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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V감염인# 자원활동가# 장애인인권

[공감 자원활동가의 활동] 서평 : 휘말린 날들 (HIV, 감염 그리고 질병과 함께 미래 짓기) _ 서보경

책 <휘말린 날들>은 HIV/AIDS 감염에 대한 대안적 인식의 가능성을 여는 책이다. 저자는 감염 여부를 넘어, 에이즈가 어떻게 우리 모두의 일이 될 수 있는지, 또 되어야 하는지를 반복해서 강조한다. 1990년대 이후 여러 항바이러스 요법이 개발되면서 HIV 감염은 더 이상 심각한 면역 결핍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HIV 감염을 돌이킬 수 없는 훼손으로 오인하고, 기존에 생성된 상징 구조에 기대어 감염인들을 낙인찍는다. 초기 에이즈 환자(페이션트 제로)에 대한 소문은 책임 전가에 필요한 희생양을 제공했고, 남성 동성애자가 지목되었다. 피해의 원인으로 특정한 누군가를 지목하고 공동체 밖으로 내쫓는 인류의 전통이 다시금 반복되었다.

유행 초기의 HIV 감염은 남성 동성애자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파되었다. 사회 주류는 ‘그들’을 배제한 ‘깨끗한 우리’의 서사를 꾸며내 불안에 대응했다. 그러나 에이즈는 결코 누군가의 병이 될 수 없다. 에이즈는 HIV 감염 이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사람 모두에게 생겨나는 병이며, HIV 감염은 여타 감염병이 그렇듯 타인과의 접촉, 연결에 기인한다. ‘앞줄에 있다’는 것이 비난의 이유가 될 수 없는 것처럼, 감염병 유행을 특정한 ‘누구 탓’으로 돌리지 않는 것에서부터 감염병 위기 해결을 위한 올바른 대처가 시작될 수 있다.

전염병 감염의 행위성과 책임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기존의 언어체계에서 감염자는 감염 ‘당하는’ 환자이자 피해자인 동시에 타인을 ‘감염시킬’ 수 있는 질병의 매개체이자 운반자로 여겨진다. HIV 감염인에게는 피해자로서는 감염을 당한 책임이, 매개자로서는 감염을 일으킨 책임이 부여된다. 그러나 감염에 있어 누군가에게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할까. 저자는 감염에 대한 책임 소재 귀속의 논의에서 나아가, ‘질병에 걸린 상태’를 다시 정의하자고 제안한다. 의철학자인 캉길렘은 감염을 비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생명의 새로운 모습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강과 질병이 대립적 상태가 아닐 때, 완치 없는 미래-에이즈 발병으로 이어지지 않은 HIV 감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가능하다. 감염은 ‘휘말리는 일’ 혹은 ‘감염하다’와 같은 중동태의 범주로 이해되어야 한다. 유행은 “쪼개어 나눌 수 없는 서로의 휘말림”이고, 따라서 언제나 공동체이다.

서구 사회와 달리 에이즈가 전면적 유행으로 번지지 않았던 한국에서 에이즈는 생물학적 죽음이 아닌 사회적 죽음을 의미했다. 1985년 에이즈의 위험과 그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자리에서, 정부 관계자는 질병 전파의 가장 큰 요소로 “난잡하고 불법적인 성행위”를 지목했고, 아직 증상이 발생하지 않은 “보균자”가 주요 감염원으로 특정되었다. 이때 제시된 가이드라인은 이후에도 에이즈에 대한 정부 정책을 결정하는 사고의 틀이 되었다. 에이즈는 외래 유입과 국내 확신을 막아야 하는 ‘방역’의 대상이 되었고, 정부는 이를 위해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강제 검진을 강행했다. 구체적인 예방 지침인 ‘세이프 섹스’에 대한 논의는 전무했고, 감염자 집단에 대한 공포와 ‘건전한 성생활’에 대한 강조만이 예방 대책으로 시행되었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제 19조의 전파매개행위 금지 조항은 이러한 예방 대책의 일환으로 마련되었다. 한국은 여러 감염병 가운데 오직 HIV 감염인에 한하여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성행위를 금지하고 처벌한다. 감염한 사람은 감염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성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항바이러스 치료를 조기에 시작하는 경우, 콘돔 없는 성관계를 하더라도 비감염인 파트너에게 HIV를 전파할 위험은 없다. 바이러스 미검출은 곧 감염 가능성이 없음을 의미하지만, 현행 법은 비과학적인 ‘위험’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HIV 감염인의 성행위를 규제한다. “감염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의 전파”라는 추상적 위험에 기인해 처벌하는 현 상황은, 위험의 실질성이 아니라 도덕적 위반에 대한 감각을 기준으로 사법적 처벌이 이뤄짐을 암시한다.

또한 한국은 자발적 HIV 검사율이 낮기에, 에이즈가 발병되고 나서 스스로의 HIV 감염 사실을 처음 인지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처럼 감염 사실을 모른 체 나빠진 면역 상태로 첫 확진 판정을 받은 ‘후기 발현자’들의 삶은 건강한 HIV 감염인의 삶보다 더욱 열악하다. 병원에서는 이들의 치료를 거부하거나, 표준주의 진료원칙을 넘는 수준의 주의를 기울여 차별적으로 대한다. 치료 이후에도 후기 발현자들이 머물 수 있는 요양 시설은 그 수가 적고, 입원이 가능한 경우에도 환자 대우에 있어 열악한 경우가 잦다.

차별적 인식에 바탕을 둔 HIV/AIDS에 대한 이해가 사회 전반을 장악했고, AIDS 감염은 우리의 일이 아닌 ‘그들’의 일로 내쳐졌다. 나도 감염될 수 있다는 우려는 감염인에 대한 혐오와 타자화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감염의 단위는 언제나 공동체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는 확진자를 특정하고 비난하는 일이 그 자체로 무용한 일에 지나지 않음을 사회에 보여주었다. 감염병 위기에서 도마에 오르는 것은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의 대응 능력이며, 사회의 대응 능력은 단지 ‘앞줄에 서 있던 것일 뿐이었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글 _ 조우현 (공감 40기 자원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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