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구성하고 사실을 배치하는 것 – 10.29 이태원참사 국정조사에 부쳐
재난참사에서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유가족의 권리이자 국가의 의무입니다.
그러나 10.29 이태원참사 이후 정부는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았으며, 참사의 원인과 그 이후 대응에 대해서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 앞에서 국정조사는 유가족이 참사 당시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국정조사는 짧은 기간동안 급박하게 이루어졌고, 책임자들은 불성실한 자료 제출, 책임회피성 발언으로 공분만을 일으켰습니다. 큰 권한만큼 큰 책임을 져야하는 행정안전부 장관, 서울시장, 경찰청장, 소방청장은 참사의 예방 및 대비에 관해 아무런 법적 책임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국정조사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유가족의 기대를 철저히 저버렸으며, 유가족이 궁금해하는 질문에 대한 답도 제대로 내놓지 못했습니다. 국회는 국정조사에서 유가족의 참관을 허용했지만 선행적으로 유가족에게 어떤 점이 궁금한지 묻지 않았으며, 생존자와 유가족의 경험에 대해서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3차 공청회를 통해 유가족과 생존자의 발언을 통해 드러난 의문점들은 국정조사에서는 규명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진실을 구성하는 과정은 사실들을 배치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제3자가 주목하지 않은 부분들은 유가족과 생존자에 의해서 문제제기될 수 있으며, 유가족과 생존자가 알 수 없었고 설명하기 어려운 인과관계는 책임자와 전문가들에 의해 밝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국정조사는 유가족의 참관을 보장했지만 능동적인 참여를 보장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명백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번 국정조사를 보면 어떤 자료와 기록을 보전할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유가족과 생존자의 목소리를 들어야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가족이 궁금해하는 응급구조상황, 신원확인과정, 시신인도과정 들을 알기 위해서는 당시의 응급구조기록 등을 확인해야 하나 시간이 많이 지나 기록은 자동삭제되었고 30명 정도의 구급일지만을 확인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유가족과 생존자의 증언을 통해 드러난 사실들은 진상규명에서 매우 소중하고 중요한 자료이며, 의문점들은 진상규명의 실마리이기도 합니다.
이는 밝혀져야 할 진상규명의 과제들이기도 합니다.
우선, 현장에서 희생자의 지인과 유가족의 알 권리가 보장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참사현장에서의 혼란은 부정확한 정보들이 먼저 전해지며 희생자의 신원과 상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부재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따라서 현장에서 상황과 사건을 정확히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시스템이 얼마나 신속하게 구축되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태원참사현장에는 이러한 시스템이 부재했고,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면서 유가족에게 혼란, 불안과 고통을 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참사가 발생한지 수일이 지났음에도 왜 시스템이 빨리 구축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그 누구도 제대로 조사하여 보고하지 않고 있습니다.
시신을 인도하는 과정에서 희생자를 존중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는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시신인도과정에서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존중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정부가 인식하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가족의 죽음을 목격하는 첫 순간에 시신이 함부로 다뤄지거나 방치되는 상황을 목격하는 일은 유가족의 심리적 고통을 극대화합니다. 불가피한 참사의 현장에서 살아나오지 못했다는 점, 죽지 않았어야 하는 사람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 국가 무능에 의해서 구조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희생자의 죽음은 국가의 무능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그러한 죽음은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사회적인 죽음으로 받아들여져야 하고, 모든 절차는 희생자와 유가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번 참사에서는 유가족에게 신원확인, 검시, 시신인도 등의 절차에 관한 자세한 안내가전혀 없었으며, 마약수사 등을 위해 부검이 필요할 수 있다고 하는 등의 발언을 통해 희생자를 모욕하는 등 어떠한 존중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참사 다음날 유가족과 생존자로부터 경찰서에서 진술을 받는 등 유가족과 생존자의 심리적 안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조사 자체가 2차가해가 될 수 있지만 이러한 고려는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서울특별시 재난대응분야 구조, 구급 현장조치 행동매뉴얼>에 따르면, 사망자가 다수 발생한 대형사고의 경우에는 유가족과 의논하여 합동분향소를 설치, 운영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유가족과 협의 없이 위패 없는 합동분향소를 설치, 운영함으로써 희생자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가 제대로 이루질 수 없게 했습니다. 유가족이 모일 수 있는 합리적이고 가능한 방법도 강구하지 않은 채로 유가족의 연락처를 공유하지 않음으로써 유가족이 모이고 함께 말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러한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조차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조사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이 더 논의되어야 하고 더 드러나야 합니다.
2023년 1월 14일 10.29 이태원참사 3차 시민추모제에서 발언중인 조인영 변호사
국정조사를 통해서 진상이 규명되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 명백한 점은 확인됐습니다.
참사 직전까지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기회들이 매순간 존재했으며 책임자들은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그 기회들을 모두 놓쳤으며, 구조의 순간에서도 컨트롤타워는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행안부장관의 발언과 달리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했다면, 그리고 사회재난에 대해 누구라도 대비했다면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특수본은 행정안전부·서울시·경찰청 등 기관에게 구체적 주의의무가 없다고 판단하며 수사조차 하지 않고 꼬리자르기식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더 큰 책임이 있는 기관들이 오히려 ‘구체적인 의무가 없었고, 예측이 실패했을 뿐이니 재발방지대책을 세우는 것으로 책임을 다하겠다.’고 하며 참사발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동조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한 유가족분이 국정조사를 참관하면서 모든 기관들의 안일한 태도를 보고 ‘이러니 참사가 안 일어나는게 더 이상했겠습니다.’라고 하시면서 분통을 터트린 기억이 납니다. 이태원참사는 사회의 구조적 위험이 쌓여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연루되어 있다는 점에서 책임을 묻는 것이 간단명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잡성이 재난을 예방할 구체적인 개개인의 책임을 부정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되며, 더 큰 책임이 있는 주체들이 더 크게 처벌되는 것이 상식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재난 참사에 책임이 있는 주체들은 진상규명의 대상으로서, 누구보다도 참사의 기억이 빠르게 잊혀지기를 바라는 주체들이기도 합니다. 그런 주체들이 참사의 원인과 관련한 많은 정보를 갖고 있고 은폐할 우려도 가장 큽니다. 그리고 각 책임자들의 행태는 이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정조사에서 밝혀진 것처럼 구체적 위험을 예견하고 인파와 교통관리 대책 수립을 요구하는 문서가 2-3일 전 서울시와 서울경찰청 에 전달되었으나, 서울시는 서울시장이 참사 직후 해당 문서를 확인하여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고 답변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경찰은 참사 직후 해당 문서를 삭제하였습니다. 또한, 용산구청의 관계자들은 참사 직후 10명 가까이 핸드폰을 교체함으로써 참사 당일 용산구청의 대응에 대해서 확인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의도적인 증거인멸 행위를 하였습니다.
또한 국정조사 이후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조정하는 행정안전부는 이태원참사 재난원인조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제69조를 행안부는 재난 발생시 대응 과정에 대한 조사, 분석, 평가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재난원인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안부는 경찰 수사가 있었다는 이유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재난원인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재난원인조사는 관계기관에 재발방지를 위한 권고를 하고 이후 이행사항을 점검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반복된 사고를 막고자 만들어진 제도로서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한 경찰조사와는 그 성격이 매우 다릅니다. 그럼에도 행안부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참사의 원인에 대한 책임뿐만이 아니라 참사의 원인규명과 재발방지라는 후속 책임까지도 저버린 것입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의 태도와 책임자들의 태도에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았습니다.
정부는 참사를 막을 수 없었던 불행한 일처럼 여기고, 슬픔의 시간을 잠깐 지나면 모두에게서 잊혀질 것이라고 여기며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의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잠시 잊고 싶을 뿐 또는 잊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지하철에서, 행사장에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우리는 위험하진 않을지 계속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인파가 많은 곳에 갈 때면 주저하게 됩니다.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방지대책이 마련되는 그 모든 과정은 유가족을 비롯한 피해자들에게도 그리고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에게도 치유의 과정이며, 다시 사회의 시스템을 믿고 따를 수 있도록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정부가 이태원 참사를 잊으려고 할수록 사회에서는 더 간절히 기억해야 합니다.
유가족들은 국정조사 이후 독립적인 진상기구를 통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후 과정에서 유가족과 생존자, 지역 상인을 비롯한 피해자들은 주변인이 아닌 주체로서 인정되어야 하며, 그 목소리에서부터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이 논의되어야 합니다. 3차 공청회를 통해서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이제야 구체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유가족과 생존자가 고통스러웠던 그 날의 일을 복기하며, 자세한 부분까지 다시 떠올리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며, 그 기억을 꺼내 누군가에게 말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그 고통과 용기가 헛되지 않도록 10.29 이태원 참사를 계속 기억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공감도 앞으로의 과정에서 유가족과 생존자를 비롯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담길 수 있도록 조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