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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성별정정# 성소수자

내가 나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내가 나로 살기 시작하기까지

안녕하세요, 저는 성별 정정 허가를 받아 이번에 정정이 된 여성입니다.
내가 내가 아닌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소수자로서 저도 그간 여러 일들을 겪으며 자존감과 자존심, 모든 걸 내려놓고 ‘내가 이러니까’하며 위안을 해야 할 때도 많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내가 아직은 이러니까’라는 이유로 넘어가야만 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왔습니다. 부모님과 주변 모두 제가 어떤 것을 원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으로 인해 힘든지가 아니라 오로지 참고 견디고 힘으로 제압하고 소위 사회적으로 남자답다고 불리는 생각과 행동을 강요 했습니다. 학교생활에서도 학교 폭력과 각종 부정 그리고 이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교사를 사칭한 교육공무원들로 인해 전혀 좋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 속에서 내가 남들보다 무엇이 어떻게 부족한지 알 수 없었고, 그 누구도 도와주지도 도움을 받을 수도, 상담 받을 곳도 없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병역특례를 알아보다 강제로 끌려간 정신과 병동에서 보낸 반 년의 시간과 지옥 같은 군생활, 여직원들과 친하고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괴롭힘에 너무 힘들었던 회사생활 그리고 코로나 이후에는 구조 조정 때마다 업무실적이나 교우관계와 무관하게 항상 퇴사순위 1순위에 오르는 등, 불안정한 고용속에 항상 찾아보는 취업사이트의 이름 옆에 무조건 강제로 고정되어 기재되는 성별 란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습니다.

어렵게 취업이 돼도 야간작업과 주말작업을 밥 먹듯이 시키고 수당도 주지 않으면서 ‘나 같은 착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니까 너 같은 사람을 고용한다’는 망발을 일삼았던 회사, 잘해주겠다고 고용한 뒤 상급경력자인 저를 ‘원래 우리회사는 직급이 없다’고 속여서 일반사원으로 강등 시키고 함부로 대하다 해고한 회사, 법원등기를 받으러 갔더니 주민번호상 신분확인이 안 된다며 ‘나는 남자입니다’를 외치면 주겠다고 모욕을 주는 우체국 직원 등 그야말로 이 사회가 소수자를 보는 시선이 어떤 수준인지 아주 깊이 느껴온 시간이었습니다.

행정의 편의를 우선시하는 주민등록번호 체계에 침해당하는 인권

모든 것의 시작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저는 현재 우리 사회가 ‘국민 통제의 편의를 위한 공무원의 행정편의상으로 만들어진’ 주민등록번호 시스템을 아직도 수십 년째 고치지 않고 사용할 뿐만 아니라 이것이 항시 불특정 다수에게 다양한 사유로 자주 공개되는 것이 무감각 한 것이 의아했습니다. 저의 ‘문제’는 번호를 보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생년월일 성별 등 신상명세를 알 수 있는 등 개인의 정보에 대한 프라이버시의 자유를 아직도 공익성이라는 이름 하에 가두고 관리하는 것이 사회정책적으로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관행, 그리고 제가 겪은 것과 같은 고의성 짙은 차별에 대해 어떠한 법률적, 정책적 보호도 없는 현실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파서 병원에 가 내 돈 내고 진료를 받으면서도,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 불친절한 사람들 속에서 모멸감을 느껴야 합니다. 직장에서는 그야말로 ‘배려’로 인한 취업이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습니다. 주민번호의 7번째 성별 표시 때문에 지난 몇 년간 건강검진은 물론 아파도 병원에 가본적이 거의 없습니다. 코로나 초기 마스크를 사야 하는데 매번 주민등록증을 보이고 커밍아웃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 속에 마스크를 사러 약국에 가지 않았던 때가 있었고, 코로나의 감염되어서 아픈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 주민번호를 이유로 일반 남성들과 같은 병실을 쓰게 되는 악몽이 나타날까 그것이 훨씬 두려웠습니다. 백신패스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병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이상한 질문과 시선을 다 감수하며 백신을 맞았지만 부작용으로 3일간 물도 마시지 못하고 너무나 아파서 잠도 못 자면서 누워있었어야 했고, 그러면서도 병원에서 겪은 압박감에 그 어느 곳에도 연락 할 수 없었습니다.

소수의 고통위에 세워진 사회의 위선적 이분법

우리를 반대하는 분들은 “일부러 막은 적도 없고 그냥 살면 되는데 너희가 선택한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우리가 선택한 길은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이 나라에 납세를 비롯한 의무를 다하고 있으며 헌법상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할 국민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은 헌법으로 보장된 자신의 의지로써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다르다는 명제가 우리가 받는 차별이 당연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수자의 입장에서 어떤 점이 고통이고 불편이며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논하고자 함에 대하여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이상한 존재로 취급하고 필요성조차 못 느끼겠다며 각종 차별적인 극단적 발언을 일삼는, 또한 그것을 정당화하는 행동들은 인터넷 등 정보의 세계에서 너무나 찾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만큼 집단적 팬덤으로서 마치 정의인양 행세하며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소수자를 통계상 없는 사람 취급하고 이분법으로 나누며 이들의 고통을 침묵시키는 것을 당연하다 여기고, 마치 소수자를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보면서,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각종 정책들은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 소수자들에게 험난한 가시밭길을 제공합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해 정책을 하기 위한 근거로써 쓰일 정량적 통계는 커녕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한 정성적 평가조차 부족하다는 것은 소수자들을 함께 공존하는 인간으로 대하겠다는 사회적 장치가 하나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국가적으로도 정권에 무관하게 수 십년 전의 정책 기조인 ‘다수의 혜택을 위해 소수에게 정책비용을 전가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인권적 입장에서의 논의를 꺼림으로써 왜곡된 악의적 정보가 넘쳐나고 개선안들이 도출되지 않는 채 개개인의 고통스런 삶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함께 살아감으로써 얻는 전체적인 사회적 이익에 대한 연구와 공감, 그리고 현실적 인식이 너무나 부족함이 또한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두의 희망이 되어, 인간으로 살기위한 걸음

제가 공감과 함께 재판을 시작하면서 이기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그러한 차별의 한계를 부수고 싶다고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 차별로 인해 경제적 극한에 처한 상황에서 이 사회의 버림으로 인해 국민적 권리를 박탈당하고 현재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호소하여 ‘사회적으로 공감을 받고 인정받을 최소의 조건만 갖추면, 지금 등록부정정과 관련한 것과 같은 너무나 복잡한 고난의 과정이 아니더라도 인간답게 살수 있으면 좋겠다, 다수의 합의에 의한 사회적 가치만을 앞세워 한 인간의 희생을 기반으로 삼는 걸 당연시하는 사회가 바뀌는데 힘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와 이런 생각을 나누고, 함께 해 주신 변호사님과 많은 분들 덕분에 재판을 시작할 수 있었고 지금의 오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첫 재판에서 기각 후 악몽의 시간을 지나 두 번째 재판의 그날을 상기해보면 개인적으로 좀 남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몇 번의 까다로운 보정을 거쳐 시작된 심문에서 이어진 재판부의 원색적 질문은 오히려 저에게 ‘한번 진짜로 해보자’는 승부욕을 자극했고, 매 순간 ‘나는 절대로 지지 않겠다’고 되뇌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무엇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절대 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지혜가 되어 침착하고 설득력 있게 대응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꿈을 현실로 모두가 법 앞에 평등을

현재 저는 한 회사에서 파트의 책임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입사할 때 비록 그간의 성별에 대한 차별로 인한 것이기는 하였으나 몇 년 간의 잦은 이직에 대해 가졌던 경영진의 의심의 눈을 실력으로 무마시키고 국가제안사업에 들어가는 책임자로서 인정받았으며 이번에 성별정정을 받음으로써 더욱 확실하게 함께 할 수 있음을 증명하였습니다. 또한 전문학사인 현재 저의 학력에 대해서도 추가로 4년제 취득 후 대학원까지 바라볼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저는 인권, 예술, 사회문제 등에 대해 연구, 분석하고 이에 대해 대안을 낼 수 있는 부분을 배우고자 정책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 동안 애매했던 부분에 대해 답변을 제시할 수 있음에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소수자들이 국민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고 그 외에도 많은 어려운 사람들이 단지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정책적 부담을 지지 않도록 도울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를 도와 주신 많은 분들께 보답해 가는 또 하나의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편집자 주) 필자는 2019년 겨울 공익소송신청을 통해 공감과 함께 성별정정신청을 진행, 2022년 여름 성별정정신청 허가결정을 받은 트랜스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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