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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공감20주년# 바랐던_바라던_바라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장추련

[공감20주년 X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우리가 서로를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곳

우리가 서로를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곳

공감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고민할 때부터 장애인의 곁에 함께했던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리고 오랜시간 그 곁을 지켜준 이들입니다. 

우리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이후 장애인차별에 대한 대응을 고민하다가 장애인차별상담전화 ‘평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상담소 초기 10년도 훨씬 전 변호사의 수가 매우 적었고 당연히 공익활동을 하는 변호사의 수도 손꼽을 정도밖에 없는 상황에 법률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때 장애인의 삶에 대한 깊은 공감으로 그 고민들과 싸움의 현장에 함께해 준 곳이 공감이었습니다.

2011년 아주 중요한 사건 하나가 있었습니다. 노숙을 하시던 지적장애 여성분이 방화사건으로 유치장에 갇히게 되었고, 아직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고, 평지 상담소도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던 때였습니다. 뉴스에 방송될 정도의 사건이었지만, 지원을 받으실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습니다. 유치장에서 만난 그녀는 휠체어를 타고 집이 아닌 길에서 오랜시간 생활하던 분이었지만, 사람을 매우 좋아하는 재미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을 무시하고 함부로 하는 슈퍼마켓 주인에게 화가나서 방화를 하게 되었고, 이후 경찰이 조사과정에서 근처의 몇가지 방화사건을 모두 이 분의 죄로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경찰도 검찰도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모르던 시절 지적장애 여성에게 한걸음에 달려와준 사람이 공감의 차혜령변호사님이었습니다. 차변호사님은 이후 검사에게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지적장애인의 의사소통을 지원할 수 있는 조력원 배치’를 요청하였고, 이후 재판과정에서 ‘한국 형사소송 최초로 지적장애인의 의사소통을 지원할 수 있는 조력인’이 법정에 배치되었습니다. 지금도 당시 차변호사님의 법정 출석 당시 옷차림이 기억납니다. 배낭을 한쪽 어깨에 매고 청바지와 가벼운 셔츠를 입고 들어서던 차변호사님의 모습에 판사가 변호사님 맞으시냐고 몇 번이나 물었고 더 보란 듯이 당당하게 변론을 하시던 모습이 왠지 더 우리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설명] 왼쪽) 장애인차별상담전화 평지 법률지원단 사례회의 (사진 제공 :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 오른쪽)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20주년 기념

이후 공감은 연대단체로 법률지원으로 다양한 활동으로 장추련의 역사와 함께해왔고 단단한 우리편으로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장애인의 편이었던 염형국변호사님, 장서연변호사님 그리고 지적장애 여성의 삶에 큰 힘이 되어준 차혜령변호사님,
지금도 법률지원단으로 장추련의 ‘우리 변호사’가 되어주고 계신 조미연, 조인영 변호사님께 이 마음을 다해 우리편이 되어주어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이후 20년도 더 든든한 공감이 되기를…!!.

글_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2003년 58개 단체가 모여 결성했던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가 법 제정 이후 단체명을 바꿔서 장애인차별 해소를 위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곳입니다.

공감은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부터 함께 하며 장애인차별상담전화 평지 사례회의 자문위원, 장애인차별금지법 전면개정TF 활동 등으로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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