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한민국에 인신매매가 있다고? –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인신매매피해자 보호법안에 관한 공청회
2013년 6월 20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회의실에서 인신매매 관련 법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다. 김춘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인신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과 남인순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인신매매등에 의한 피해자보호에 관한 법률안」이 상정되어 있었다. 공감의 소라미, 차혜령 변호사, UN 인권정책센터의 신혜수 상임대표, 성매매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정미례 정책팀장이 진술인으로 출석했다.
공청회는 소라미 변호사의 발제로 시작했다. 필리핀 여성들을 연예 비자(E-6)로 입국시켜 주점에서 손님 접대 및 성매매를 알선한 사례, 최근 문제 되고 있는 홈리스들에 대한 영리목적 인신매매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현재 한국에서 인신매매는 매우 심각한 문제임에도,이와 관련한 정확한 데이터부터 조사된 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인신매매 피해에 대한 인식 개선․확산을 위한 교육, 피해자에 대한 취학․취업․법률․의료 지원과 같이 인신매매 피해자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이 법안에 담겨야 한다고 말했다.
신혜수 대표는 인신매매에 관한 국제적 기준과 비교하여 입법 시 고려할 사항들에 관하여 발제했다. 한국은 최근 UN 조약기구와 UPR에서 인신매매가 주요 문제 중의 하나로 지적되어 다른 나라로부터 인신매매에 대한 대책을 주문받았고, 국제적인 기준에 맞춰 충분히 구체적인 대안이 법안에 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피해자에게 진술을 강요하거나 그러한 진술을 체류허가 등 지원의 조건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미례 팀장은 인신매매법이 제정되는 것만큼이나 그 제정 이후에 법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법무부(특히 검찰과 출입국사무소)는 법률을 강력히 집행할 힘이 있지만, 피해자 보호와 사건 처리 이후의 후속조치에 대하여는 그에 대한 전문적인 인프라를 갖춘 여성가족부가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차혜령 변호사는 인신매매피해자가 적절히 보호되기 위하여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피해자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의문에 부딪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즉 ‘나를 인신매매한 사람은 형사 처분될 것인가?’, ‘주거․생계․의료 등 생존을 위한 조치가 보장되는가?’, ‘곧바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오히려 내가 처벌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이다. 피해자가 외국인인 경우 수사에 협력할 것인가의 여부와 관계없이 피해자 개인의 상황을 고려하여 체류 여부를 결정하고 한국에 영주할 수 있을 가능성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질의가 이어졌다. “인신매매 정책은 전통적인 법무부 소관 업무인데 여성가족부가 개입하면 충돌이 있지 않겠느냐”(김현숙 의원, 새누리당)는 질의에 정미례 팀장은 “불법체류자 단속 업무를 맡은 법무부가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 업무를 맞는다면 대부분 불법체류 상태에 빠지고 마는 외국인 피해자들이 보호서비스에 접근조차 못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성가족부의 기존 여성인권 지원 인프라를 활용한다면 예산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을 것이다.”고 답변했다. 연예 비자를 악용하는 문제에 대한 질의(인재근 의원, 민주당)에 대하여 신혜수 대표는 “연예 비자는 국제적인 문제”이며, “지금은 문화관광부에서 연예 기획사들을 관리, 감독하는 상황인데, 인신매매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 여성가족부에서 함께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춘진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강제적인 국제결혼을 인신매매로 포섭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국제결혼을 한 모든 한국인 가족이 인신매매자인 것으로 오인받을 수 있지 않은가에 대한 질의(이자스민 의원, 새누리당)에 대해 소라미 변호사는 “진정한 혼인의사가 있다면 한국인 가족이 인신매매로 처벌될 일은 없다. 진정한 혼인의사가 없으면서 결혼을 가장하여 이주여성을 초청한 뒤 간병도우미로 이용하거나 노동력을 착취하는 일부 피해 사례의 경우가 인신매매에 해당할 것이다.”고 답변했다. “국제결혼은 국제적 협력이 필요한 문제”이며 “국제결혼중개업의 고객이 되는 남성들의 신상정보 수집이 의무사항으로 되어 있지 않은데, 이러한 정보를 파악하여 문제시 추적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신혜수 대표의 답변도 이어졌다.
인신매매피해자에게 별도의 피해자 비자를 주는 대신 기존의 체류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한 질의(남인순 의원, 민주당)에 대하여 차혜령 변호사는 “숙려기간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방식으로 보완이 필요하다”며 “수사절차에 참여할지를 결정하는 데에 45일의 숙려기간을 부여하는 호주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소라미 변호사는 “보통 성 착취 인신매매 피해자는 E-6 (연예유흥) 또는 C-3 (단기관광)비자로 입국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비자들은 체류기간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 또한 “피해자들은 차라리 공장에서 땀 흘려 일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으나 기존 비자로는 그럴 수 없다.” 따라서 “인신매매피해자가 안정적인 기간 체류할 수 있도록 담보하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별도의 비자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청회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지난 2011년 여름쯤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전라남도 섬 노예 사건이 기억났다. 멀쩡한 성인 남자들이, 세계적인 치안 수준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고용계약서까지 쓰고 섬에 일하러 들어가서, 10년 넘게 나오지 못했던 사건이다. 일을 제대로 못 한다는 이유로 폭행까지 당했다. 정신장애를 가지신 분들이 많았지만, 상당수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보통 범죄가 발생하면 범죄인을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 피해자는 범죄인으로부터 금전적 배상을 충분히 받아내면 된다. 그렇게 범죄는 해결되고, 사회는 다시 평화로운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모두 그렇게 기대하고, 실제로 많은 사건이 그러한 과정으로 해결된다. 그래서인지 21세기 대한민국에 인신매매가 있다는 말이 어색하게 느껴지고, 멀쩡한 사람이 10년 넘게 섬에 갇혀 맞으면서 일하면서도 돌아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놀랍게 여겨진다.
하지만 위와 같은 절차는 피해자가 자신을 피해자로서 인식하고, 가해자의 처벌 및 피해보상 요구를 피해자로서의 자신의 권리로 인식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자신의 피해를 말했다가 본국으로 송환되거나 되레 자신이 감옥에 가게 되는 상황에서, 고용계약이나 차용계약이라는 명목으로 막대한 선불금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법도 공권력도 결국 피해자의 편이 아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자신을 드러내기는커녕 오히려 자발적으로 그늘에 머무르려 하게 된다.
이제까지 이 사회의 철저한 무관심이, 피해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피해 대신 불운을 탓하게 하고, 공공연하고 뿌리 깊은 이 범죄들을 내버려둔 것은 아니었는지, 피해자들을 성 착취와 강제노역의 수렁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든 것은 결국 우리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글 _ 이주일 (사법연수생/ 공감 실무수습 중)
* 참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