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의 가능성 – 성소수자 난민 지위 인정받다!
“한국의 난민인정률은 연평균 0~2%에 불과합니다.”
지난 10월에 있었던 유엔 제5차 자유권규약 대한민국 심의 시민사회 브리핑 시간, 저는 이주 및 난민 분야 관련 발언을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0~2%에 들어간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작할 수밖에 없는 난민인정절차 법적 조력. 오랜만에 그 좁디좁은 바늘구멍을 통과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1998년 서울, 갓 상경한 무용수 A와 과학도인 B는 첫눈에 사랑에 빠졌습니다. 몇 번의 냉전기도 있었지만 결국 다시 만나길 반복하며 이들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고, 한강변에서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린 뒤 2023년 지금까지 25년 째 사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진 설명] A와 B의 청첩장
이 순탄해 보이는 사랑이야기에 ‘A가 한국인, B가 외국인’이라는 변수와 ‘A와 B는 동성커플’이라는 변수가 더해지는 순간, 더 이상 무탈한 이야기가 아니게 됩니다. 러시아 국적의 B는 연구원으로, 기자로 일하며 한국에 적법하게 체류해 왔으나, 상황이 변하여 취업이 어려워지자 이들의 관계는 당장 위태로워졌습니다. 이성커플이었다면 소위 국제결혼을 하면 단숨에 해결될 일이었으나, 동성커플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에서는 B의 체류기간이 만료되기 전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헤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함께 러시아로 가는 선택지만이 남은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B의 모국인 러시아의 정치 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되어 B가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B는 한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는 내내, 그리고 신문사를 그만 둔 뒤에도 자신의 웹사이트에 본국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푸틴의 독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공개하여왔는데 이러한 B의 정치적 활동이 러시아 법상 처벌대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트랜스젠더 성별정정을 금지하고, 동성애를 옹호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들이 통과되는 등 러시아의 성소수자탄압 역시 심화되었습니다.
이런 아슬아슬한 상황 속에서도 B는 정치적 의견 표명을 멈추지 않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뒤에는 온라인상에서 위협을 받으면서도 무려 50여 차례 넘게 반전 시위에 참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사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퀴어무용수가 된 A와 B의 관계는 수없이 매스컴에 보도되었습니다. 9시간이 넘는 난민 심사 인터뷰를 두 번이나 진행하면서 B는 자신의 정치적 활동, A와의 관계에 대해 꼼꼼하게 진술하였고 B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자료들이 제출되었습니다.
긴 기다림 끝에 결국 B는 1%의 바늘구멍을 뚫고 난민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정치적 박해 가능성과 성소수자로서의 주목가능성까지 고려된 결과였습니다. 부정할 수 없이 악화된 러시아 정치상황과 그의 셀 수없이 많은 정치활동 증거들, 푸틴의 성소수자 박해 법안 발의, A와 함께 한 언론 인터뷰 등 여러 요인이 중첩적으로 작용해 난민으로 인정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B조차도 난민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면 ‘도대체 난민으로 인정되는 사람이 존재하기는 할까’, ‘변호사의 조력이 무슨 도움이 될까’하는 의구심이 들려고 하던 찰나였습니다.
2022년 말 기준 약 11,000명의 난민신청자 중 단 22명만이 법무부 단계에서 난민지위를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들려 온 난민인정 소식에 한없이 기쁘면서도, 난민협약 상 난민으로 인정받기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제시할 증거가 B만큼 풍부하지 않아 오랜 시간 고전 중인 다른 의뢰인들 생각에 어깨가 무거워 집니다. A-B커플과 같은 한국-외국 동성커플의 체류문제 역시 또 다른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많은 고민을 안겨 준 케이스이지만, 일단 지금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고 충분히 기뻐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당장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으로 인해 난민이 되었으나 결과적으로 함께 있을 수 있게 된 A-B님께도 깊은 축하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