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감

# 성소수자# 인권

1과 2 사이의 거리 – [승소] 생식능력 제거 없는 성별정정 첫 허가

“신청인 겸 사건본인의 가족관계등록부 중 성별란을 여에서 남으로 정정함을 허가한다.”

 

한 트랜스 남성이 주민등록번호 뒷 자리의 시작번호 2를 1로 변경할 수 있게 되었다(실제로는 4에서 3지만 상징적 의미에서 2와 1로 표현) . 2와 1 사이. 그 사이를 건너기 위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법원의 허가 결정을 처음 알렸을 때 당사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요?”라고  몇 번이나 반문 했을 정도로 놀란 것 같았다. 대리인인 변호사도 믿기 어려운 결과였다. 

 

그는 성별 정체성 혼란으로 오랫동안 힘들어했다. 고통을 숨기는 것이 어려워졌을 때, 가족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며 커밍아웃을 했고, 부모님과 여동생을 설득해야 했다. 성전환증 진단,  호르몬 투여를 시작했고, 양쪽 유방절제 수술을 마쳤다. 목소리가 굵어지고 여성적인 몸의 굴곡도 사라졌다. 월경이 멎었다. 이대로 호르몬을 장기투여 할 경우 일시적으로 호르몬을 중단하더라도 월경은 돌아오지 않을 확률이 높다. 

 

친구들은 그를 ‘남자’로 보고 함께 생활했으며, 공공장소를 이용할 때도 학원에 다닐 때도 ‘남학생’으로 통했다. 하지만 ‘남성적인’ 용모에 가까워 질수록, 당사자의 몸과 마음이 안정됐지만, 신분증명은 갈 수록 어려워졌다. 시간제 일자리를 구하는 것 조차 쉽지 않았고, 수험생활을 거쳐야 하는 진학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신분확인이 필요한 병원, 은행, 학교에서 원치 않는 커밍아웃(실제론 아웃팅)을 각오해야 했고 , 누구와 관계를 맺건 설명할 준비를 했고, 항상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이대로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었을까(혹은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성별을 결정하는 것은 생물학적 성별 뿐 아니라 사회적 성별도 평가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있었지만,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사무처리 지침(가족관계등록예규, 이하 ‘지침’)에서 요구하는 요건을 모두 구비하려면 ‘몸을 만들어야’ 했다. 생식능력 제거와 외부성기성형수술 여부를 증명하는 자료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난소와 자궁을 적출하고 남성성기의 외형을 갖출 때라야 법원에 성별정정 허가 신청을 할 수 있는 상황. 수술 부작용으로 걷지 못한다는 괴담, 소변보는 일이 힘들다는 괴담… 수술이 두렵기도 했다. 그는 이런 수술을 강제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문제제기를 하고자 했다. 그렇게 한 트랜스남성(이하 신청인)이 공감으로 찾아왔다. 

 

공감은 2006년 대법원 판결 이후 마련된 허가 기준인 지침이 지나치게 엄격한 요건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문제지적을 해왔다. 2013년 외부성기성형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남성에 대해 법원의 허가 결정을 받아내기 위해 적극 활동하기도했다. 작년에는 지침의 요건들이 단순 ‘참고사항’으로 개정되었다. 인도적 차원의 완화된 심사를 기대했으나, 상황은 안 좋아졌다. 여전히 법원별로 상이한 평가 기준이 적용되는 것 같았고, 때로은 모멸적인 질문으로 수모를 겪거나, 때로는 엄격한 요건 검토로 트랜스젠더의 대다수가 법적 성별정정을 신청조차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원치 않는 과도한 외과 수술을 강행하기 위해 안정성과 전문성도 증명되지 않은 수술에 엄청난 비용을 지출하거나 건강상 부작용을 얻는 위험을 부담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 신청인의 1심 사건의 준비서면을 작성하면서 2006년 이후 트랜스젠더에 대해 여러 연구가 있었고 그들의 존재를 질병이 아닌 ‘상태’로 의학적 정의가 변경된 것을 확인했다. 성전환수술의 필요성과 욕구의 개인차 대한 의학적 평가에도 변화가 있었다. 장기적 호르몬 투여로 인한 생식능력 상실 및 신체건강에의 영향 등 의학적 연구 결과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외국의 경우 외과적 의료조치 강제의 인권침해성을 고려해 오히려 외과수술 강제를 금지하는 입법례가 늘고 있고, 여러 판례를 통해 사생활의 자유, 신체의 자유 등의 기본권 침해가 확인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국내 트랜스젠더 인권에 관한 실태 조사를 포함하여 트랜스젠더 인권단체와 활동가, 의료 /보건 전문가들의 진심 어린 활동 결과물을 통해 법적 성별정정없이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 트랜스젠더에게 법적 성별정정이 우선 필요한 이유를 강하게 주장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1심 결정은 기각. “신청인에게 여성으로서의 신체 일부가 남아있다”는 한 줄 이유였다. 해당 요건을 요구하는 것의 문제에 대해 법원은 답이 없었다. 1과 2의 거리는 이렇게 멀고 잔인했다. 주저없이 항고했다. 항고심의 결론은 달랐다. 

 

“신청인이 여성으로서 생식능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그렇다고 하여 남성으로의 전환이 신분관계의 안정성을 해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

 

“외부성기수술은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 대상이 아니어서 비용이 많이 들고,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고난도의 수술로 건강상 위험과 상당한 후유증을 감수하여야 한다”

 

“자궁적출술과 같이 생식능력의 비가역적인 제거를 요구함은 성적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하여 신체의 온전성을 손상하도록 강제하는 것으로서 자기결정권과 인격권,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등을 지나치게 제약하는 결과가 된다”

 

법원이 그의 삶에 다가와 구체적 생애를 살폈기에 가능한 판단으로 생각된다. 오랜 호르몬 투여로 인한 생물학적 성의 변화, 사회관계를 통해 승인된 사회적 성별, 당사자의 진지하고 오래된 고민의 결과로 재전환 가능성이 낮다는 결론.

 

지침이 당연한 요건이라는 전제, 요건에 대한 기계적 해석과 일률적 적용, 1과 2사이의 깊은 절벽으로 트랜스젠더들을 밀어넣는 행위다. 차갑고 잔인하다. 

 

이번 항고심 결정은 그가 깊은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고 건널 수 있게 손을 내민 것이다. 법원은 지침이 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된 만큼, “위와 같은 요소가 성별정정의 필수요건이라고 해석하기도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이 부분에서 단순히 이 사건의 신청인 뿐 아니라 수많은 ‘신청인들’의 손을 더 꽉 붙잡아 주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창백한 흰 배경에 검은 글자가 나열된 결정문일 뿐인데 36.5 만큼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수능시험을 앞둔 신청인은 많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됐다. 학교를 다니고, 친구를 사귀고, 취업계획을 세우고, 10년 뒤, 20년 뒤의 일들을 꿈꾼다. 더 많은 트랜스젠더가 1과 2 사이의 깊은 어두움과 외로움에 빠져 괴롭지 않도록 법원의 구체적 타당성에 입각한 합리적(이고 따뜻한) 판단을 기대해 본다. 

 

특히 올해 유난히 추운 봄을 견뎌야 했던 이들(트랜스인권활동가, 동료들)에게 오랜 활동을 이어온 것에 대해 감사를 전한다. 이번 결정을 통해 위안과 응원을 전하며, 공감과 함께 사건을 진행 중인 다른 ‘신청인들’에게도 잠시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관련기사]

경향신문 / 법원, ‘생식능력 제거’ 없는 성별 정정 첫 허가···“신체 손상 강제 요구 지나쳐”

 

백소윤

# 여성인권# 성소수자 인권

연관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