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평등소송 헌법소원청구 기자회견
“31살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24년이라는 시간을 서로 사랑하고 돌보며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인생의 황금기인 30대와 40대, 50대를 거쳐 이제는 60대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 부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노년의 삶도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누구나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인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배우자나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서로의 보호자나 가족임을 증명해야 하는 자리에서 번번이 좌절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 다가오게 될 죽음의 순간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장례조차 치를 수 없게 됩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엄연히 존재하지만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성소수자 부부들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2025년 2월 14일 헌법재판소 앞, ‘혼인평등소송’ 헌법소원청구 기자회견에서 소송 당사자인 천정남 씨가 한 발언입니다. 지난 해 10월, 11쌍의 동성 부부가 혼인평등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관할 법원에 혼인신고 불수리 불복신청과 위헌제청신청을 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서울북부지방법원에 제기하였던 사건은 제대로 심리도 하지 않은 채, 당사자들의 혼인신고 불수리 불복신청을 각하하고, 위헌제청신청을 바로 기각하였습니다. 서울북부지방법원은 “혼인의 개념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는 우선 헌법질서에 선재하는 문화적 또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혼인에 대한 인식과 관념에 따라 판단되어야”하며, “남성과 여성의 공동체를 헌법이 보장하는 혼인제도의 핵심요소로 인정하는 이상 이를 벗어나는 혼인제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당일 기자회견에서 조숙현 혼인평등소송 대리인 단장은, “혼인평등소송은 성소수자의 혼인권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지만, 과거 동성동본금혼제, 호주제, 부성승계강제주의 등과 같이 우리 가족법에 남아 있는 차별적인 제도를 개선하고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며 헌법재판소는 가족법이 헌법규범과 현실과의 괴리를 고착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면 그런 가족법은 수정되어야 한다는 판단을 하기도 하여, 앞선 두 차례의 혼인 및 가족관계에 관한 법률의 위헌성을 확인함으로써 ‘부당하게 반려된 사람들’을 구제하고, 한국 사회가 보다 포용적이고 평등하게 변화하여 왔다고 서울북부지방법원의 결정을 반박하였습니다.
연대발언으로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누구와 사랑을 나누고 가족을 꾸려 자신의 삶을 영위해나갈지 결정하는 것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 시민 개인들의 몫이고 그를 보장하고 지원할 책임은 국가에 있다”고 하였으며, 윤복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은 “인권의 최후의 보루로 작용하여야 하는 사법부가, 평면적이고 기계적인 판단으로 성소수자 차별에 일조하였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동성결혼은 ‘찬성과 반대’의 문제가 아니라, 법으로서 마땅히 인정받아야 하는 기본권이다. 이웃나라인 대만과 태국에서도 동성결혼 법제화가 이루어졌다. 우리나라도 성소수자 권리 투쟁의 결실을 맺어야 할 때”라고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박가람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인본부장은 “이제 헌법재판소는 동성혼 불인정이 성별,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한국 헌법과 국제인권법에 부합하는지를 엄중히 판단해야 할 책무 앞에 섰다”고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강조하였습니다.
기자회견 당일에도 헌법재판소 앞은 대통령 탄핵심판으로 소란스러웠습니다. 혼인평등소송 기자회견 바로 직전에는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두 기자회견은 결국 연결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앞선 기자회견에서, ‘한국교회를위한퀴어한질문 큐앤에이’에서 활동하는 서다은 님은 “2024년에도 국가 폭력으로 누군가 죽을까 걱정해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민낯인가? 그런데, 사실 이 기도는 윤석열 정부가 시작된 이래로 매일 밤 할 수밖에 없던 기도이기도 했다. 성소수자는 비상계엄 이전부터 안티 페미니즘을 내세우는 정치, 성소수자에 대한 왜곡과 곡해로 가득한 혐오 발언 속에서 우리 옆의 동료를 잃기도 하고, 잃을까 걱정에 떨기도 했다. 어떤 폭력과 차별에 시달리지는 않을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했다.”고 하였습니다.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법제도와 적대적 혐오 환경은, 윤석열 정부의 책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어느 정당이 다수당을 차지하든, ‘나중에’, ‘사회적 합의’라는 명분으로 정부와 국회는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미루어 왔습니다. 그 지연된 시간만큼 법의 사각지대에서 성소수자 시민들의 삶은 통째로 흔들렸습니다.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으며, 법원 폭동을 일으키는 ‘극우세력의 준동’에 한국 사회는 이제야 그 심각성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성소수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런 폭력의 시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소수자들을 혐오하는 이들의 확성기가 되고, 폭력을 행사할 공간을 넓혀 준 것은 그것을 방관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더 이상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를 미룰 수 없습니다. 혼인평등소송은 성소수자들의 동등한 시민권을 쟁취하는 사건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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