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인정사건 승소! : 한 세기만에 한국땅을 밟은 무국적자 고려인의 이야기
“당신들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면담이 끝날 때쯤 A가 한 말입니다. 왜 굳이 그런 말을 할까 싶으면서도, 희망과 기대가 더 고통스러웠던 경험에서 나온 것이려니 생각했습니다. 1%의 난민인정률,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난민소송 승소율의 현실에서 큰 기대를 갖는다고 했다면 오히려 부담스러울 터였습니다.
A는 4세대 고려인입니다.
A의 증조부모는 일본 식민통치 시대 러시아로 이주했고, 이후 스탈린 정권 하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했습니다. A는 태어날 때 소련 국적이었다가 소련 해체 이후 자신이 나고 자란 B국의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20대 초 무렵 부모와 함께 러시아로 이주한 후 줄곧 국적국이 아닌 외국에서 살았습니다.
여권 갱신을 위하여 본국으로 돌아간 A는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였다는 이유로 정보기관에 연행되어 강압적조사를 받았고, 급기야 국적을 포기하고 출국하라는 협박을 받았습니다. 여권 갱신은커녕 국적마저 박탈당한 것입니다.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요. 국적을 포기한 A는 운 좋게 한국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조상들이 국경을 넘은 후 한 세기만에 다시 한국 땅을 밟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고난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은 동포에게 주는 비자가 있지만 관련 법령상 무국적자인 동포는 동포로서 체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A는 난민신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A의 난민인정을거부했습니다.
공감은 A의 진술을 듣고 A가 가지고 있는 증거자료를 번역하여 정리하고, 관련 국가정황정보를 조사하여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제기한 주요 난민사유 중 하나는 국민으로서의 최소한의 보호마저 거부하고 입국의 자유를 박탈하는 국적박탈 자체가 박해에 해당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미국 로스쿨에 재학 중인 실무수습생의 도움으로 인종,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한 국적박탈이 박해에 해당함을 인정한 외국 판례를 찾아서 번역하여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인천지방법원은 A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A가 본국 정부로부터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을 받았으며 귀국할 경우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가 있음이 인정된다고 판결한 것입니다. 그러나 출입국ㆍ외국인청이 얼마 전 항소하여 소송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공감은 조금이나마 생겼을지도 모르는 A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항소심에서도 최선을 다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