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인권법캠프 참가후기
‘여기, 사회의 소외되는 이들을 도우며 따뜻한 시선을 멈추지 않는 변호사 모임이 있습니다.’
‘공감 공익인권법재단’(이하 ‘공감’)에 대해 먼 훗날 누군가가 소개를 남긴다면, 이런 글귀로 시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더 나은 첫 문장은 이미 세상에 많다. 카이사르가 남긴 <갈리아 원정기>에서는 ‘갈리아는 전체가 세 지역으로 나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천병희, <갈리아 원정기>, 숲, 2012, p.22.]라거나, 단테의 <신곡 – 천국편>에서 ‘모든 것을 움직이시는 그분의 영광은 온 우주를 가로지르며 빛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더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덜하다’ [단테 알리기에리, 박상진, <신곡 천국편>, 민음사, 2007, p.7.] 같은 글 말이다. 너무 멀게 느껴진다면, 영화<헤어질 결심>에서의 총소리도 넓게 포함이다.
하지만 나는 계속 이 첫 문장에 매달리고 싶다. 왜 카이사르의 첫 문장이 세상에 남았는가? 그건 내부 정치 문제에 골몰하지만 어떤 것 하나 해결되지 않던 로마 사회에 바깥의 새로움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왜 단테의 첫 문장은 두고두고 회자되는가? 그건 이미 지옥 같은 삶을 사는 이탈리아반도의 민중들에게 그 모순을 적나라하게 밝혀주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최근, 드라마<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나는 그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있지 못해 감히 말을 보태지 않겠다. 다만 사람들의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 드라마가 가진 따뜻함에 있지 않을까? ‘법은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우변의 말 건넴은 허공에 떠 있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여기’로 집중시킨다. 그리고 마주하는 의뢰인들은 하나같이 사회의 편견에 길을 잃은 이들이다. 같은 선상에서, 나의 첫 문장은 ‘공감’이 인권법캠프와 각종 공익사건에서 보여주는 특징의 단면을 나타내줄 것이라 믿는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허공을 떠도는 시선들을 사로잡기는 매우 어렵다. 나는 이번 ‘공감’ 인권법캠프가 공익사건에 노고가 큰 주역들의 ‘말 건넴’이었음을 느꼈다. 그건 ‘방송작가를 방송사가 고용한 노동자로 인정한 최초의 판결’을 받아낸 승소 주역에게로 시선을 옮기게 만든다. 또 ‘대학교 수강생명단에 성별 표기를 통한 차별을 인권위에 진정’하여 변화를 이끈 변호사와의 만남을 가능케 했다.
고충이 없을 수 없다. 나는 이번 캠프에서 장서연, 윤지영 변호사의 강연을 들었다. 장서연 변호사는 <헌법과 동성혼>이라는 주제를 걸고 ‘동성혼에 관한 헌법합치적 법해석’을 다루었는데, 2021년에 트랜스젠더 성별정정이 더욱 보장된 판결을 만든 데에는 ‘합헌적 법률해석’이 중요했다고 소개한다. 윤지영 변호사는 <일터에서 인권 침해>라는 주제로 강연했는데, 강의 시간의 상당수를 사례 분석을 통해 ‘노동에 관련한 분쟁’이 다양한 법에 바탕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법을 모르는 사람인 내 시선에서는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하는 사례들이, 실제로는 전혀 당연하지 않은 법적 다툼의 영역에 있었다. 내가 속에 담아두고, 변호사께 묻지 않은 질문 하나. “매번 쉽지 않은 사건 속에서, 위로되는 각자의 ‘김밥’은 무엇인가요?”
글이 길어졌다. 아마 이 글을 보는 분 중에는, ‘변영주 감독에 대한 에피소드가 언제 나오나?’ 하신 분들이 있을 것이다. 분명 캠프가 성공한 데에는 변영주 감독이 주는 상징성이 컸다고 본다. 강연 중 에피소드 하나. 변영주 감독은 “어찌하여 나는 나이가 들수록 판단력은 흐려지고, 세상의 모든 명백함을 믿을 수 없게 됐는가…”라는 제목을 던지며, ‘설마 이 제목으로 강연시키진 않겠지?’라는 생각을 하셨단다. 그러나 따뜻한 시선을 멈추지 않는 이들에게 ‘제목 is 뭔들’이다. 그리고 변호사들이 이겼다. 실제 변영주 감독의 강연은, 세상의 혼탁함에 찌들어가는 수강생들에게 어떤 풍경소리가 돼주었다. ‘내 감정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자세’와 “모든 고민을 나로부터 출발하지 말라”는 말은, 파편화와 각자도생에 익숙한 지금의 청년들에게 ‘공감’하는 방법을 일러주었다고 생각한다. 전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감독께 <헤어질 결심>에 대한 자세한 후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공감 인권법캠프’가 가진 문화적 소양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생각한다.
글을 마치며, 고백 하나 남긴다. 강연이 끝나고 적었던 ‘설문’을 난 꽤 모질게 적었던 것 같다. 그건 ‘말 건넴’에 대한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좋은’ 말 건넴 이전에 ‘말 건넴’이 있다는 사실을 항상 주지하고 싶다. 만약 내 글에 독자가 바라는 강연의 ‘인용구’가 적었다면, 그건 내 탓이다. 분야별 변호사들의 고민이 담긴 강연 자료를 제작하고, 내게 강연해준 장서연, 윤지영 변호사와 대화 시간을 가진 김지림 변호사가 속한 ‘공감’에 깊은 감사를 다시금 표하고 싶다. 다음 인권법캠프와 그 후기를 더욱 기대하며, 글 마친다. 늘 그랬듯 항상 사회에 봄날의 햇살이 되어주시길.
글_임상원(캠프참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