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부터 법을 지켜라 -장서연 변호사
장서연 공감 변호사
‘불구속 수사 원칙’, ‘영장주의’, ‘미란다원칙 고지’, ‘무죄추정의 원칙’은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귀에 익은, 대한민국헌법 및 형사소송법의 기본원칙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원칙들이 무시되고 있다. 촛불집회를 이유로 연행당한 사람의 수가 1000여명이 넘었다고 한다. 촛불집회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연행자 수는 이에 반비례하여 증가하고 있다.
나는 민변회원으로 촛불집회를 이유로 연행된 사람들을 접견을 하게 되었다. 서울서부경찰서에 처음 접견 갔을 때의 일이다(변호사로서 구금된 피의자들을 접견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 6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연행 되어있었다. 나는 담당수사관에게 이들이 현행범으로 체포된 이유가 무엇인지, 범죄사실의 요지가 무엇인지 물었다. 담당수사관은 그냥 ‘집시법위반’, ‘일반교통방해’로 연행하였다고 답했다. 나는 담당수사관에게 단순히 ‘죄명’만 말하지 말고 구체적인 범죄사실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담당수사관은 똑같은 대답을 할 뿐이었다. 내가 담당수사관에게 현행범 체포서나 현행범체포통지서를 보여 달라고 하자, 담당수사관은 당혹해 하며 아직 현행범체포서나 범죄사실을 만들지 못했다고 했다(내가 접견하러 갔을 때는 이들이 연행 된지 꽤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담당수사관은 나에게 ‘나중에 팩스로 변호사 사무실로 보내주겠다.’, ‘접견이 끝나고 돌아갈 때 주겠다.’라며 그냥 접견을 하라고 하였다.
나는 경찰이 ‘범죄사실의 요지’ 없이 어떻게 시민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는지, 어떤 내용으로 미란다원칙을 고지하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강력히 항의하자 담당수사관은 그때서야 현행범체포통지서를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통지서에 첨부된 범죄사실의 내용은 황당하게도 연행된 개인의 피의사실이 특정이 된 것이 아니라, 당일 촛불집회 진행 전부가 각자의 범죄사실로 기록되어 있었고, 6명의 피의사실이 모두 같았다. 이번 촛불집회의 특성은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산발적으로, 무계획적으로 진행이 되어 온 것인데, 촛불시위 단순참가자나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이나 촛불시위 현장에서 연행당한 사람이면 당일 날 있었던 촛불시위 전부에 대하여 공동정범으로 묶여서 전체의 범죄사실에 대하여 책임을 지우고 있었다. 그 후에도 몇 번의 접견을 더 갔지만 미란다원칙을 제대로 고지하는 경찰서는 한 곳도 없었고, 내가 접견을 간 이후에야 피의자들은 자신들이 체포된 이유 및 피의사실에 대하여 처음 알 수 있었다.
이처럼 경찰의 집회참가자들 또는 무고한 시민들에 대한 무작위 연행 및 그 과정에서 위법성도 심각한 문제지만, 이러한 위법한 현행범 체포를 통해 인신 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진행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이다. 현행범체포는 사전에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인정되는 제도이므로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현행범체포, 긴급체포 제도를 피의자를 48시간 동안 인신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할 수 있는 제도로 악용하고 있다. 단순집회참가자나 경미한 사안의 경우 인적사항 확인하고 조사를 하여 구속할 만한 사안이 아님이 명백한 경우에는 즉시 석방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촛불집회로 연행된 사람들은 연행 된지 3일 만에 석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경찰이 사실상 수사편의를 위해서 현행범체포나 긴급체포를 남용하여 불구속수사, 영장주의의 기본원칙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의 이러한 위헌적인 관행이 결국 도를 지나치게 했던 것일까. 마포경찰서에서 촛불집회를 이유로 연행된 여성 수감자를 입감하면서 입고 있던 브래지어를 벗도록 요구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자살에 사용될 수 있어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누구든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단순집회참가 혐의로 현행범 체포된 경미한 사안으로, 48시간 후면 석방될 것이 분명한 여성이, 자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경찰서 유치장은 구치소나 교도소와 달리 중심에 있는 경찰관들이 반원형 구조로 배치되어 있는 유치장 안을 모두 들여다 볼 수 있는 개방구조로 되어 있다. 한국여성들은 브래지어를 탈의한 상태로 집 밖에 나간다거나 다른 사람 앞에(같은 여성 앞에도) 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강제로 여성에서 속옷을 입지 않은 상태로 지내도록 한 것, 게다가 속옷 탈의 상태로 조사를 받고, 법원 심문에 출석하도록 한 것은 당사자에게 심한 수치심과 모욕감을 주는 것이었다.
그동안 헌법재판소와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찰이 유치장내 사고 방지 및 안전 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계호, 감시의 효율성에만 치우쳐 과도한 알몸 신체검사, 차폐시설이 불충분한 개방된 화장실의 사용을 강요하는 것은 유치인들의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품위를 유지할 수 없도록 하는 것으로서, 비인도적이고 굴욕적일 뿐만 아니라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여러 차례 지적하여 왔다.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경찰의 무차별 연행, 피구금자에 대한 모욕적이고 굴욕적인 처우 등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인권단체들의 요구에 마포경찰서는 끝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으로 일관하였다. 마포경찰서 수사과장은 이후에도 여성 수감자들을 입감할 때 같은 조치를 취하겠다는 취지로 답변하였다. 경찰의 이러한 강경한 태도는 이번 사건이 단순히 경찰의 무신경 때문이 아니라 고의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의도적으로 촛불집회로 연행된 시민들, 구금된 피의자들의 심리를 위축시키고 제압하기 위하여 과도한 통제, 굴욕적인 처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게 한다. 경찰은 실정법 위반을 들어 시위대를 강경진압 하기에 앞서 자신들부터 제대로 된 법의 기본원칙을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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