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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 아웃리치# 여성인권# 이태원

떠나지 못하는 사람, 떠나지 않는 사람 ‘이태원’ – 이태원 유흥업소 종사 여성 6인 구술 인터뷰 자료집 발간

2019년즈음부터 한 달에 한 번, 내가 이태원역 근처에서 이룸 활동가들과 모여 근방 언덕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가게들 문을 두드린지 반복한지 5년째다(물론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이 이태원을 오간지는 2015년부터이니 십년이 넘었다). 우리가 방문하는 곳들은 오래전부터 간판 불을 켜고 이태원 언덕배기에 자기 자리를 맡아 온 가게들로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빌리면) ‘반잔바’, 그리고 ‘트랜스젠더바’라 불려왔다. 

이태원에는 1950년대 후반 주한미군사령부의 용산기지 이전과 함께 (아마도 국가 주도의) 기지촌 반잔바(소위 양키바)들이 생겨났다, 2016년 미군기지 평택 이전 뒤 반잔바들은 소멸 중이다. 일부 사람들은 흩어졌지만 이곳에 남아 노년을 맞이한 이들도 있다. 최근엔 트랜스젠더바가 그 자리를 점점 채우는 중이다.  

두 공간은 상대하는 ‘손님’이나 일하는 ‘아가씨’도 다르고 영업 방식도 조금씩 다르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하지만 내가 처음 아웃리치에 합류했을 땐 (한두명이 일 하는 작은 가게의 경우) 방금 들어갔다 나온 곳이 반잔바인지 TG바인지 구별을 잘 못했던 시기도 있었다. 우리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며 “한 달에 한 번 오는 이룸상담소예요”라는 인사를 전했을 때 흔쾌히 맞아 주는 누군가는 다 ‘언니’라고 불렀기 때문에 사실 특별히 구별이 불필요 하기도 했다. 얼굴을 익히고, 신뢰가 쌓이면서 이룸으로 지원요청을 하는 이들도 늘었고, 종사자들이 겪는  크고 작은 사건을 접하거나 직접 지원할 기회도 있었다. 

 

5년 사이, 이태원이라는 지역을 훑고 지나간 굵직한 사건들이 만든 진동에 동네 지형 변화는 가속도가 붙었다. 최근까지 약속잡기 좋은 ‘힙한 공간’이다가, 재건축과 재개발 사업으로 시끄럽다가, 감염병과 집합금지로 주목을 받아 서늘하게 조용하던 시기를 지나, 사회적 참사를 명명하는 장소로 불리기도 했다. 작년부턴  문을 닫고 사라지는 가게들이 확실히 늘었고, 여러 건물이 엉켜있던 한 구역은 대대적인 건물철거로 텅빈 넓은 땅 둘레에 쇠붙이로 만든 높은 담이 세워져 접근이 통제되었다. 재개발 이야기가 급물살을 타면서 가장자리로 밀려나 사라질 것 같은 지금의 이 공간을 기록할 필요를 느꼈다. 이태원은 심하게 휘청 거리는 듯하지만,  밤이되면 기어코 크고 작은  ‘업소’간판 불이 밤새 켜지고 거리에 사람들이 채워졌다. 

그이들의 이태원살이도 이태원의 한 얼굴로 기록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한 이들이 모여 작년 한 해 진행한 것이 기록사업, ‘이태원 유흥업소 종사 여성 6인 구술 인터뷰(부제)’로  정리된 자료집으로 나왔다. 주기획자인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들과 성매매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둔 연구가들 그리고 아웃리치 자원활동가인 나도 참여기회를 얻었다. 우리는 성매매산업에 대한 고민,  아웃리치로 축적된 정보들을 바탕으로 이태원 업소에서 일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기획하고 인터뷰어를 맡았다. 

인터뷰이, 구술자들은 이태원에 소재한 업소들에서 일했던 혹은 일 하는 중인 이들이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는 한 업소 종사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사를 물을 일도 들을 일도 흔치 않은 일이어서, 특수한 형태의 유흥업소가 모여있는 공간(일종의 소위 집결지라고 불리는 공간)에 대해 그 공간 ‘안’의 사람들의 이야기로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귀한 기회였다. 

 

반잔바 종사 경험있는 인터뷰이들은 각자 자신의 삶의 큰 변곡점에서 이곳 이태원으로 들어왔고, 이태원에서 일해왔다. (아웃리치를 다닐 땐 미군이나 외국인을 상대로 장사 해온 업소를 ‘양키바’로 불렀는데 인터뷰 중에 종사자들끼리는 이곳을 손님이 잔술을 시키면서 아가씨에게 반잔술을 사주는 ‘반잔바’라고 지칭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터뷰어가 주로 이태원이라는 공간 속 성산업(인입 계기, 영업 방식, 성매매 경험 속 업주나 구매자 그리고 동료들과의 관계 등)에 대해 질문하였기에 인터뷰이에게 성매매라는 단어로 엮인 삶을 들을 수 있었지만,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면서는 오히려 그이의 이야기를 엮는 주 서사는 ‘여성’으로서 경험한 경제적 빈곤의 힘과 여성성을 자원/대상으로 삼아 ‘성장’하는 사회가 그이들에게 요구한 생존전략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국가주도의 기지촌 형성과 외국인 상대 성산업 속에서 어떤 가능성이 보이던 ‘호시절’과 치가 떨리는 비극이 교차했던 이곳. 인터뷰이들은 지금도(아직) 떠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선뜻 설명하진 못했지만 겹치는 답변은 이 ‘안’이 겹겹이 쌓인 낙인이 가벼워지는 공간이어서였다. 고립된 듯 보이지만 모든 사회적 변화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은 공간은 그 ‘밖’과 다르지 않게 작동하기도 했다. 떠나지 않는/ 떠날 수 없는 이유라는 질문은 안과 밖의 선택지가 그이들에게 있는 것 같은 전제에서 던져진다. 그 답이나 원인을 찾아야 하는 것은(여러 지역에서 집결지 폐쇄 움직임 속에서 반복적으로 그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던져질 질문이 아니라 질문의 방향을 바꿔) 사회의 몫은 아닐까 질문해 보았다.    

반잔바와 일부 시기를 겹쳐 등장하고 계속 자리를 넓혀가는 중인 이태원 트랜스젠더바들도 아웃리치 대상 업소에 포함된다. 트랜스젠더바에서 일하는 인터뷰이들의 삶은 반잔바의 역사와 다른 방식으로 다채롭다. 하리수를 TV에서 보고 세상에 저런 사람(트랜스젠더)는 나랑 하리수 둘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이태원으로 왔는데 와보니 다들 너무 “예뻐서” 신세계였다는 경험, 수술이나 주민등록번호 변경(법적 성별정정)이 꼭 필수거나 우선순위가 아니기도 한 분위기, 이제는 아가씨에게 함부로 하면 장사 못한다는 가게 사장들은 요즘 20대초반의 MZ 들과 협상력면에서 달린다는 이야기까지. 손님에 대한 기억, 일에 대한 자기평가는 각기  달랐지만 이곳에 오게 된 계기에 대한 질문에서는 젠더바가 모여있는 여기에서는 적어도 슈퍼에 가더라도 트랜스젠더라고 멸시나 차별을 경험하진 않아도 된다는 말이 겹쳐 이태원이 그이들에게 주는 긍정감과 안정감을 기록할 수 있었다. 동시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폭력과 수치에 대한 기억도 공존한다. 하지만 집주인 아저씨와 재계약 한 이유도 ‘동네’ 편히 다닐 수는 이태원만의 ‘포용적 분위기 덕’이라 했다. 공간에 대한 복합/복잡한 평가에 대해 인터뷰어들은 성매매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특정 공간에 국한해 그 존재를 ‘허용(존재에는 찬반이 불가함에도)’한 결과로만 볼 것인지, 고유의 문화에서 비롯된 ‘다양성 수용’이라 평가할 것인지 아직 결론 내지 못했다. 다만  그이들이 ‘업소세계’로 모이는 사회구조적 이유에 대한 분석, 이 공간에서 ‘거래’되는 것은 대체 무엇인지 그 질문에 대한 답 역시 그이들 보다는 사회가 분석하고 고민해봐야 할 일이라 적어두었다. 

 

이번 구술기록은  “한 달에 한 번 방문하는 이룸이에요”라는 인사에 기꺼이 가게 문을 열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을 들인 이룸의 노력 덕에 가능했던 기획이었다. 기획팀 구성원들과 함께 인터뷰어로서 질문구성과 결과물 재구성을 위해 나눈 오랜 고민, 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인터뷰어에게 풀어준 인터뷰이들의 솔직함으로 이태원을 달리 경험할 수 있었다. 일단은 분석(혹은 평가)에 앞서 최대한  ‘날 것’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단계에서 이번 기록작업이 마무리되었지만,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다른 각도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성매매’라는 의제에 대한 복잡다단한 면도 쓰윽 볼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뷰이 개인 서사에 더해 근 10여년 사이의 이태원의 업소들로 확인할 수 있는 성산업의 특징이나 변화 양태(혹은 변하지 않는 본질)의 연결지점을 엮어보는 것은 아직 다하지 못했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어질 후속 작업을 통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내보일 수 있기를 욕심내면서, 다음 달 아웃리치 참여 공지에 손을 들어본다. 

 

* 참고로 자료집은 사정 상 공개되지 못했고, 기획팀의 후속 활동을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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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윤

# 여성인권# 성소수자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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