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 기숙사에서 발생한 불법촬영 피해, 선고까지의 2년
2021년 4월 어느 밤, 시골 농장에 딸린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외국인 노동자 A씨는 다급히 “사장님”을 찾아갔습니다. 기숙사 욕실 창문 바깥에 설치된 불법카메라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농장 관계자가 신고한 덕에 경찰차가 출동해 깜깜한 농장이 금새 소란스러워졌습니다. A씨가 보기에 소형카메라의 생김새가 눈에 익숙하다 했더니, 기숙사를 함께 이용하던 한국인 직원 M의 차량에서 충전 중이던 그 카메라였습니다. M을 추궁하니 본인이 카메라를 설치한 사실을 인정했고, 압수된 SD카드를 확인하니 공용 욕실을 사용하는 이들의 모습이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어나 한국문화가 익숙치 않은 외국인의 입장에서, 경찰의 현장 조사나 피해자 조사는 어렵고, 불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A가 출신국의 언어도 아닌 영어로 상황을 설명하고 질문을 하면 경찰도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답을 하고 이해해야 하는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날이 밝은 뒤에도 특별한 변화는 없었습니다. 농장에 나가 일을 해야했고, 범죄가 발생한 장소인 욕실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증거확보를 위한 조사나 피해자 조사에 관한 연락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A씨가 피해자 조사를 기다린 이유는 오랫동안 참아온 다른 피해사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인 직원 M씨는 A씨가 처음 농장에 온 때부터 수시로 A씨를 추행해 왔습니다. 동석한 트럭 보조석에 앉은 A씨에게 “딸같다며” 손이나 허벅지를 쓰다듬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기숙사 공용 부엌에서 음식을 하고 있는 A씨에게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시도하거나, 복도에 방문을 열어 놓고 사용하면서 공용 화장실에 다녀오는 A씨를 자신의 방으로 끌고 들어려 시도한 적도 있었습니다.
A씨는 이런 사실을 사장님에게 알렸지만 사장님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A씨에게 “기숙사를 옮겨” 볼 것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일상적인 성희롱과 성추행이 가능했던 공간, 그런 사실을 큰 일로 생각하지 않은 사용자, 사용자와의 친분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지휘 감독 자리에 있던 가해자의 지위, 외국인 노동자의 경제적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황과 고용허가 조건에 따라 결정되는 체류자격 문제, 열악한 기숙사 환경까지. 한국인 직원 M에 의한 범죄는 어쩌면 예고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쉽게 문제제기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자를 상대로한 성범죄 계획과 시도는 특별한 제동 없이 쉽고 자연스럽게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의 취약한 지위를 이용한 성범죄는 유사한 유형을 가집니다. 지난 2020년에는 인천에 소재한 공장 직원 화장실에서 불법촬영기기가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범인은 사업주였고 평소 사업주에 의한 성희롱과 강제추행 범행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있다는 사실(추가 피해 신고)이 불법촬영 피해를 신고하면서 뒤늦게 밝혀졌습니다(관련 글 : 사장님의 불법촬영 범행 신고한 이주여성노동자 지원 사건의 결말 -117건의 추가 범행 발견 실형 선고, 하지만 피해자는 결국 출국). 사업주는 재입국을 용이하게 해줄 수 있는 현행 외국인고용에관한법 상 사용자의 권한을 이용하여 피해자의 신고 의지를 좌절 시켰습니다.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는 이유는 외국인고용에관한법 상 사용자 편의적 체류자격 부여 제도로 외국인노동자가 취약한 상황에 쉽게 놓이고 그러한 취약성이 쉽게 노출되는 반면, 외국인노동자가 부당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할 예방 보호책이나 피해를 입었을 경우의 구제책은 쉽게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농업 종사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농장에 딸린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하기 때문에 농장 뿐 아니라 기숙사에서의 생활도 일상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전제가 되지만 이 사건 처럼 기숙사에서 범죄피해를 입은 경우 임시로 지낼 수 있는 곳이 제공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사업장과 완전히 분리된 숙소를 찾는 다는 것은 실용성도 없고 가능성도 없는 대책입니다.
피해자 A를 조력하던 외국인 노동자 B는 A의 범죄피해를 외부에 알려 적극적 수사를 촉구하고 자신들을 도와줄 사람을 찾기 위해 언론사에 사건을 제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A와 B는 사업주로부터 해고 및 기숙사 퇴거를 통보받았습니다. 사업주는 언론보도를 문제삼아 B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피해자 A와 B는 기숙사에서 발생한 불법촬영 피해를 신고한 직후, 일자리 뿐 아니라 먹고 잘 수 있는 공간에서 내쫓겼고 피의자가 되어 조사 받아야 했습니다.
충북이주여성상담소와 공감은 피해자들을 지원하여 법률지원, 심리상담, 의료지원 및 생활지원에 힘썼습니다. A에 대한 피해 사실에 대한 고소 대리 및 피해자 조사 동석, 추가 피해사실 인정을 위한 의견서 작성, 기소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지난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B에 대한 명예훼손 변호를 맡아 지원하면서 B에 대한 명예훼손 피소 건에 대한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첫 사건 신고 후 2년도 더 넘은 2023년 5월에서야 가해자 M에 대한 형사 유죄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고소사실이 전부 인정되어 불법촬영 뿐 아니라 강제추행 등에 대한 혐의에 대해서도 전부 유죄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선고 직전 이뤄진 형사 합의의 영향에서인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 그리고 수강명령 및 취업제한 처분이 더해진 결과를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사업주를 상대로 한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고소 사실은 “불이익한 처우(신고자에 대한 미온한 대처 및 기숙사 이전 제안) ”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으로 종결되었습니다.
특수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주배경 성폭력 피해자를 조력하기 위한 조력(통역, 수사, 재판 과정 전반에 걸친 조력)의 적절성은 형사 합의 절차를 거쳐 판결문을 전달 할 때 까지 고민 거리가 되었습니다. 세부적인 진행 상황 뿐 아니라, 주요한 조사에 피해자와 동석했을 때 마다 이주배경 피해자의 사법절차 참여권이나 알권리, 범죄피해자로서의 구제는 어떻게 보장 될 수 있는지, 또 피해자의 진술이 피해사실을 입증하는 유일한 증거인 경우가 많은 성폭력 사건에서 이주배경 피해자의 진술을 2차 피해 없이 정확하게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는 점과 제도 보완의 시급함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긴 시간 사건을 포기하지 않고 공론화하고 결과를 마주한 당사자의 용기, 외국인 피해자 지원을 위한 역할을 마다하지 않은 지역 이주민 노동자지원센터, 이주여성인권단체의 조력, 공감의 여성인권팀, 이주팀, 노동팀과의 협업 덕분에 통역 문제가 해결되고 각 쟁점별 대응도 용이했으며, 피해자 지원도 적절한 시기에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이주배경피해자지원을 위한 공적 제도 보완 필요성을 알리는 선례로 남기를 바라며,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공감은 또 다른 사건 지원으로 더 나은 결과와 변화를 전달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