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에 반하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규탄한다’ – 이주구금대응네트워크
지난 2월 27일에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이 가결되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행정목적 이주구금은 집행기관으로부터 독립된 중립적 기관에 의한 통제장치와 구금 기간의 상한이 없어 헌법에 위반한다는 취지로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린 지 2년 만의 일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작년 10월에서야 구금상한을 36개월로 하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무력화시키는 내용의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정부안을 수정하는 데 그친 국회 입법과정은 그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그 결과 법무부가 집행하는 구금에 대한 통제를 법무부 산하기관에 맡기고, 난민신청했다는 이유만으로 구금상한을 20개월로 연장하는 개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이에 공감이 참여하는 이주구금대응네트워크에서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성명서]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에 반하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규탄한다’
지난 2월 27일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에서 가결되었다. 강제퇴거명령을 받은 사람을 무기한 구금할 수 있도록 한 출입국관리법 제63조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온 지 2년만이다. 그러나 이번에 통과된 개정안은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 위배되며 지난 2년간 올바른 정책을 마련해야 할 정부의 무책임 속에서, 올바른 법을 개정해야 할 국회의 무관심 속에서 통과되었다.
헌법재판소 결정의 핵심은 “강제퇴거명령의 집행을 목적으로 일시적ㆍ잠정적으로 강제퇴거대상자를 특정 장소에 수용하는 보호는 그 본질상 강제퇴거명령을 집행하는 데 필요한 합리적 기간 내에 수용할 때에만 그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강제퇴거할 수 있을 때까지의 무기한 구금은 자의적이고 따라서 위헌이라는 것이다.
강제퇴거명령의 집행을 목적으로 하는 구금이란, 강제퇴거명령 집행이 임박하거나 적어도 여행서류 발급이나 교통편 확보 등 강제퇴거명령의 집행을 위한 준비가 진행 중이어서 구금이 강제퇴거명령 집행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법률적, 사실적 장애사유로 강제퇴거명령 집행이 요원한 경우, 장애사유가 해소되기 전까지의 구금은 강제퇴거명령 집행을 위한 구금이라고 보기 어렵다. 헌법재판소가 무기한 구금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근본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국회를 최종적으로 통과한 개정안은 통상의 구금상한을 9개월로 설정하고 있다. 9개월은 강제퇴거명령 집행에 필요한 기간을 훌쩍 넘어서는 상당한 장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개정안은 이에 그치지 않고 난민신청했다는 이유만으로 20개월까지 구금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난민심사가 진행 중인 경우 강제퇴거명령 집행이 금지되기 때문에 “강제퇴거명령 집행을 목적으로 하는 구금”이라고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난민심사 진행 중 강제퇴거명령 집행이 금지되어 있다는 이유로 오히려 구금상한을 늘린 것이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 뿐만 아니라, 난민신청에 불이익을 가하고 제한하는 것으로서 난민협약 당사국으로서의 의무에도 위반된다.
난민신청자에 대한 20개월 상한 적용이 오로지 강제퇴거명령의 집행을 방해하기 위해 난민신청한 경우를 상정한 것이라 하더라도, 난민심사 중 강제퇴거집행이 법률상 금지되어 있어서 해당 기간을 “강제퇴거명령 집행을 목적으로 하는 구금”이라고 볼 수 없음을 고려할 때 매우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강제퇴거명령 이후에 난민신청했다는 이유만으로 오로지 강제퇴거 집행 방해 목적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인신구속에 대한 통제는 집행기관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기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 역시 외면했다. 헌법재판소는 출입국관리법상의 외국인 보호는 “형사절차상 ‘체포 또는 구속’에 준하는 것”이어서 “적어도 출입국관리공무원이 아닌 객관적ㆍ중립적 지위에 있는 자가 그 인신구속의 타당성을 심사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그런데도 대한변호사협회, 유엔난민기구, 국가인권위원회 등 관계기관과 학계 및 시민사회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정안은 집행기관인 법무부 산하에 설치된 외국인보호위원회로 하여금 이주구금에 대한 통제를 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통과되었다. 정부안보다 앞서 제출된 박주민 의원 대표발의안이 출입국관리법상 인신구속에 대해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었지만 국회에서 한 번도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집행기관 산하에 설치하는,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 대다수를 집행기관의 장이 임명 또는 위촉하는 위원회를 무슨 근거로 독립적이며 중립적 기관으로 본다는 것인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국회의 입법과정은 구금상한을 36개월로 설정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무력화시키는 내용의 정부 제출안을 수정하는 과정이었고, 그 한계는 분명했다. 그러나 인신구속은 신체의 자유에 대한 합헌적 제한과 위헌적 침해 사이의 경계가 매우 협소한 공권력 행사로, 헌법재판소 결정의 근본적 취지는 최소한의 내용적, 절차적 안전장치를 둠으로써 자의적 구금을 막고자 하는 데에 있었다. 그럼에도 개정안은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를 제대로 담지 못한 내용으로 통과됨으로써 자의적 구금의 방지는 또다시 집행기관에 맡겨지는 형국이 되었다. 그러나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새우꺾기 고문사건을 비롯하여 우리는 그 결과를 충분히 목도해 왔다. 국회 입법과정의 한계가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인신을 구속하는 중대한 결정을 통제받지 않겠다는 국가의 의지는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희망을 꺾는다. 이런 사회에서는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구금대응네트워크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과 함께 계속해서 이주구금 문제에 대응해나갈 것이다.
2025년 3월 7일
이주구금대응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