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 남기면 14년 동안 못 썼던 계약서 한 번이라도 쓰겠죠. 전국에 있는 프리랜서들”
공감을 오래 보아왔다면 이재학PD라는 이름이 익숙할 것 같습니다. 공감은 4년 전 고 이재학PD 사망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활동도 했었기 때문입니다.
‘재피’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고(故) 이재학PD는 무려 14년을 청주방송에서 PD로 일했습니다. 1주일에 그의 제작팀은 한 편씩 50분짜리 방송을 제작했는데 한 편당 그는 40만 원, 작가는 30만 원을 받았습니다. 2~3개 프로그램 조연출을 병행하던 재피를 제외하면, 함께하는 제작들의 월수입은 120만 원에서 160만 원 선이었습니다. 그는 입사 14년 만에 처음으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페이를 10만 원씩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해고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를 14년 동안 프리랜서라 부르던 회사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시작합니다.
지난 2월 4일은 고(故) 이재학 PD의 4주기였습니다. 저는 그 전날인 3일, 방송비정규직 당사자 및 지원자 모임인 엔딩크레딧, 민주노총 충북본부, 전국언론 주최로 열린 그의 4주기 추모제에 엔딩크레딧 회원으로 참여했습니다.
이 날 추모제는 고(故) 이재학 PD를 추모하는 자리이자, 그의 따뜻한 위로를 건네받는 자리였고, 아직은 남은 방송비정규직 투쟁을 위해 힘을 모으는 자리였습니다.
행사 앞 쪽 현수막에는 이재학PD의 사진과 함께 “판례 남기면 전국에 알려지게 되겠죠. 14년 동안 못 썼던 계약서 한 번이라도 쓰겠죠. 전국에 있는 프리랜서들.”이라는 이재학PD의 생전 발언이 인쇄되어있었습니다.
생전 만났으면 참 따뜻한 사람이었을 그는, 옆에 일하는 동료들을 위하여 용기를 내어 임금 인상을 요구하였던 것처럼, 다시 동료들을 위하여 용기를 내 소송을 진행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바람대로 그의 판결은 남았고 공감에서도 다른 소송을 진행하며, 그가 남긴 판결(청주지방법원 2021. 5. 13. 선고 2020나10528 판결)을 여러 번 인용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이재학PD의 싸움은 방송비정규직 문제를 다시금 공론화하였고 그 이후로 청주방송의 동료근로자들뿐만 아니라, 곳곳에 방송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이 시작되었고, 그를 중심으로 모였던 사람들은 이제는 그의 동생인 이대로씨가 이끄는 엔딩크레딧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과 차별의 벽은 여전히 높습니다. 근로자 지위를 확인 받고 돌아온 프리랜서들에게 방송국들은 법을 비웃듯 다시 프리랜서 계약서를 내밀기도 하고, 오랜 경력을 다 지우고 계약직 사원으로 돌아오라 그러기도 했습니다. 정규 직원으로 받아 달라 요구하는 이들을 괴롭히고 고립시키고, 방송에서 지우고, 업무를 바꾸고, 일하는 시간을 줄이기도 했습니다.
이 날 추모제에도 근로자로 확인 받은 뒤에도 원래 업무로 복귀하지 못하고, 괴롭힘과 고립을 마주하며 다시 법률대응과 투쟁을 이야기하는 광주MBC의 김동우(가명) 아나운서, 울산방송의 이산하 아나운서, 손민정 CG 제작자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유하였습니다.
방송비정규직의 투쟁은 근로자성 확인과 근로계약 체결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차별에 맞서 존엄을 되찾기 위한 싸움입니다. 같은 일을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10년이 되어도, 14년이 되어도 여전히 이름‘만’ 다른 우리 곁의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윤보다는 사람을, 분열보다는 연대를 택하자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청주방송의 부당함에 대응하였던 이재학 PD는 옳았고, 2심 법원은 이재학PD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곳곳에서 투쟁하는 방송 비정규직 동지들도 옳습니다.
거대 방송국들도 같은 문제를 숨기고 있기에 전파를 타기조차 쉽지 않은 방송 비정규직들과 엔딩크레딧의 투쟁에 공감과 함께 희망과 연대로 관심 가져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름 ‘엔딩크레딧’>은 방송노동자, 활동가, 법률가 등이 모여 ‘비정규직 백화점’이라고 불리는 방송현장의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방송 노동인권 단체입니다. 공감은 엔딩크레딧 출범부터 회원으로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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