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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노동인권# 이주노동자# 차별

로마에서 로마법을 따르라

작년 1월 최저임금마저 차별받는 이상한 나라의 이주선원을 구제한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에 관한 소식을 전한 지 어느덧 2년이 되어갑니다. 해양수산부는 판결 직후인 작년 1월 20일 2026년까지 내외국인 연근해 어선원 간 최저임금 차별을 없애겠다고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사이 소송 상대방인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는 항소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10월, 서울고등법원은 공감에서 지원한 사건보다 먼저, 같은 쟁점이 문제된 다른 사건에 대한 판결을 선고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3. 10. 20. 선고 2021누59610). 역시 1심에서 승소해서 올라간 사건이었습니다. 서울고등법원 제10행정부가 선고한 판결은 아주 놀라운 내용이었습니다. 이주 어선원의 최저임금 차별이 합리적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서울고등법원이 최저임금 차별에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본 주된 이유는, 이주 어선원은 표준근로계약서 양식에 따라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표준근로계약서에 따르면 사용자는 숙식과 송환비용을 부담하여야 하며, 임금 산정 시 이러한 비용부담을 고려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표준근로계약서는 이역만리 타국에서 한국의 인력부족을 메우고 어선원으로 일하기 위해 한국에 온 이주 어선원들의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는 이주 어선원들이 부담하는 막대한 송출비용, 여권 등 신분증 압수, 열악한 숙소, 임금체불, 산재 등의 숱한 인권 및 노동권 침해를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표준근로계약서에 따라 근로계약서가 작성된다는 이유로 법정근로조건인 최저임금 차별이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하는 것은 매우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최저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인데, 근로계약서의 내용을 이유로 최저임금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게다가 선원 최저임금 고시는 숙식비를 최저임금에 산입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국제노동기구 등에서 정한 국제기준은 이주 노동자 모집 및 알선 수수료와 송환 등 관련 비용을 노동자에게 부담시키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해외인력 도입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중간착취와 인신매매를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해당 비용을 사용자가 부담한다는 사실을 다시 최저임금을 차별하는 근거로 삼는 것은 송환비용을 사용자에게 부담하도록 한 취지에 전적으로 반하는 것입니다.

고용 및 근로조건에서의 차별은 해당 집단을 경제적으로 불리한 여건에 놓이게 하여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같은 노동시장에 속하거나 진입하려고 하는 다른 노동자들의 협상력, 경쟁력과 근로조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선원법 제5조에 의해 준용되는 근로기준법 제6조가 성, 국적, 신앙과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한 차별적 처우를 금지하는 근본적 이유이며, 법정근로조건인 최저임금 차별이 그만큼 더욱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역시 그 동안 수차례 헌법과 노동법의 근간을 이루는 위와 같은 법원칙을 재확인한 바 있습니다(헌법재판소 2007. 8. 30. 선고 2004헌마670, 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6다53627, 대법원 1995. 12. 22. 선고 95누2050 판결, 대법원 2019. 3. 14. 선고 2015두46321 판결 등 참조).

현재 공감에서 대리하는 2개의 사건 중 서울행정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 재판부는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겠다며 선고기일을 추후 다시 잡겠다고 하였습니다. 서울고등법원에 계류 중인 나머지 사건 역시 선고를 미루어둔 상태입니다. 이제 공은 대법원으로 넘어간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공감은 공익법센터 어필을 비롯한 여러 변호사와 함께 위 판결이 난 사건의 상고심 소송대리인으로 합류하였습니다. 그리고 국제 노예제철폐의 날인 12월 2일을 하루 앞둔 지난 12월 1일, 이주선원들의 인권실태를 고발하고 제도개선을 위해 활동해온 경주이주노동자센터, 부산의 이주와 인권연구소, 익산의 성요셉노동자의 집, 이주노동자노동조합, 공익법센터 어필 등과 함께 대법원 앞에서 공정한 판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기자회견에는 전국 각지 50여개 이주인권단체들이 함께 했습니다.

2023년12월1일_국제_노예제폐지의_날_기자회견자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은 로마 시민권이 없는 사람에게만 해당되지 않음은 당연합니다.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박영아

# 국제인권센터# 빈곤과 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