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자원활동가의 활동] 여전히 우리는 페르소나 속에 : 정신과 진료 이력을 이유로 한 보험 가입 거부 차별 행위 진정 기자회견 참석 후기
일시 : 2023년 10월 18일
장소 : 국가인권위원회
유튜브로 인디 가수 나이트오프의 ‘잠’이라는 노래를 이따금 듣곤 합니다. 몽롱하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이 노래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사랑을 줍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로 몸도 마음도 나른하게 만드는 이 노래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노래에 달린 하나의 댓글이 제 머릿속을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 이 노래는 마치 죽음 직전에 마주한 번개탄불 같은 음악이에요.몽롱해지는 선율은 마치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이 노래를 찾을 때면, 저 스스로 요즘 너무 우울한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이 댓글을 다시 한번 찾아보기 위해 노력해 봤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지금은 더 이상 볼 수 없더군요. 이 댓글을 읽고 난 후부터 저도 이 음악을 찾을 때면 스스로 요 근래를 곱씹어봅니다. ‘요즘 우울한가..?’ ‘조금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살다 보면 가끔 우울해지는 날들이 옵니다. 어쩌면 살아있기에 당연한 일인 거 같기도 합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불안한 미래,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 비어만 가는 통장 잔고, 아픈 건강 문제들… 이런 것들과 가만히 마주하고 있으면 우울의 감정이 순간 저를 엄습해 옵니다.
흔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로 비유합니다. 감기, 즉 “기가 감한다”라는 그 뜻을 들여다보면, 어쩌면 우울증은 정말 감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감기를 가볍게 여깁니다. 두려워하거나 숨기지 않죠. 하지만, 마음의 감기인 우울증은 사람들에게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포털 검색창에 우울증이나 정신과를 검색해 보면, 유독 정신과를 멀리하는 사람들의 걱정거리들이 보입니다.
‘ 취업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
‘ 학교 진학 때 정신과 기록이 있으면 안좋은가요? ‘
‘ 실비 보험 가입이 거절되면 어쩌죠?’
또한 심심치 않게,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를 방문했지만 이로 인해 차별을 받은 증언들이 발견됩니다.
이번에 공감 자원활동가로서 참여한 “정신과 진료 이력을 이유로 한 보험 가입 거부 차별 행위에 대한 진정 기자회견” 또한 단순히 정신병원 진료 이력이 있다는 이유로 심사조차 받지 못하고 우체국 실비 보험 가입이 거절된 사례입니다. 진정인은 우체국에서 실손 의료보험 가입을 지난해 한 차례, 올해 두 차례로 총 세 차례나 거부 당했습니다.
지난 9월 20일, 과거 우울증 치료 병력과 현재는 성인 ADHD 약물 치료를 진행하고 있는 진정인은 실손 의료보험을 가입하고자 우체국에 방문하였습니다. 하지만, ‘상담 중 정신과 이력이 있다고 밝히자 현재의 상태나 병력, 질병의 경중, 향후 진행성 여부 등에 대한 어떠한 확인도 없이 획일적으로 가입이 불가하다는 안내를 반복해 들었고 결국 청약 가입을 거절’ 당했습니다.
정신병력이 있다는 이유로 보험 가입 및 채용에 있어서 차별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지 여러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자료가 말하는 결론은 단 하나였습니다. 차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유튜브로 ‘정신과 기록은 당사자 외 절대 열람 불가’라고 말하며 사람들을 안심시킵니다. 이 사건의 진정 대리인 조미연 변호사 또한 많은 인권위 권고와 법조문을 예로 들며, 우울증 치료 기록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것은 평등권 침해이며 법률 위반이라고 하였습니다.
근데, 왜 우리는 아직도 정신과 기록이 꼬리표처럼 붙어서 나를 따라다니는 건 아닐지 걱정할까요. 조미연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법 이전에 정작 현실이 바뀌지 않았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사람들의 가치관에는 여전히 색안경이 껴있습니다. 보험 설계사들은 상담자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음을 말하면 컨설팅을 거부하기 일쑤입니다. 우리 일반 대중도 다르지 않습니다. 정신병원을 다닌다는 말을 들으면 고운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법이 바뀌면 무엇하겠습니까. 법 이전에 그 법률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이 아직 바뀌지 않았습니다.
당연하게도 정신병력에 대한 차별은 개인의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도 좋은 현상이 아닙니다. 정신질환에 대한 차별은 마음의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치료를 늦추게 만듭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올라 언제, 어디서, 어떠한 형태로 터질지 모를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정신건강으로 인한 차별이 지양되야 하는 이유입니다.
엄연히 또 아직도 실존하는 차별이 두렵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의 아픔을 숨깁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우울한 표정을 숨기기 위해 출근 가방 속에 넣어둔 웃음의 가면을 쓰고 통근 버스에 오릅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 모두 가면을 벗고 ‘나 사실 아파’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습니다.
글_조건희 (공감 38기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