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20주년 X 이주와인권연구소] 그러고 보니 언제나 공감의 변호사들이 있었습니다
공감 20주년을 축하하는 글을 써 달라는 고마운 부탁을 받았습니다.
백지를 마주하고 앉으니 공감의 변호사들을 만났던 갖가지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습니다.
욕설과 폭행이 견딜 수 없어서 배를 바꿔 달라고 출입국사무소를 제 발로 찾아갔다 보호소에 구금되고 강제출국 당했던 어선원 이주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긴 소송 끝에 돌아온 선원들이 직접 잡아서 말린 오징어 한 마리를 받아들고 천금을 받은 듯이 환하게 웃던 변호사님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언제나 공감의 변호사들이 있었습니다.
상담활동가들이 물고 온, 도무지 풀리지 않는 상담사례가 이주와 인권연구소의 새로운 활동 주제가 되곤 했습니다. 어선원 이주노동자, 농업 이주노동자, 아동복지시설 거주 이주아동, 장애를 가진 이주민 등등. 그 실태부터 알아야 했고, 상담이 풀리지 않는 것은 법과 제도의 장벽 때문이었으니 법과 제도를 바꿀 방향과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 언제나 공감의 변호사들이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발표회, 워크숍, 토론회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실태조사를 다니면서 함께 보낸 밤입니다. 술잔을 기울이거나 좁은 방에 옹기종기 드러누워 지금의 너와 나를 있게 한 지난 일들, 지금의 어려움,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나누던 이야기입니다.
[사진설명] (왼쪽) 2013년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최종보고회에서 윤지영 변호사 / (오른쪽) 2023년 선원이주노동자 최저임금 차별 대법원 기자회견에서 박영아 변호사
얼굴을 알게 되니 보였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막아선 방패를 향해 몸을 날리던 그 사람, 무지개 깃발을 들고 단상으로 뛰어나갔다 끌려 나오던 그 사람, 단아하고 꼿꼿하게 천막 농성장에 앉아 있던 그 사람, 겁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그 사람들이 공감의 변호사들이었습니다. 이기지 못한 소송에 괴로워하고, 힘에 부치는 기대에 버거워하고, 지키지 못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이던 그 사람들이었습니다.
숱한 판결문들은 공익과 사익을 비교해 판결을 내리지만, 공익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사람마다 말이 다르니 정해진 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20년 전에 전업하는 공익변호사는 낯선 이름이었습니다. 공감은 아무도 가본 적 없었던 길에 서서 공익이 무엇인지, 공익변호사는 어떤 사람인지, 선언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천을 통해 정의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소수자와 약자의 곁에서 법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 공익변호사임을 증명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듯이 보이는 공감 구성원들의 활동을 보면 몸과 마음의 건강이 걱정될 때가 있습니다. 처음 공감을 만났을 때 공감 구성원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는데, 이제 그 두 배가 넘었습니다. 조직이 커지면서 겪는 어려움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역행하는 듯한 시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기운을 잃지 않고 가던 길을 천천히 뚜벅뚜벅 걸어가며 새로운 20년을 준비하는 공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길에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열렬한 지지와 응원을 보냅니다.
[사진 설명] 2023년 부산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이주와인권연구소 식구들 (사진 제공 : 이주와인권연구소)
글_이한숙(이주와인권연구소 소장)
이주와인권연구소는
연구하는 활동가, 활동하는 연구자와 함께 하는, 부산에 근거지를 둔 단체로, 이주민을 비롯한 소수자의 인권 옹호를 위해 읽고, 쓰고, 말하며, 배우는 대안 연구소를 지향합니다.
공감과는 2013년 농축산업이주노동자인권상황실태조사를 비롯하여 10년 넘게 같이 연대하고 협력해왔으며, 이러한 협력과 연대는 공감 이주인권활동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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