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을 국적에 따라 차별하는 이상한 나라의 이주선원
W는 35톤 어선에서 일하는 이주선원노동자였습니다. 그는 2018년 말 조업 중 양망기에 손이 빨려 들어가며 손등과 손가락이 골절되는 재해를 입었습니다. 치료가 완료된 후에도 장해가 남았습니다. 이에 그는 산재급여를 신청하였습니다. 법상 어선원재해보상보험을 국가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수산업협동조합(수협)은 W의 산재급여 산정의 기준이 되는 임금으로 2019년 기준 월 1,762,800원을, 2020년 기준 월 1,862,240원을 적용하였습니다. 그런데 20톤 이상 선박에서 근무하는 선원의 최저임금은 2019년 월 2,153,720원, 2020년 월 2,215,960원이었습니다. 나아가, 어선원의 재해보상 시 적용되는 월 고정급의 최저액과 승선평균임금은 2019년 기준 각각 월 2,545,380원과 4,454,410원, 2020년 기준 각각 월 2,618,940원과 4,583,140원이었습니다. 20톤 이상 선박에서 일하는 어선원은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이 아닌 선원법의 적용을 받고, 최저임금은 선원법 제59조에 따라 해양수산부장관이 고시하는데, 최저임금이 이처럼 시급이 아닌 월급 기준으로 정해지는 등 체계가 근로기준법이나 최저임금법과 다르고 금액 또한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수일 또는 수주에 걸쳐 선박에 승선해서 일을 해야 하는 업무특성, 그리고 특히 어선원의 경우 업무의 강도, 위험성과 근로환경이 육상노동보다 월등히 열악하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에 공감은 공익법센터 어필, 화우공익재단,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소속 변호사들과 함께 W를 대리하여, W의 산재급여를 산정함에 있어 어선원의 재해보상 시 적용되는 월 고정급의 최저액과 승선평균임금을 적용하지 않았음이 위법함을 이유로 수협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2022.1.19. 서울행정법원은 W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했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22. 1. 19. 선고 2021구단51099). 당연한 결론인 것을 왜 법원의 판결까지 요했을까. 한마디로 설명하면, 해양수산부장관이 외국인선원에 대해서는 “최저임금”을 선원노동단체와 선박소유자단체 간 “단체협약”으로 정할 수 있도록 위임했기 때문입니다. 임금의 법정 최저기준을 사인인 제3자 간의 합의에 맡겨 놓은 것입니다.
요컨대 해양수산부장관은 매년 선원 최저임금을 고시하는데, 이주어선원은 이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하고, 선원노동단체인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선원노련)과 선주단체인 수협 간 합의로 정해진 임금 최저액의 적용을 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 수준은 어선원 최저임금을 현저히 밑돌고 있습니다. 관행상 어획고 또는 수익의 일정비율을 나누어갖는 생산수당 또는 비율급이 어선원 임금의 큰 부분을 차지하여(그러나 이 또한 한국인 어선원에 한정된 얘기입니다), 선주단체는 물론, 선원노동단체 또한 이주어선원의 임금이 낮게 유지되는 것에 대해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해양수산부의 최저임금고시는 최저임금 외에 어선원의 재해보상 시 적용되는 월 고정급의 최저액과 승선평균임금을 정하고 있는데, 대법원은 이미 2016년 이주어선원의 재해보상시 산정기준이 되는 임금 최저액을 한국인 선원과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16. 12. 29. 선고 2013두5821). 해양수산부의 최저임금고시가 이주어선원의 재해보상 시 적용되는 월 고정급의 최저액과 승선평균임금에 관해서 단체협약으로 달리 정할 수 있도록 위임한 바가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대법원 판결은 이주어선원에 대해 최저임금이 아닌 단체협약으로 정한 임금 최저액을 적용토록 한 부분에 대해 직접적으로 판단하지 않았으나, 적어도 산재급여와 관련 이주어선원에 대한 차별에 제동을 건 것입니다. 그런데 선원노련과 수협은 대법원 판결을 따르기는커녕 2018년 “이주어선원 최저임금”을 재해보상시에도 적용하는 내용의 추가적 합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합의를 근거로 계속해서 이주어선원에게 차별적 산재급여를 지급해 왔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의 이번 판결은 2016년 대법원 판결과 같은 취지로, 최저임금고시가 어선원의 재해보상시 적용되는 월 고정급의 최저액과 승선평균임금까지 단체협약에 달리 정할 수 있도록 위임하였다고 해석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판결에서 특히 의미가 있는 것은, 한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부가의견에서 “최저임금이라 함은 일에 대한 정당한 보수의 최저선을 정한 것으로서”, “위임의 한계를 일탈하여 외국인 선원에 대하여만 이 사건 단체협약 등으로 최저임금을 정하도록 한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한 부분입니다. 이주어선원의 최저임금을 다시 단체협약에 재위임한 최저임금고시가 선원법 제59조의 위임을 벗어난 것임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판결문에서 직접적 판단의 근거가 아닌 사항에 대해 부가의견을 밝히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법원이 보기에도 재위임을 통한 이주어선원에 대한 최저임금의 차별적 적용이 반드시 바로잡을 필요가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주어선원에게도, 공감에게도 이 소송은 끝이 아니고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