만, 지난 11월 11일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에서 성소수자 난민에 대한 다큐멘터리 “Unsettled(이하 ‘언세틀드’)” 상영 뒤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한 소식을 전할까 합니다.
2020년 11월 5일부터 11일, 서울 명동의 CGV 씨네 라이브러리에서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가 진행되었습니다.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는 우리나라, 그리고 세계 각국의 다채로운 성소수자의 삶과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경험케 하고자 2011년부터 매년 개최되어 올해 제10회를 맞이한 국제영화제입니다.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의 ‘오픈프라이드’ 섹션은 다양한 가치와 권리에 대한 영화를 소개하여 공존과 연대의 가치를 실현하는 섹션인데요. 올해 영화제는 “난민”을 주제로 하여, 국경을 넘는 성소수자 난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총 7편의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상영하였습니다.
그중 ‘언세틀드’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국가에서 생명의 위협에 이르는 박해를 받고 새 삶을 찾아 미국에서 난민신청을 하게 된 4명의 성소수자 난민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카메라는 앙골라, 르완다 출신의 레즈비언 여성 커플, 시리아 출신의 게이남성 그리고 콩고 출신의 트랜스여성 – 이 네 명의 미국 정착과정을 따라갑니다. 국적, 인종, 병력 등 각기 다른 배경을 갖고 있는 이들의 공통점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가족으로부터, 이웃들로부터, 테러집단으로부터 박해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이 미국으로 오게 된 경위도 다양합니다. 어떤 이는 유엔난민기구에 의해 난민지위를 부여받고 미국으로 재정착하였고, 어떤 이는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왔지만 신청을 통해 난민지위를 취득하여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이민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직전인 2016년 미국에서도 가장 성소수자친화적인 도시로 알려진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주인공들 모두는 난민지위유무에 관계없이 여러 난관에 부딪힙니다.
처음 보금자리를 제공한 스폰서 가정에서의 체류기간이 끝났지만 적절한 거주지를 찾지 못하고, 고정적인 일자리가 없어 하루하루 겨우 살아가는 상황에서 난민신청을 조력할 변호사를 만나기까지 대기만 수개월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실 이런 모습은 한국의 난민신청자들과 꼭 닮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들 중 커플은 법원에서 난민인정결정을 받고, 한 명은 결국 공공임대로 안정적인 주거를 찾고 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가게 되었으며, 또 다른 한 명은 저명한 성소수자인권활동가로서 자리를 잡는 등 한국의 현실에서는 부럽기만 한 모습들도 있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는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인 김조광수 감독님의 사회로, 평소에도 공감과 많은 활동을 함께 하는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AP)의 김영아 대표와 제가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관객들분들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주신 질문들 중에는, 성소수자인 난민들이 그 이중적 소수자성으로 인해 본국과 난민 신청국에서 겪는 어려움을 정확히 이해한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성소수자난민을 지원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는지, 한국에서 성소수자성으로 인해 다른 나라로 가야했던 난민이 있는지, 트럼프 정권에서 성소수자난민에 대한 인정률이 어떠했는지 등등.
특히 미국에서 난민지위를 얻어야 했던 레즈비언 커플이 법정 기일에 앞서 ‘사생활 침해적인 질문이 있을 수도 있다’라는 변호사의 말에 긴장한 모습에 대한 질문이 기억납니다. 물론 변호사가 ‘모두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 하지만 생사가 걸린 난민지위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대답을 거부할 용기를 가지기란 힘든 일이겠지요.
실제로 한국에서도 법무부, 법원을 불문하고 성소수자 난민의 심사과정에서 난민심사와 무관한 사생활 침해적 질문들이 수차례 보고된 바 있습니다. 난민신청자들에게 마지막 희망이나 다름없는 난민지위 심사과정에서 또 다른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약 한 시간 반에 걸친 소통 끝에 관객과의 대화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언세틀드’라는 단어 자체가 ‘정착되지 않은, 정착하지 못한’이라는 뜻으로, 본국에서도 그리고 재정착하고자 하는 국가에서도 정착하기 힘든 성소수자의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나라도 성적지향으로 인한 난민신청을 난민사유로서 인정하고는 있지만 정작 난민으로 인정되는 사람은 손에 꼽습니다. 공감이 만나는 난민 신청자들이 모두 적절한 심사를 거쳐 다큐 속 주인공들처럼 ‘Settled – 정착한’ 삶을 향한 여정을 시작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면서 영화관을 나섰습니다.
김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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