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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시간강사# 취약 노동

0시간 계약 시간강사

“강사 월급은 교수의 10분의 1밖에 안 된다. 학교 입장에서는 교수 안 뽑고 실력 있고 실적 좋은 강사들에게 10분의 1 임금만 주면서 논문 실적을 쌓고 ‘노오오력’하라고 희망고문하는 쪽이 열 배 이득이다.”

소설집 ‘저주토끼’로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가 주간경향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정보라 작가는 11년 간 모교인 연세대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일을 하다가 2021년 말 사직했습니다. 그리고는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퇴직금, 주휴수당, 연차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헀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대학은 그의 강의시간이 주당 15시간 밑이었기 때문에 퇴직금과 주휴‧연차 수당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정보라 작가는 강의 시간 외에도 강의 준비, 학생 지도, 과제 평가 및 시험, 행정 업무를 하는 등 쉴 틈 없이 일을 했다며 일한 시간만큼의 보상을 원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참고로 퇴직금, 주휴‧연차수당은 주 15시간 이상 근무해야 인정됩니다.

공교롭게도 정보라 작가 소송이 언론에 오르내릴 때 공감도 시간강사를 대리해서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상대는 국립대학입니다. 의뢰인은 경상국립대학교의 시간강사였습니다. 경상국립대학은 학생 수 감소 등을 이유로 의뢰인에게 2022년 1학기 강의를 배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강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급여를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실업 상태에 빠진 의뢰인은 면직이라도 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경상국립대학은 2022년 8월 말까지 임용 기간을 채워야 한다는 이유로 이마저도 거부했습니다. 결국 의뢰인은 아무런 소득 없이 6개월을 보낸 채 2022년 8월 말 퇴직했습니다. 공감은 의뢰인을 대리해서 대학에 휴업수당 청구의 소를 제기했습니다. 대학측의 사정으로 일을 못한 것이니 근로기준법상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입니다.

전임교수와 시간강사의 처우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전임교수는 강의를 안 해도 또박또박 월급이 나옵니다. 그러나 요즘은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고 합니다. 전임교수라도 강의를 안 하면 임금을 일부 토해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강의를 하지 않는 시간에도 연구, 학사 업무를 하기 때문에 전임교수에게는 일정 수준의 임금이 보장됩니다.

그러나 시간강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시간강사는 강의를 안 하면 소득이 없습니다. 시간강사 역시 연구를 해야 합니다. 연구를 해야 학문적 성과를 내고 강의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간강사 역시 학생 지도, 과제 평가 등의 학사 업무를 합니다. 정식 교수로 임용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차이만 있을 뿐 시간강사 역시도 여타 교수와 다를 바 없이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시간강사에 대해서는 오로지 강의시간만을 일한 시간으로 봅니다. 즉 <시간당 강사비x강의시간>으로 계산해서 임금을 지급합니다. 시간강사에게는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없습니다. 강의 준비시간도 근로시간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이 역시도 강의 1시간에 1~2시간을 추가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임교수와 비교하면 매우 부족합니다. 강의를 준비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결국 강의시간에 연동해서 추가 근무를 일부 인정 받는 것이기 때문에 강의 시간이 매 학기 변동하는 시간강사 입장에서는 임금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시간강사들 중에는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뛰어 소득을 보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학생 수 감소, 수업 감소로 인해 강의 확보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합니다. 모든 노동자들이 그러하듯이 시간강사에게도 안정적인 소득과 삶이 필요합니다. 강의 여부를 떠나 일정한 월급, 안정적인 소득은 모든 노동자에게 필요한 최저한의 기준입니다. 기본급이 없이 강의시간에 따른 임금만 지급하는 지금의 체계는 문제가 많습니다.

참고로 최근에 경상국립대학이 답변서를 제출했습니다. 대학도 시간강사인 의뢰인에게는 아무런 잘못이나 책임이 없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대학원 학생 수가 줄어 강의 신청자가 줄어들었고 부득이 폐강했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업수당은 지급할 수 없다고 합니다. 애초에 강의시간만큼만 급여를 지급하기로 계약했으니 소정 근무시간을 전제로 하여 계산하는 휴업수당이라는 것을 상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즉 대학은 근로계약을 유지하더라도 근무시간을 0시간을 정할 수 있으며, 여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0시간 계약이기 때문에 휴업수당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외국에서는 0시간 계약에 대한 논의가 많은데 우리의 경우 이런 계약 형태에 대한 논의가 없어서 법원이 어떻게 판단할지 알 수 없습니다.

청구금액은 극히 작지만 사실 매우 어려운 소송입니다. 그러나 시간강사들이 지금처럼 불안정한 삶에 내몰리도록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 가운데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제안해 주셔요. 시간강사들을 위해 함께 싸우면 좋겠습니다.

윤지영

# 취약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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