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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경계선장애인# 장애인권# 차별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서 – 경계선 지능인 장애등록신청 반려처분 취소소송 제기

경계(境界)는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를 말합니다. 사회복지체계에서 장애의 법적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누구를 사회복지체계안으로 포섭하여 지원할 것인가를 분간하기 위해 장애와 비장애 사이에 경계를 설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장애인복지법상 등록 장애인으로 인정된다는 것은 ‘장애인복지법 체계 안으로 들어가 국가의 지원을 받을 권리를 획득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애의 경계를 확장한다는 것은 매우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어려운 일임에도 장애인복지법이 제정된 이후 뚜렛증후군, CRPS 등 다양한 장애유형이 법원의 판결 등을 통해 인정되고, 장애의 기준은 변화해 왔습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또한 장애를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개념’으로 보고 장애 자체가 ‘사회 참여를 가로막은 태도 및 환경’이라는 ‘사회적 모델’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이러한 ‘사회적 모델’의 관점에서 한국의 장애인복지법이 최근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학적 모델’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표했습니다. 위원회는 최종견해에서 “모든 장애를 아우르는 장애 개념을 채택하도록 하고 그들의 특성과 욕구가 인정되도록 보장하여야 하며, 장애인에 대한 법적·환경적 장벽을 파악하고 자립생활 및 완전한 통합 증진을 위해 필요한 지원의 제공을 지향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장애판정제도의 방향을 다시 설정할 것”이라는 권고를 내렸습니다.

경계선 지능인 장애등록신청 반려처분 취소소송은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권고와 마찬가지로 장애인복지법상 등록장애의 기준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의학적 모델’이 아닌 ‘사회적 모델’을 고려해달라는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경계선 지능인은 지능지수 IQ 71~85에 해당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이들은 지능지수가 70을 초과하여 한국의 지적장애기준인 지능지수 70이하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생활하는 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계선 지능인은 장애인복지법상 지능지수 70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장애등록신청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의 원고인 A도 한국 웩슬러 성인 지능검사(K-WAIS-IV)로 측정된 전체지능이 72점에 해당하는 경계선 지능인입니다. A는 학령기부터 학습능력과 인간관계에 여러 어려움을 느꼈으나, 이를 개인 성격의 문제라고만 여기며 스스로를 탓해왔습니다. 그러나 35세가 되어도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간단한 아르바이트도 해내기 어려운 현실이 지속되자 임상심리평가를 받게 되었고, 본인이 경계선 지능인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A는 자신이 겪는 어려움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의 지원이 필요한 문제라고 인식하게 되었고, 2023년  1월 3일 장애등록신청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행「장애정도판정기준」은 지적장애의 판정기준을 지능지수 70점 이하로 규정하고 있고 이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에게만 ‘장애정도 심사용 진단서’를 발급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A는 ‘장애정도 심사용 진단서’를 발급받을 수 없었고, 필수제출서류요건을 갖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장애인등록신청 반려처분을 받았습니다.

A는 초등학교를 입학한 이후 스스로 운동화 끈을 묶는 것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운전면허의 경우 필기시험은 통과하였어도 기능시험을 번번이 불합격하여 아직 운전면허를 취득하지 못했습니다. 몸을 쓰는 일을 할 때는 늘 긴장과 불안이 상승했고 제대로 완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손이 느리기’ 때문에 비장애인이라면 쉽게 할 수 있는 단순 작업에도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A의 이러한 어려움은 지능지수 70이라는 기준만으로 판별될 수 없습니다. A의 다양한 지적능력(인지, 추론, 판단 등)에 대한 평가와 일상생활에서 제약으로 느끼는 부분들을 면밀하게 평가하여 지원이 필요한지를 살펴야 합니다.

지능지수만으로 지적장애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합리적인 의학적 기준이 아니며, 일상생활에서 실질적으로 제약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지원제도 밖으로 내몰 수 있다는 문제의식은 정신의학분야에서도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논의의 결과로서 미국정신의학협회(APA)는 2013년에 발간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에서 ‘지적 장애(지적 발달 장애)’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지능지수는 높으나 일생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지적 발달 장애’로 포섭하기 위해 매뉴얼을 수정했습니다. 이는 엄격한 지능지수(IQ) 컷오프 점수로 인해서 지적장애 진단평가조차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진단범위를 확대하여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전문가들의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장애인복지법은 여전히 지능지수 70이라는 선을 그어놓고 이 선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심사조차 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지적장애를 판단함에 있어서 의학적인 경계를 설정하고 이에 의존하고 있지만, 이러한 기준이 의학적으로도 합리적인 기준인지에 대해서조차 확신할 수 없습니다. 결국 국가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기준만을 가지고 실질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경계선 지능인들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지적 장애인과 동일하게 경계선 지능인의 생활상 어려움은 교육·고용·주거·권익옹호·평생교육·정신건강 등 전반에 걸쳐 있다는 점에서 포괄적인 지원 없이는 우리 사회에서 경계선 지능인이 독립적이고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국가에게는 당사자와 같은 경계선 지능인을 장애인 복지법 안으로 포섭하여 필요한 지원을 즉시 받을 수 있도록 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지능지수 70이라는 기준이 사회가 설정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사회적 합의에 의해 변화할 수도 있습니다.

2023년 3월 30일 진행된 ‘경계선 지능인의 장애인등록신청반려처분 취소소송 제기 기자회견’

공감은 이번 소송을 통해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포괄적 복지를 제공할 국가의 의무를 확인하고, A와 같은 경계선 지능인들이 장애인복지법 안으로 포섭됨으로써 자율적이고 사회통합적인 생활이 가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경계를 우리 사회가 함께 넘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련 기사 : MBC / “IQ 70 이하만 지적장애인 등록은 부당” 소송 제기

조인영

# 장애인 인권#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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