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요양보험제도 이야기
국민건강보험공단은 65세 이상의 이상의 노인 또는 65세 미만의 사람 중 치매, 뇌혈관성 질환 등의 노인성 질병을 가진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지원과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장기요양급여를 제공합니다.
장기요양급여를 제공하는 사람들을 요양보호사라고 부릅니다. 이분들은 국가공인 자격을 취득한 돌봄 전문가로 돌봄을 받는 사람의 집 또는 장기요양기관에서 돌봄 업무를 수행합니다.
공단은 2021년 1월, 2011년 자격증을 취득한 요양보호사 중 한 번 이상 장기요양서비스를 제공한 4만 539명을 2020년까지 10년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를 담은 ‘요양보호사 근로환경 변화 탐색 연구’ 보고서를 발간합니다.
보고서의 내용은 씁쓸합니다. 2011년 자격증 취득 뒤 2020년까지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은 19.9%에 불과했습니다. 10명 중 8명이 장기요양현장을 떠나는 셈입니다.
요양보호사들이 현장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현장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은 저임금‧불안정한 일자리‧불안한 노동환경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장기요양현장에서 요양보호사들이 겪는 이용자나 그 가족에 의한 성희롱과 신체적‧언어적 폭력 피해가 심각합니다.
요양보호사가 일하면서 이용자나 그 가족으로부터 언어적 폭력을 경험하는 비율은 25.2%, 신체적 학대를 경험한 비율은 16%, 성적인 학대를 경험하는 비율은 9.1%입니다. 신체적 학대 피해 경험자 중에서 신체적 폭력을 일주일에 주 3회 이상 경험한 비율은 22.7%, 주 1·~2회 경험한 비율은 26.2%였습니다. 성희롱, 성추행 등 성적 폭력 피해 경험자들의 경우에도 주3회 이상 피해를 경험한 비율도 12.5%나 되었습니다. 폭력 피해 경험이 일시적이고 비일상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주기적입니다.
그러나 폭력 피해를 경험해도 신고도 구제도 어렵습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은 요양보호사가 이용자나 그 가족의 인권침해행위로 인하여 고충해소를 요청할 경우 기관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이용자나 그 가족과 상담을 진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 규정은 유명무실합니다. 남녀고용평등법도 고객에 의한 성희롱이 발생할 경우 사업주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지만 이 조항 또한 장기요양현장에서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난립하는 영세한 기관들 사이에서 이용자를 한 명이라도 더 유치하길 원하는 기관은 폭력 피해 발생을 인정하지 않거나 요양보호사에게 침묵과 희생을 강요합니다.
또한 이용자의 집에서 재가 요양보호사의 경우에는 돌봄을 제공한 시간만큼만 장기요양급여를 지급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수가 체계 때문에, 폭력 피해를 신고할 경우 기관에 다른 이용자가 나타낼 때까지는 임금을 받지 못할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폭력을 참거나 임금을 잃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에 공감은 작년 8월부터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를 주축으로 한 장기요양현장 성희롱 제도개선 연구포럼에 참여하여 지난 12월 제도개선안을 마련하고, 장기요양현장 성희롱 대응 제도개선 방안 정책토론회에서 제도개선안을 발표했습니다.
장기요양현장 성희롱 대응 제도개선 방안 정책토론회 자료집(클릭)
제도개선안의 주요 내용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관장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을 개정하여 ① 인권침해 사건 발생을 예방을 위하여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용자를 위한 장기요양급여제공 계획을 마련할 때 이용자와 요양보호사의 안전과 건강을 보장하기 위한 재해 예방 계획을 수립하고, 기관은 장기요양급여제공 시작 전에 이용자와 그 가족에게 인권교육을 실시하고, 이용자 또는 그 가족과 장기요양급여 제공 계약 체결 시 장기요양요원 인권 존중 확약서를 받도록 하는 방안 ② 인권침해 사건 발생 후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요양보호사에 대한 보호의무를 소홀히 한 기관에 대하여는 시정명령, 지정취소, 과태료 부과가 가능하도록 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인권침해행위 발생 이후 유급휴가 부여 또는 2인 1조 편성이 이루어지도록 재원을 마련하도록 하는 방안, 그리고 ③ 인권침해행위 사례를 기관에서 기록하고 공단에 신고하고, 이를 공유하도록 하는 방안이 포함되었습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은 2008년 “노인의 간병ㆍ장기요양 문제를 사회적 연대원리에 따라 정부와 사회가 공동으로 해결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하여 노인의 노후생활 안정을 도모하고 그 가족의 부양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려는 것”을 목표로 제정되었습니다. 노인의 노후생활 안정의 문제와 노인의 부양 책임은 한 가족이나 개인의 책임이 아닌 국가와 사회의 책임임을 인정하였다는 점이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큰 의의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모습은 노후생활 안정과 노인의 부양을 국가와 사회의 문제로 치환하였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개인 또는 그 가족, 그 중에서도, 여성 구성원의 희생으로 유지되던 과거의 부양 체계는 공공화 되기보다는 민간과 민간이 고용한, 다수가 여성인, 장기요양요원의 저임금 위험 노동의 형태로 외주화 된 것 뿐이라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정부와 지자체가 운영‧관리하는 정부의 사업이기 때문에 정부는 5년마다 ‘장기요양기본계획’을 수립하여 그에 따라 제도를 운영합니다. 2023년부터 2027년까지 시행될 제3차 장기요양기본계획은 오는 3월에 발표될 것입니다. 그 규모가 확장될 수밖에 없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하여는 폭력과 성희롱, 저임금과 불안정성 등 요양보호사들이 현장을 떠나게 만드는 요인들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이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장기요양현장 성희롱 제도개선 연구포럼도 요양보호사들의 안전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이 계획에 포함되길 바라며 제도개선안을 마련하였습니다.
공감은 2023년 3월에 발표되는 계획에 요양보호사들의 안전하고 안정적인 노동환경 마련을 위한 방안이 마련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적절한 제도개선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