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복지법 전면개정안 발의 – 미쳤다는 정체성, 매드 프라이드를 인정하는 사회를 위해
지난 5월 29일 서울시의회 일대에서 세계 조현병의 날을 맞아 “2024년 매드프라이 서울 ‘다들 미치는 세상 아닌가요?” 행사가 열렸습니다. 참가자들은 “우린 미쳤다”를 외쳤습니다. 매드 프라이드는 정신질환 및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주도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존중받고 사회적으로 포용 받을 수 있도록 대중의 이해와 인식을 높이고자 기획된 운동으로 1993년 캐나다에서 시작되어 영국, 프랑스, 브라질 등 세계 여러 나라로 확장돼 열리고 있습니다. 매드 프라이드와 같은 ‘매드운동’은 ‘미쳤다’고, ‘비정상’이라고 ‘정신적으로 아프다’고 간주되는 자들이 ‘매드’(Mad, 광기)라는 언어를 되찾아 기존의 부정적 의미를 전복시키고, 미쳤다는 것을 문화와 정체성의 근거로 제시하는 운동입니다. ‘매드’한 자들은 치료를 받아야 하고,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매드’한 채로 살아가고 관계 맺고 나이 들어가면서 온전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진 설명] 2024 매드프라이드 서울에 스태프로 참여한 공감 자원활동가들과 조인영 변호사
대다수의 사람들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강제로 구금당하고, 폭행당하고, 원하지 않는 삶을 강요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은 참혹하기 그지 없습니다.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되고, 강제입원되고, 입원되는 과정에서 폭행을 당하기도 사망하기도 하며, 입원 후 자의로 퇴원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입원하는 동안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만을 제기했다는 이유만으로 격리·강박당하고 과도한 약물을 주입당하기 일쑤입니다. 병원 내에서의 인권침해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으나, 사건이 발생한 그때만 언론의 주목을 받을 뿐입니다. 비인간적인 행위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그 몸이, 그 경험이, 그 마음이 증거인 이들이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데도,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은 없었습니다.
정신질환자 및 정신장애인에 대한 회전문식 강제입원과 인권침해가 반복되는 것은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 때문만이 아닙니다. 정신질환자 및 정신장애인을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시민으로 바라보지 않는 제도 때문입니다.
작년 정신장애계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이하 ‘정신건강복지법’) 전면개정안을 발의하였고, 올해 초 일부 조문이 개정되기도 하였습니다. 개정법률에는 정신질환을 경험한 당사자로서 정신질환자등에 대한 상담 및 교육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동료지원인”의 양성 및 활동지원 등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고, 일시적 정신건강 위기를 겪는 정신질환자 등에 대하여 임시로 보호하면서 동료지원인 상담 등을 제공하는 동료지원쉼터 “동료지원쉼터의 설치ㆍ운영”을 신설하였으며, 정신병원을 포함한 정신건강증진시설에서 입・퇴원 시 절차를 지원하는 “절차조력”제도를 신설하였습니다.
[사진설명] 2023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촉구 기자회견
그러나 정신질환자와 정신장애인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된 정신건강복지법은 여전히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폐지하도록 권고한 강제입원제도는 여전히 당사자들을 옥죄고 있으며, 보호책임과 의무를 가족에게 떠밀면서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끝을 알 수 없는 터널로 내몰고 있습니다. 허울뿐인 복지서비스 제공 조항은 당사자가 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복지서비스를 확대하는데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정신병원에서 비일비재하게 인권침해, 폭력, 상해, 사망 사건이 발생하는데 정신건강복지법은 제대로 된 처벌조항, 사후 모니터링 조항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격리·강박으로 인해 상해를 입고, 사망해도 병원장을 비롯한 책임자들은 벌금형에 그치고 있으며, 버젓이 병원을 운영합니다.
지난 5월 부천더블유진병원에서는 다이어트 약 중독 치료를 위해 입원한 33살 여성이 입원 한지 17일 만에 격리실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피해자는 격리실에 갇혀 복통을 호소했음에도 제대로 된 구호조치를 받지 못한 채 오히려 2시간 동안 손과 발, 가슴 등 ‘5포인트 강박’을 당했습니다. 5포인트는 신체의 다섯 군데를 묶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사인은 ‘급성 가성 장폐색’으로 추정됐습니다. 보건복지부의 격리강박지침에 따르면, 격리가 시행되면 의료진 및 직원들은 환자의 직·간접적 요구사항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적절한 관찰을 하기 위하여 최소 1시간마다 관찰 및 평가를 하여야 합니다. 모니터링 시간을 짧게 정하고, 환자의 상태 특히, 정서적·신체적 욕구를 면밀하게 평가하도록 한 것은 격리 자체가 환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격리가 환자 상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해당 사건에서 이러한 지침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당사자가 장폐색으로 죽어가는 동안 의료진은 이를 인지하지 못했으며, 제대로 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이러한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상 격리・강박 지침을 어겼다고 하더라도 처벌하는 규정은 없으며, 격리・강박으로 인해 환자가 사망했다고 하더라고 병원장은 처벌받지 않거나 벌금형에 그치기 때문입니다.
결국 당사자들의 질환이 아닌 사회가, 제도적 미비가 당사자들을 사회에서 배제시키고 소외시키고 있습니다. 제도는 그 사회의 거울과도 같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정신질환자 및 정신장애인에 대한 관점이 변화하였고, 의료적으로는 비강압적인 치료를 우선하고, 복지서비스에서는 정신적 어려움에 초점을 맞춘 복지지원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한국은 너무나 뒤쳐져 있습니다.
정신장애계는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고 정신질환자 및 정신장애인으로서 존중받고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지난 11월 6일 정신건강복지법 전면개정안을 내놓았습니다. 해당 법안에는 정신건강권익옹호체계(절차조력, 사후 학대 대응, 모니터링 등 담당) 마련, 다양한 복지서비스 제공의 구체적 내용 명시,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제도 폐지, 입퇴원제도 개선 및 입퇴원절차에서 권리보장, 자립생활지원 및 동료지원 근거마련, 동료지원센터 설치 및 운영 근거 및 역할 명시 등 정신장애계가 오랫동안 염원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사진 설명] (왼쪽) 2024년 11월 5일 국회에서 진행한 정신건강복지법 입법 개정을 위한 기자회견 / (오른쪽) 발언중인 조인영 변호사
이 법안은 당사자들의 욕구와 필요가 반영된 법안이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따라 정신질환자와 정신장애인의 권익을 보호하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안입니다. 각 조문은 당사자의 삶, 치료, 회복, 가족, 사회적 통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변화는 미룰 수 없고, 미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22대 국회에서는 미비한 정신건강복지법 조항들이 신설·개정되어 정신질환자 및 정신장애인의 권리보장에 있어서 보다 실효적인 역할을 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공감은 정신질환자 및 정신장애인의 권익옹호를 위해 곁에서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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