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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기업과인권# 마이크로파이낸스# 약탈적대출# 캄보디아# 해외한국기업

빈곤을 착취하는 한국 은행들 – 기업인권네트워크 캄보디아 현지조사기

작년 가을, 태국 출장 중 만난 캄보디아 인권 활동가로부터 믿기 어려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캄보디아에 진출한 한국 은행들이 본래 빈곤 퇴치를 목적으로 설립된 소액금융(마이크로파이낸스) 기관을 인수하여 농촌 빈곤층을 대상으로 ‘약탈적 대출’*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빚의 수렁에 빠진 캄보디아 빈농은 유일한 생계수단인 토지마저 잃고 가족이 끼니를 거르거나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하는 등 피해가 심각하다고 했습니다.

선뜻 믿기 어려워 직접 찾아보니 외신에서는 이미 5년 전부터 캄보디아 소액금융 업계의 약탈적 대출로 인한 현지 주민의 피해에 대한 보도가 다수 있었습니다. 현지 인권 단체들은 2019년부터 수차례 보고서와 성명을 내며 정부와 은행들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해 왔고, 2023년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된 캄보디아 인권 특별보고관의 보고서에도 소액금융으로 인한 과다 부채, 토지 상실, 식량 안보 등의 문제가 지적되었습니다.

 

공감은 기업과인권네트워크** 활동가들과 함께 대응에 착수했습니다. 사안을 공유해준 현지 인권단체와 함께 (현지 법인의 비윤리적 대출 관행이 다수 제기된)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 본사에 서한을 보내어 현지 상황을 자세히 전달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비공개 이해관계자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은행 측은 무대응으로 일관했습니다. 은행과 금융그룹 본사에 전화를 하고, ESG 담당 부서에 연락처를 남기고, 고객 민원까지 접수해보았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나마 돌아온 답변은 캄보디아 자회사는 별도 법인이므로 본사와 관련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은행과의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은 어렵다고 판단하고 현지조사를 통해 피해 사실을 직접 확인하고 이를 국내에 알리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8월 저와 황필규 변호사를 포함한 기업과인권네트워크 구성원 5명은 캄보디아를 방문해 현지조사를 진행했습니다.

현지조사팀은 열흘에 걸쳐 KB국민은행의 현지 법인 ‘KB프라삭은행’과 우리은행의 현지 법인 ‘캄보디아 우리은행’의 약탈적 대출 관행으로 고통받고 있는 가족들을 만나 면담을 진행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인권 단체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보다 다양한 배경과 상황의 피해자를 만나기 위해 상황이 특히 심각한 동북부 선주민 지역을 차량 편도 8시간 거리를 이동하여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은행 측 입장도 이해하기 위하여 KB프라삭은행과 캄보디아 우리은행 사무소를 방문해 임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진 설명] 캄보디아 현지조사에 참여한 기업인권네트워크 현지조사팀

저희 현지조사에 동행하고 별도 취재를 진행한 기자의 기사에서 자세한 피해자 면담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21 제1533호 표지이야기, 한국 은행들에는 ‘기회의 땅’ 최빈국 빈농에겐 ‘절망의 땅’

캄보디아는 여전히 최빈국(최저개발국)으로 분류되고 노동인구의 약 20.5%가 국제빈곤선인 하루 2.15달러 이하로 생활합니다. 특히 농촌 지역의 빈곤이 심각하고 저희가 방문한 북동부 라타나키리(Ratanakiri) 주의 경우 상황이 특히 열악하여 기대수명이 남성 39세, 여성 43세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과거 NGO에서 비영리로 운영하던 소액금융 기관들은 이러한 저소득, 저신용 농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나 자립할 수 있도록 무담보로 소액금융을 제공하여 소규모 사업을 시작하거나 농기구 등에 투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영리 소액금융 기관을 인수한 KB국민은행, 우리은행 등 상업은행들은 과거 지원 대상이었던 농촌 빈곤층을 대상으로 영리 대출 사업을 하며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KB프라삭은행의 2023년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대출자의 90% 이상이 농촌 지역에 거주하며 75% 이상이 여성인데 2023년 한 해에만 이자 수익으로 약 6억 6771만달러(한화 약 9275억원)을 벌어들였습니다.

어떻게 최빈국은 빈농을 대상으로 이런 수익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현지 인권 단체 보고서와 독일 정부에서 발주한 연구 보고서 등에 의하면 그 비결은 높은 이자율과 토지 담보, 그리고 공격적인 추심 방식에 있습니다.

우선 금융 문해력이 낮고 예전 ‘NGO 은행’에서 대출 경험이 있는 빈농에게 토지를 담보로 상환능력을 벗어난 과다한 금액을 빌려줍니다. 법정 상한인 연 18%에 가까운 높은 이자율과 1-2%의 행정 수수료, 연체료 등이 더해져 상환이 어렵게 되면, 은행 직원들은 채무자에게 담보 토지를 팔거나 사채를 받아서라도 빚을 갚을 것을 강요합니다. 직원 입장에서는 부실채권 비율이 높아지면 월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센티브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채무자의 집으로 계속 찾아가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주거나 지방 관리를 동원하는 등 강압적인 추심 방식을 사용합니다. 이에 못 이긴 농민들은 유일한 생계수단인 토지를 팔고 끼니마저 해결하기 어려운 깊은 가난에 빠지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은행들의 관행이 현지에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 등 국제적 규범에 따르면 기업들은 자신의 수익활동이 현지 공동체와 주민들의 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고 이를 침해하지 않을 최소한의 책임이 있습니다. 주 고객층이 최빈국의 빈곤선을 넘나드는 취약층이라면 더욱 높은 수준의 주의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한국 은행들은 지금이라도 캄보디아 현지 법인의 영업, 대출심사 및 추심 절차, 직원의 인센티브 구조 등을 개선하고 약탈적 대출 피해자들에게 실효적인 구제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는 것을 더 이상 피해서는 안 됩니다.

 

기업과인권네트워크는 현지조사에서 파악한 내용을 분석한 보고서를 연말에 발표하고 한국 은행들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하는 활동을 계속할 예정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이란 실제 상환능력이 없는 채무자에게 담보 가치 등만 고려하여 돈을 빌려주고 이득을 취하는 비윤리적 대출 관행을 뜻합니다.

**기업과인권네트워크는 한국 기업의 해외사업과 관련된 인권, 노동, 환경 문제를 감시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공감을 포함한 국내 인권·노동·환경·공익법단체의 연대체입니다.

 

[관련기사]

한겨레21, 마이크로파이낸스인가 약탈적 금융인가(제1533호)

로리더, 김남근 “우리은행, 캄보디아서 빈민구제 은행 인수해 고리사채 영업”(2024.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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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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