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인권·환경 책임, 국경을 넘는 치열한 논의의 현장을 가다 – 유엔 책임기업과 인권 아태 포럼 참가기
얼마 전 공감은 유엔 기업과 인권 워킹그룹 전 의장으로부터 6월 6일부터 9일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유엔 책임기업과 인권 아태 포럼에 참석해 전략소송이 기업의 태도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 대해 자문을 해줄 것을 요청받았습니다. 공감은 이에 응하기로 하고 비용 지원이 되는 자문 제공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두되, 여러 활동과 관련해 주요 관계자들을 면담하고 포럼에서 기업과 인권 관련 현장 상황과 최근의 동향 등에 대해 공부할 것을 계획했습니다.
전략소송이 기업의 태도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 대한 자문회의는 비공개 세션으로 열렸습니다. 연구진이 그동안의 연구내용을 간략히 발표하고 자문단이 한 주제씩 의견을 피력하는 순서로 진행됐습니다. 공감에서는 우선 전략소송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당사자 만족, 확산효과, 구조적 변화 등), 관할 국가의 법의 지배(실체적, 절차적) 상황이 어떠한가, 다루고자 하는 법적 쟁점이 새롭게 개척하는 영역인가, 아니면 이미 확립된 원칙 적용의 문제인가 등등이 소송의 결정요소, 목표, 효과측정 요소 등을 결정함을 지적했습니다. 또한 소송의 목표와 관련해서는 직접적인 피해구제와 더불어 피해자들의 진실에 대한 권리의 구현, 가해자들의 책임 추궁의 중요성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소송의 효과와 관련해 직접적인 소송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에서 권리에 기초한 접근을 통해 피해자들의 주체성이 보장되었는지, 피해자들의 조직화, 단결, 역량 강화의 계기가 되었는지, 소송 결과와 무관하게 법제와 관행의 변화를 초래했는지 등도 반드시 평가되어야 함을 언급했고, 소송이 관련 이슈를 법적 쟁점을 축소하고 소송과 이해관계가 있는 이들로 함께하는 이들을 축소할 위험성에 대해서도 자문했습니다. 자문을 하면서도 과연 한국 내 전략소송들에 대해서도 이처럼 집중적이고 다면적인 평가를 해본 적이 있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유엔 기업과 인권 워킹그룹 의장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한국에서 시민사회가 기업의 의무적 인권환경 실사법을 제정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고 현재 어떤 단계에 와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한국기업이 관련된 라오스 댐 참사와 관련해서는 진상규명과 지속가능한 피해구제가 여전히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지 못함을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11월 말 예정인 동아시아 기업과 인권 시민사회 포럼을 소개하고 여러 활동과 관련해서 상호협력방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몽골 국가인권위 위원장과도 만남을 가졌습니다. 기업과 인권과 관련된 기본정책, 법제개선 등 언제든 필요한 자문에 응할 수 있음을 언급했고 몽골 내 한국기업의 인권침해가 문제되는 사례가 있을 때 체계적으로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는 모범사례를 만들어 보자는 얘기도 했습니다. 아시아 이주단체 Migrant Forum Asia (MFA)의 사무총장을 만나 이주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국경을 넘는 변호사들의 협업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최근 MFA에서는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변협과 인권변호사들의 교류를 성사시켰는데 MFA 사무총장은 이러한 활동이 십여년 전에 있었던 나와의 대화, 그리고 나의 제언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줬습니다. 꾸준히 하되 안주하는 않는다는 것, 말이나 생각만이 아니라 행동을 한다는 것,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뭔가를 계속 추구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사진설명] (왼쪽) 유엔 기업과 인권 워킹그룹 의장(가운데)과 함께, (가운데) 몽골 국가인권위 위원장과 함께, (오른쪽) 아시아이주포럼(MFA) 사무총장(가운데)과 함께
공감은 여러 세션에서 참여해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는 등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습니다. 개발금융기관의 책임과 관련 메커니즘에 대한 세션 등 그동안 충분히 다뤄보지 못했던 영역에 대해 이해를 높이려고 노력하기 했고 권리자들, 지역사회 중심의 피해구제 세션처럼 피해구제를 다룬 세션들에서는 여러 피해구제 시스템이 가지는 강점과 한계에 대해 좀 더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운영 중인 민간 피해구제 메커니즘에 관한 세션에서는 기업회원제로 운영되는 이 센터 말고 일본 밖에서 일본기업에 의해 인권침해를 당했을 때 연락할 수 있는 시민사회네트워크는 없는지, 이러한 비사법적 메커니즘이 성공하려면 권위와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것들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지금까지 다룬 구체적인 사례들을 보면 사법절차와의 관계, 법률적 판단과 비법률적 판단의 위상, 책임져야 할 공급망의 범위 등이 불분명해 보이는데 어떠한지 등등 다수의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흥미로왔던 세션은 “자문에서 참여까지: 힘의 불균형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세션이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교류가 있었던 한 미국 로스쿨 교수가 기존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은 국가의 의무, 기업의 책임, 피해구제의 틀로 되어 있지만 피해자 혹은 부정적 영향을 받는 당사자의 권리가 또하나의 축으로 명확하게 정리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주체성을 가진 참여, 지역공동체 거버넌스, 힘의 불균형, 권리의 증진 등의 문제가 제대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너무도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약속에서 행동으로’(From Commitment to Action)입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은 얘기하면 ‘약속’의 미사여구가 난무한 가운데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부인하거나 회피하기 위해 모든 ‘행동’이 동원됩니다. 심각한 인권침해가 정확하게 확인되고, 관련 정부, 기업, 유엔기구가 충분히 진지하게 사안을 대하고 권리자들 혹은 피해자들이 만족할 정도의 구제가 이루어진 사례가 과연 있는가의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합니다. 진지한 접근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내년 포럼의 주제는 ‘이것이 나의 행동이다. 너의 행동을 보여줘’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