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할 자유, 이동할 권리 – 장애인 지하철 탑승 거부 장애인차별구제청구소송에 부쳐
매년 4월 20일 장애계는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맞아 420전국결의대회를 비롯하여 많은 행사를 진행해왔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4월 20일을 맞아 전국의 장애인들이 서울로 모일 때면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의 억압은 더 극심해집니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장애인들이 거리에, 도로에, 역에, 광장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장애인들은 4월 20일만큼은 그동안 지워졌던 자신들의 위치를 찾고 여전히 우리가 여기에 있음을 사회에 알리기 위해 모입니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은 장애인의 이동을 자유와 권리가 아닌 통제의 대상, 불편한 대상으로만 간주할 뿐입니다.
사건이 발생한 2024년 4월 19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혜화역 2번 출구 인근 마로니에 공원에서 ‘420전국집중결의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전국집중결의대회를 위해 지역에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KTX를 타고 올라왔고, 행사가 끝나자 다시 지역으로 내려가기 위해 혜화역으로 향했습니다. 이날은 지하철 역사 집회가 예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장애인들은 피켓 등 집회물품도 소지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에게도 역사 집회를 하지 않을 것임을 미리 알려두었습니다.
그러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집에 가기 위해 갑자기 역사로 몰리자,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은 장애인의 엘리베이터 사용을 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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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통공사 직원과 경찰이 엘리베이터 이용을 막자,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은 승강장에 가기 위해 휠체어에서 내려 계단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활동가들과 시민들도 한 대당 102~107kg에 육박하는 전동휠체어를 들고 함께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장애인·활동가·시민들은 지상에서 개찰구가 있는 지하 1층 대합실로, 지하 1층에서 다시 지하 2층 승강장으로, 계단을 통해 내려갔습니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은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다리나 손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엉덩이 등을 이용하여 계단을 쓸면서 내려가야 했고, 이로 인하여 타박상을 입는 등 신체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장애인들이 지하 1층 대합실로 내려왔을 때,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은 장애인들이 지하 2층 승강장으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장애인의 신체와 동일하게 취급되어야 하는 휠체어를 함부로 잡으며 이동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임의로 물리력을 행사하여 휠체어에 앉아있는 장애인을 휠체어 채로 이동시켰습니다.
장애인단체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장애인을 임의로 이동시키는 것에 항의하자,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은 이들을 둘러싸고 몸을 잡아끌며 강제로 퇴거시켰습니다. 심지어는 장애인을 휠체어와 분리하여 장애인을 역사 바닥에 내버려둔 채 휠체어만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기도 했습니다. 장애인과 휠체어를 임의로 분리해서는 안 되며, 휠체어를 물리적으로 드는 방법으로 장애인을 이동시켜서는 안 된다는 인권위의 권고는 현장에서는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한편 경찰들은 혜화역 지하 1층에서 지하 2층으로 가는 개찰구를 전부 막고 장애인들이 개찰구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도록 했습니다.
계속된 항의 끝에 몇 명의 장애인들이 겨우 지하 2층 승강장으로 내려갈 수 있었지만, 위와 같은 상황은 지하 2층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서울교통공사 직원들과 경찰들은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타려고 하자 방패를 들고 스크린도어를 막아 물리적으로 지하철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아예 지하철을 무정차 통과시켰습니다. 또한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은 장애인·활동가·변호사들이 지하철 탑승 제한·거부에 항의하는 행위가 전차교통방해 등에 해당한다며 퇴거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려는 장애인을 정당한 이유 없이 막는 데 항의하는 것이 왜 전차교통방해에 해당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퇴거하려면 다른 지하철로 이동해서 퇴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변호사들은 퇴거할테니 지하철 탑승해서 이동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그 요청은 묵살당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퇴거하라는 것이냐는 실랑이가 계속 되던 중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은 활동가, 변호사를 모두 퇴거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함께 항의하고 있던 저 또한 퇴거당했습니다. 변호인의 변호를 받을 권리와 변호인의 변호할 권리를 모두 침해하는 것이라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밖에 가서 변호하라는 황당한 답변만이 돌아왔습니다.
지하 1층 개찰구 밖으로 끌려 나온 후 활동가들과 변호사는 지하 2층 현장을 확인하고 지원하기 위해 다시 승강장에 들어가려 했으나, 경찰들이 활동가들과 변호사가 들어갈 수 없게 개찰구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활동가들과 변호사가 항의하지 못하는 사이,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은 전장연 문애린 공동대표를 현행범 체포했습니다. 문애린 대표는 당시 경남지역에서 올라온 장애인들의 지하철 탑승거부에 대해 항의하고 있었습니다. 서울교통공사 직원들과 경찰들은 문애린 대표의 몸을 휠체어에서 분리해 끌어내려고 했습니다. 문애린 대표는 “내 휠체어, 내 몸에 손 대지 마라. 알아서 올라가겠다.”라고 하며 자진 퇴거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은 그의 목소리, 외침을 듣지 않았습니다. 5~6명의 서울교통공사 여성 직원들이 원고 문애린대표의 양팔과 어깨, 다리를 각각 잡고 문애린 대표를 휠체어로부터 분리하여 들어 올렸고, 지하 1층으로 퇴거시켰습니다.
휠체어 오른쪽 컨트롤러는 부러지고 받침대에서 통째로 분리되어 고장났고, 문애린 대표는 팔을 다쳤습니다. 119 구급대가 와서 바로 병원으로 가야한다고 했으나 경찰은 그때도 현행범 체포 해야된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구급대원이 지금은 불가능하다고 답하자, 경찰은 병원까지 따라와서 처치가 끝나자 그 자리에서 체포해 경찰서로 데리고 갔습니다. 문애린 대표는 48시간 넘게 경찰서에 있다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9조는 교통사업자는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을 접근·이용함에 있어서 장애인을 제한·배제·분리·거부하여서는 아니” 되며(제1항), “장애인이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을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이용하여 안전하고 편리하게 보행 및 이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한다.”라고 하여(제4항), ‘교통사업자의 이동 및 교통수단의 접근·이용에서의 장애인 차별금지’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는 이를 정면으로 위반했습니다.
또한, 경찰은 위법한 현행범체포로 형사소송법을 위반했습니다. 현행범인 체포는 체포 당시의 상황에서, 범죄가 명백하거나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 등 체포의 필요성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체포한 경우에는 위법한 체포에 해당합니다. 문애린 대표는 지하철 탑승거부에 항의한 것일 뿐 전차교통을 방해하기 위한 범죄를 한 것이 아니었으며, 설사 경찰이 그렇게 판단했다고 하더라도 범죄 성립여부가 명백하지 않았으며, 증거인멸이나 도주우려가 없었습니다.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의 행태는 장애인이 마주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장애인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이동권이 공권력에 의해 침해되었고, 권리침해에 대해 항의했다는 이유만으로 현행범인 체포되었습니다.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이 장애인의 권리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해 숙지하고 있었다면, 장애인의 이동을 통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애인의 이동을 도왔어야 마땅합니다. 큰 행사와 집회가 있을 때,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은 시민의 이동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이동을 돕는 역할을 합니다. 이 사건 당일, 비장애인들이 행사를 끝내고 집에 가기 위해 혜화역으로 왔더라도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은 공권력으로 비장애인들을 막아섰을지 묻고 싶습니다.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은 이날 장애인들에게 크나큰 모멸감을 주었습니다. 장애인들은 타인이 엘리베이터 탑승을 막으면, 지하철 탑승을 막으면, 집조차 자유롭게 갈 수 없는 현실을 체감했습니다. 차별에 항의하면 휠체어에서 분리되어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퇴거당하고, 위법하게 현행범 체포되는 현실에서 장애인들은 또다시 좌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애인들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통제당했고, 장애인이기에 체포당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16년이 지났고, 장애인의 권리가 법률에 명시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진설명] (위) 2025년 3월 25일 진행된 기자회견 포스터, (아래 왼쪽)기자회견 현장, (아래 오른쪽) 발언중인 조인영 변호사
이에 공감은 장애인들을 대리하여 그날의 잘못을 묻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장애인차별구제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결과를 받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변화를 위해 공감은 끝까지 지원하겠습니다.
조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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