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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달섬님! – 하숙자 기부자님

[기부자편지]
 

고마워요. 달섬님!

 
하숙자 기부자님
 
  살아오면서 우리의 가을 11월이 이토록 풍요롭고 아름다운 줄은 몰랐습니다. 농촌에 와서 살기 전에는 모든 풀과 나무가 꽃을 피우고 단풍을 만든다는 것을 몰랐지요. 내가 가을의 깊은 곳에서 마치 헤엄치며 놀고 있는듯한 여유로움과 행복을 느끼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 “나 혼자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이렇게 놀아도 되나?” 라는 불안감과 미안함들이 언뜻 언뜻 스쳐지나가기도 합니다.
저는 십 수 년 간의 시민사회활동의 바쁜 일상을 접고 지난 2월에 남도로 귀농하여 봄, 여름 가을을 지나고 겨울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생활공간이 도시에서 농촌으로 바뀌면서 내 몸과 마음에도 커다란 변화가 왔습니다.

 생전 처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조그만 텃밭도 생기고, 스물 네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도 갖게 되었습니다.

지난봄에는 내가 좋아하는 자두, 앵두, 석류 등 과실나무와 감자, 상추, 부추 등 채소들을 심고, 여름에는 고구마와 토란, 콩을 심었는데 너무 가물어서 물을 두어 번 주었지요. 며칠 전 고구마와 토란을 캤는데 얼마나 굵은 알들이 땅속에 들어 있는지 혼자서 환호성을 질렀답니다. 콩은 올해 흉년이라고 동네 할머니께서 말씀하십니다. 역시 콩은 얼마 열리지 않았습니다. 자연의 신비와 위대함을 새삼 느낌입니다. 심기만 하고 농약도, 비료도, 별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땅은 내게 여러 가지를 주는 듯합니다. 열매를 주고 줄기는 거름하게 해주고 불을 때는 땔감도 주는 등, 또 이렇게 말해주는 듯합니다. “별 노력을 하지 않아도 주는 거란다”, “이렇게 줄 때 더 노력하거라 해라” 라고…..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작은 시골집에 들어갈 수 있는 것만 챙기고 도시생활공간에서 필요했던 것들은 정리를 했습니다. 텔레비전이나 옷장, 책장 등… 그리고 옷들과 주방용품들까지, 그런데 개나리 봇짐으로 이사하겠다던 다짐은 어디로 가고 이삿짐이 1톤 트럭 하나분이 나 되었지요. 한 몸 사는데 뭐가 그렇게 많은 것들이 필요한지, 내가 채 의식하고 있지 못했던 물욕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의 일상태도가 얼마나 자본의 사슬에 얽혀있는지, 또한 편의주의에 빠져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밥그릇하나 숟가락 하나면 된다는 각오였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전화와 컴퓨터도 정리를 하려고 했는데 달섬님께서 언제라도 연락을 할 수 있도록 극구 말렸지요. 그러면서 전화와 인터넷사용료를 당신이 후원하시겠다며 매월 부담해 주고 계십니다. 정말 고맙고 황송할 뿐이지요.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을 무겁게 하는지 모릅니다.
사회활동을 접으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기부활동도 중단하고 기부자에서 받는 자로 바뀌게 되고 말았지요.

가능하면 돈이 들지 않는 생활로 바꾸기 위해서 옛날변소도 만들고 불 때는 구들방과 아궁이도 만들었지요. 요즘같이 날씨가 쌀쌀한 날은 장작불을 때서 고구마도 찌고, 물도 데우고, 우거지도 삶고 하지요. 따뜻한 아랫목의 온기가 얼마나 좋은지….. 나 혼자 십 여 년 만의 자유로운 휴가를 만끽하고 있지요.
먹는 것의 대부분을 스스로 생산하거나 이웃과 나누어 먹는 안전한 먹거리의 일상이 큰 행복중의 하나지요.
텃밭에 채소를 심어서 혼자 먹기에는 좀 많고 나누기에는 우송료가 비싸서 나누지를 못하고, 집을 방문해주는 분들과는 조금씩 나누고 있어요. 이웃 분들은 다 농사를 하시니 오히려 내가 쌀과 된장, 고춧가루 등 거두지 못하는 것들은 얻어먹기도 하고요. 오랜 삶의 지혜를 배우기도 하고, 할머니들께서 급한 일이 있을 때 태워다 드리는 일을 하지요. 가끔 농사일도 거들어드리기도 하고…..
도시에 사는 분들과 싱싱한 채소들을 나누는 방법은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줄곧 기부를 받아서 운영하는 단체에 소속했었기 때문에 수익이 생기면 당연히 일정액을 기부한다는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시적으로 가정이 필요한 장애여성이나 쉼이 필요한 분들과 생활공간을 함께 나누기도 했지요. 이런 활동에 공감하는 공무원인 달섬님께서 나에게 분에 넘치는 지원해주시니 염치없을 따름입니다.

단체 활동에서의 모금은 참으로 어려운 부분이었는데, 아름다운 재단이 출발하면서 1%기부, 변호사 공감, 아름다운가게 등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서 신선하고 부러웠습니다. 덕분에 여성장애인 인권단체인 우리도 공감변호사의 지원을 받게 되었지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 활동비의 1%를 기부를 시작했습니다.

 
활동을 접으면서 기부도 중단하게 되어 얼마나 죄송하고 아쉬운지 모릅니다. 아름다운 가족이 된 기쁨도 있었는데….

달섬님!
내가 7년 전 아동보호기관에서 일할 때 우리가 만났지요. 그런데 마치 20년 지기는 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일하면서도 인권이라는 같은 주제로 일을 하고, 추구하는 가치가 비슷하고 생활양식이 비슷하니 말이에요. 그리고 경제관념 없고 대책 없는 나를 친구로 믿어 주고 지원 해주셔서 고마워요.
나도 머지않아 경제적인 독립을 하고 농촌생활을 통해서 또 다른 사람에게 기부를 할 수 있는 날이 오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날 잡아 구들방에 뜨끈하게 불 때고 고구마 삶아서 밤이 새도록 이야기 한번 나누고 싶습니다. 시간되는 분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만들어 봅시다. 알파호족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우리 11월이 다가기전에 우리 속에 남아있는 긍정의 힘들을 추스르고 새로운 힘을 얻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지요. 늘 건강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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