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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HIV감염인# 장애인등록신청# 장애인인권

기꺼이 함께 휘말리기 – HIV 감염인 장애 등록 소송을 마치며

의료인류학자이자 HIV/AIDS 인권운동 활동가 서보경은 ‘먼저 휘말린 사람들’로서 HIV 당사자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 <휘말린 날들: HIV, 감염 그리고 질병과 함께 미래 짓기>에서 서보경 ‘감염을 “감염되다”, “감염시키다”라는 능/수동의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 “감염하다”라는 중동태로 표현하며, 바이러스와 인간의 몸을 관계적이고 유동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고 합니다. HIV감염인 또한 감염된 사람, 감염시킨 사람이라는 관점을 넘어 먼저 휘말린 사람들이라고 보며, HIV를 둘러싼 문제들이 결코 특수한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질병과 건강, 개인과 공동체 등에 관한 가장 보편적인 가치와 맞닿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삶에 함께 휘말리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이 글은 HIV 감염인 장애 등록 소송은 공감이 기꺼이 함께 휘말렸던 나날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장애인정소송이 무엇인지, “HIV감염인에 대한 장애인정 소송”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낯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HIV감염인에 대한 장애인정소송이라면 HIV감염인을 장애인으로 인정해달라고 하는 것인데, 과연 장애범주에 HIV감염인이 포함될 수 있는 것인지 물음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이 장애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장애인복지법에서는 장애인을 “장애인이란 신체적ㆍ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라고 규정하면서, 그 목적을 “장애인의 복지와 사회활동 참여증진을 통하여 사회통합에 이바지함”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장애인복지법이 장애유형을 특정하며 장애유형을 제한하고 있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신체적, 정신적 특징으로 인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제약이 있어 사회에 통합되어 살아가기 어려운 사람을 장애인으로 보아 지원하는 것입니다.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사회적 제약이나 차별로 인해 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침해 당하고, 한 시민으로서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국가가 책임을 갖고 지원함으로써, “함께”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목적에 따라 장애유형은 점차 확대되어 왔으며, 다양한 신체적·정신적 제약을 가진 사람들이 장애인으로 인정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정부도 장애정도심사위원회의 예외적 장애인정 절차를 마련하는 등 장애등록을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오고 있습니다.

또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장애를 의료적 관점이 아닌 인권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장애를 만드는 요인이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특징 뿐만이 아닌 사회적 제도, 인식, 차별적 관점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며 장애범주를 확대해야 한다고 하며, ‘HIV/AIDS 감염 장애인 등의 모든 장애를 아우르는 장애 개념을 채택하라’고 권고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HIV는 명백히 장애에 해당합니다. HIV감염인이 HIV감염과 치료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각종 질환은 신체적 어려움을 겪게 합니다. 또한 HIV감염인은 상시적으로 사회적 낙인, 차별을 경험하고, 사회적 관계 맺기의 어려움, 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및 우울증 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신체적ㆍ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에 해당함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에서 장애등록제도는 HIV감염인을 장애유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등록된 장애유형이 아니라는 이유로 장애 정도 심사용 진단서를 발급하지 않아, 장애등록신청을 할 수조차 없습니다. 정부가 예외적인 장애인정절차를 도입했다고 공표하며 홍보한 것이 무색하게도 HIV감염인은 장애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아닌지 심사의 대상조차 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정부가 HIV감염인을 외면하는 동안, HIV감염인들은 위태로운 생활을 지속하고, 차별과 낙인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장애인정소송을 통해 면역장애라는 장애범주가 인정되어 HIV감염인이 장애인으로서 지원이 필요한 만큼 지원 받고, 차별 받은 경우 구제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차별 받지 않고, 국가의 책임 있는 지원 하에 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는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 HIV감염인이 이미 갖고 있는 권리입니다. 장애인정소송은 지금까지 배제되고 소외되었던 HIV감염인의 권리를 이제라도 국가가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입니다.

공감은 2024년 4월 17일, 이 소송을 위해 용기를 낸 당사자와 대구레드리본,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등과 함께 HIV 감염인 장애등록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정부가 먼저 나서서 해야 할 일이었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기에 결국 당사자들이 나섰습니다. 또한 이 소송이 시작되기까지 많은 이들의 용기와 연대와 지원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이번 소송의 당사자는 직접 공판정에 나와 재판진행상황을 지켜보며 늘 가슴 졸였습니다.

그러나 첫 공판부터 약 7개월의 시간 동안 HIV 감염인이 장애인으로 등록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실체적 판단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장애인등록신청을 반려한 주체가 피고인 대구남구청장이 아니라 대명6동장이라는 점에서 행정법적으로 권한 있는 주체가 누구인지 등만이 다투어졌습니다. 결국 선고일까지 HIV 감염인의 어려움에 대한 실체판단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행정소송에서 무효를 다투는 경우에는 실체적 내용을 다투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7개월 동안 재판은 이루어졌지만 당사자를 위한 정의는 또 다시 지연되었습니다. HIV 감염인의 삶을 변화 시킬 수 있는 길은 소송이 유일한 상황에서 흘러 가버린 7개월은 소송의 당사자를 비롯한 HIV감염인들에 대한 지연된 정의의 시간이었습니다. 생애 내내 온전한 삶을 보장 받지 못했는데, 법 앞에서 또 다시 힘든 시간을 겪어야 했습니다. 물론 이 소송으로 HIV 감염인의 장애등록에 대한 국회와 정부의 관심을 얻고,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어디에서도 확실한 답을 듣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법원의 판결을 보면, 그 책임은 결국 행정청에게 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법원은 장애등록신청반려처분에 대한 소제기에 관해 대구남구청장에 대해서는 각하를 했고, 장애등록신청을 접수한 대명6동장에 대해서는 무효라고 결정했습니다. 즉 대명6동장의 장애등록신청반려처분은 권한이 없는 자에 의한 처분이므로 효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장애인복지법상 장애등록신청을 거부할 권한이 명문상 구청장에게 있기 때문에 동장은 신청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명6동장은 처음부터 이러한 체계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고 구청장명의로 장애등록신청반려처분을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명6동장은 장애등록신청을 권한도 없이 민원으로만 처리하였습니다. 현재 장애등록신청은 행정복지센터에서만 받고 있기 때문에 당사자는 알 길이 없었으며, 당연히 행정청의 처분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민의 가장 근거리에서 국민의 생활을 책임져야 할 지자체 행정청이 어떻게 이렇게 무심하고 무책임할 수 있을까요.

이제 당사자는 다시 장애등록신청을 한 후 남구청장 명의의 반려처분서를 받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당사자 뿐만 아니라 HIV감염인 당사자들, 활동가들이 모두 희망을 품고 지켜 봐왔던 소송이 너무나 아쉽게 제대로 다퉈보지도 못하고 끝이 났습니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법원이 HIV감염인들의 삶의 어려움을 들여다보고 장애인으로 등록될 필요성을 인정받는 것이었으나, 그러한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선고날 모인 모두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힘을 내어 문을 두드려보자고 다짐했습니다. 행정청은 이번 소송에서 드러난 HIV 감염인의 삶의 어려움과 이들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면 장애등록신청을 받아들일지에 대해서 행정청에서 반드시 고민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뚜렛증후군 장애인정 판례상 행정청은 그럴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있습니다. HIV 감염인들의 삶이 지속되는 한 함께하는 이들의 투쟁 또한 멈추지 않을 것이며, 공감은 기꺼이 함께 휘말리려고 합니다.

 

* 공감 장애인권팀은 자원활동가들과 <휘말린 날들: HIV, 감염 그리고 질병과 함께 미래 짓기>을 함께 읽었습니다. 의료인류학자이자 HIV/AIDS 인권운동 활동가로서 ‘먼저 휘말린 사람들’인 HIV 당사자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이 책은 대한출판협회 선정 “2024 한국에서 가장 지혜로운 책 10종“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서보경 작가님의 책을 더 많은 분들이 함께 읽기를 바라며, 조우현 자원활동가가 쓴 서평을 함께 공유합니다.

[공감 자원활동가의 활동] 서평 _ 휘말린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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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영

# 장애인 인권# 재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