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이 조각난 K-유학의 꿈 – 한신대 우즈베키스탄 유학생 강제출국 사건 이주단체 기자회견
한국에서 우즈베키스탄까지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비행. 그것은 한 편의 007 작전과도 같았습니다.
사건전말
2023년 11월 27일 점심시간, 한신대 어학당 오전 수업을 마친 23명의 우즈베키스탄 유학생들이 한 교실에 모였습니다. 며칠 전 한신대 관계자를 통해 ‘외국인등록증을 수령하기 위해 출입국에 다 같이 이동했다 학교로 돌아올 예정’이라는 안내를 받고 모인 학생들이었습니다. 학교는 학생들이 외출한 시간 동안 기숙사 방역이 진행될 예정이니 귀중품을 챙겨 나오라고 일렀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간단한 외출에 걸맞게 수중에 핸드폰과 지갑 정도만을 갖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한 데 모인 학생들은 한국에 들어온 지 두 달여 만에 드디어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는다는 생각에 들뜬 채로 줄지어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그런데 버스는 지하철 병점역에 멈춰 사설경비업체 십 수 명을 태웠고 그때부터 악몽 같은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밀폐된 버스 안, 학생들 수에 맞먹는 사설경비원들이 탑승한 뒤에야 학교 관계자는 버스의 목적지가 출입국이 아니라 ‘인천공항’이라고 알렸습니다. ‘한국에서 공부하기 위한 조건인 통장 잔고 유지를 하지 않은 학생들이 있고, 이대로 출입국에 가면 15일 가량 감옥에 갇혀 있다 강제출국 될 수밖에 없으니 지금 학교가 안내하는 대로 우즈베키스탄에 자진출국 했다가 나중에 다시 들어와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사설경비원들은 학생들의 핸드폰도 일괄 수거하였습니다. 한 두 시간의 짧은 외출을 생각하고 집을 나섰던 학생들은 이대로 우즈베키스탄에 간다는 말에 패닉에 빠졌습니다. 질문을 하고 항의를 해도 소용없었습니다.
학생들 중에는 한국에 먼저 유학중인 친형을 따라 어학원에 등록한 18살 학생 등 미성년자도 2명이나 있었지만 학교 관계자는 비행기 탑승 전까지 학생들이 가족들과도 연락을 할 수 없도록 철저히 차단하였습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에도 사설경비원들이 함께 출국수속을 밟고 비행기 탑승구까지 학생들과 동행하였고 학생들은 탑승 직전에야 자신의 핸드폰을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 학생은 극도의 스트레스와 공포감에 공항에서 실신해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22명의 학생들은 학교가 계획한 대로 우즈베키스탄행 비행기에 탑승해 한국을 떠났습니다. K팝, K드라마, 눈부신 경제성장 등 한국에 대해 갖고 있던 아름다운 인상들과 각기 품었던 한국에서의 꿈들이 산산이 조각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피해 학생들의 가족이 국민 신문고에 사건을 제보한 뒤 12월이 되어서야 사건이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이주단체들도 일동 충격에 빠졌습니다. 위법을 넘어 무법에 가까운 유학생 강제출국. 도대체 한신대는 왜 이렇게 무모한 행동을 한 것일까?
답은 “법무부 외국인 유학생 사증발급 및 체류관리 지침”에 있었습니다. 법무부가 외국인 학생의 체류를 관리하기 위한 이 지침은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학생에게는 특별히 더 엄격한 잔고유지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 두 나라 학생들의 유학 목적이 특히 의심스럽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지침에 따르면 학생들의 ‘불법체류’ 비율에 따라 대학의 등급이 나뉘고 그에 따라 우대 및 제재가 적용됩니다.
만약 우즈베키스탄 학생들이 잔고유지 요건을 맞추지 못해 비자취소 등의 제한이 있을 경우 이들이 이탈하여 미등록상태가 되면 이후 한신대가 외국인유학생 유치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 한신대는 아직 닥치지도 않은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무리해서 학생들을 강제 출국시킨 것이었습니다.
기자회견, 사건대응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등 15개 단체가 모여 긴급회의를 진행한 끝에, 이 사건이 단순히 한 대학교의 기행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되며 ‘특정 국가의 학생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는 차별적인 법무부 출입국 정책과, 외국인 유학생을 돈벌이 도구로만 바라본 대학교 운영’에 모두 문제제기하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주민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들이 함께 기자회견을 갖기로 하고 단체 연명을 요청한 지 3일 만에 130여개의 단체가 함께 하겠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그만큼 인권침해가 심각하여 문제제기가 절실한 사건이라는 뜻이었습니다.
2023년 12월 21일, 뜨거운 취재열기가 기자회견장인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을 가득 메웠습니다. 그전까지 신문 기사 등을 통해서만 전해졌던 피해학생과 그 가족들 그리고 조력자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전달되었습니다. 이어서 특정 국가 출신의 학생들을 차별하는 제도와 오로지 대학의 이익에 목을 매며 학생들의 인권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대학교의 행태에 대한 규탄, 근래 극심해진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정책과 난민법 개악안과 같은 이주정책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졌습니다.
[사진설명] 2023년 12월 21일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 ⓒ참여연대
기자회견 중, 하루아침에 한신대 어학당 학생이었던 아내와 생이별을 하게 된 에르킨존은 ‘배울 것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법치주의를 공부하고 있는데, 어떻게 한국이 이렇게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는지’ 따져 물었습니다. 누구도 답하지 못했습니다.
한신대 사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침해 진정, 한신대학교에 대한 형사고발사건 등 법적절차를 조력하는 과정에서 관련 출입국 규정, 피해학생들이 적어서 보내 준 진술서, 그날의 동영상 등 각종 자료들을 보고 있자면 애초에 대한민국에 ‘힘없는 나라 외국인에 대한 존중’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했었는지 묻게 됩니다. 향후 대응과정은 한국이 어쩌다 이렇게 잘못된 방향으로 간 것인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답을 찾는 긴 여정이 될 것 같습니다. 연말 어디선가 이 뉴스를 보고 혀를 찼던 기억이 있으시다면, 한신대 사건 책임소재가 파악되고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조치가 이루어질 때까지, 또 이런 사건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인 차별적 규정들이 개정될 때까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기자회견문]
[관련 기사]
2023. 12. 12. 한겨레 “여러분 감옥가야 한다”.. 한신대 ‘강제출국’버스안에서
2023. 12. 22. 신장식뉴스하이킥 “한신대 유학생 강제출국이 유학생 줄어 수입 줄까봐? – 쇼키르존&김지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