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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감소송당사자이야기] 철공소 사이에서 피어나는 희망


 


 


# 잊혀가는, 그녀들의 죽음을 기억하며


 


한 여성이 죽었다. 아파트 14층에서 추락사했다. 결혼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때였다. 그녀의 사인은 자살로 결론지어졌고 시신은 서둘러 화장되어 어머니에게 택배로 보내졌다. 어머니는 친정에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딸이 갑자기 자살했다는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자살이었다면 무엇이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뒤늦게 그녀의 일기가 발견되었다. 그녀의 일기에는 힘겹고 모욕적이었던 결혼 생활이 담겨있었다. 그녀는 ‘쩐타이 란’이란 이름을 가진,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곧 그녀를, 그녀의 죽음을 잊었다.


 


극단 샐러드는 잊혀져가는 그녀의 죽음을 기억하고자 무대에 ‘란의 일기’를 올렸다. 박경주 대표가 대본을 쓰고 이주민 배우들이 연기한다. 연극이 상영되던 마지막 날, 또 한 여성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이를 낳은 지 19일만이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칼로 수 십 차례 난자당했다. 그녀를 탓하는, 그녀가 친정에 돈을 보내는 문제로 남편과 자주 싸웠고 잘 씻지 않았다는 이야기만 잠시 흘러나왔을 뿐 언론은 조용했다. 그녀는 ‘황티남’이라는 이름을 가진,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또 그녀를, 그녀의 죽음을 잊었다.


 


그녀들의 죽음이 너무나 쉽게 잊혀가던 7월 둘째 주의 어느 날, 이주여성극단 샐러드와 다문화방송국 샐러드 TV의 대표 박경주 씨를 찾았다. 국제중개결혼의 폐해가 수많은 결혼이주여성이 죽음에 내몰려서야 드러나고 있는 이 현실에서, 박경주 대표는 국제결혼 중개업체 대표가 이주여성인권단체를 운영한다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로 인해 명예훼손으로 형사고발 당한 사건에서 공감과 함께 했고 지난 5월 26일 무죄판결을 이끌어냈다.


 


극단 샐러드가 둥지를 틀고 있는 박경주 대표의 일터는 철공소들 사이 낡은 건물의 자리하고 있다. 철공소에서 피어오르는 텁텁한 열기와 뽀얀 먼지들 사이 위치한 건물 2층의 사무실에서, 박경주 대표와 활동가들은 공감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 안일함, 그리하여 잔인함으로 이어지는


 


‘베트남 국제결혼전문. 도망가지 않습니다.’
‘베트남 숫처녀 결혼 비용 780만원 초혼, 재혼, 장애인 환영’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실 분. 100% 후불제’


 


인신매매 광고가 아니다. 결혼중개광고란다. 결혼을 통해 이주하게 되는 여성들은 한국남성에게 ‘선택’받을 때까지 결혼중개업체의 강압 아래 합숙하며 맞선을 본다. 합숙소를 본인의 의사로 빠져나오기도 힘들며 이 과정에서 여성들에게 과다한 비용이 청구되는가 하면 상대 남성에 대한 정보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다. 한국남성에게 ‘선택’받으면 여성이 결혼 의사를 철회할 수 없도록 바로 결혼식을 올리고 합방시킨다. 5박 6일 혹은 6박 7일의 관광 상품으로 진행되는 속전속결 인신매매성 결혼. 결혼중개업체는 애프터서비스도 확실하다. 100% 후불제에 ‘환불’ 보장, 그리고 친구 및 가족과 연락 통제, 외국인 등록증 압류와 같은 ‘관리’방법까지 빼먹지 않고 알려준다.


 


그런데 한 국제결혼중개업체 대표가 이주여성을 위한 인권위원회를 창립했다고 한다. 지역 사무실 한 곳은 국제결혼중개업체와 같이 쓴다. 뭔가 이상하다. 누군가는 의문을 제기해야만 했다. 2008년 6월 18일 샐러드TV 홈페이지에 “대통령 직속 기구도 독립기구도 아닌 ‘인권위원회’ 창립”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되었다. “현재 국제결혼중개업이 인신매매성 사업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런 것에 반감이 많았어요. 우리가 이주민 방송국인데 그런 기사를 쓰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박경주 대표가 이 기사를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국제결혼중개업체의 행태만은 아니었다. 기사에서 지적되었던 또 다른 부분은 행정청의 안일한 태도였다. “사실 행정청이 문제잖아요. 인가 안 해주면 끝나는 거잖아요. 행정청이 이런 이름 왔을 때 고치라고 얘기할 수도 있는 건데….”라며 박경주 대표는 행정청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당시 담당자는 이주여성인권위원회의 회장이 결혼중개업체대표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뿐더러 그 이름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행정청에서 결혼이주여성의 현실에 대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박경주 대표를 통해 접할 수 있었던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안일함, 그리하여 잔인함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행정청의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현재 국제결혼중개업의 폐해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측면에서는 그러한 구조의 생산에 일조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박경주 대표는 인터뷰를 통해 국가의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에 대해서도, 국가가 인신매매를 장려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이제는 이주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할 때라고 날카로운 비판의 날을 세웠다.


 


# 그들은 상상조차 못하는, 그래서 더 말해야 하는


 


그러나 소송 과정에서 박경주 대표는 또 다시 공권력의 ‘무지’에 마주해야 했다. 소송은 수사 과정이나 재판 과정에서 “국제결혼중개업이 뭐가 문제가 있다고 그러냐고, ‘당신은 삐딱하다.’ 이런 식으로, 제가 잘못됐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사법부 관계자들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장가를 못 가는 한국인 남성들에게 결혼할 여성을 소개해주는 게 뭐가 잘못된 것이냐는, 오히려 잘하는 일 아니냐고 반문하는 재판관을 처음 보게 되었을 때, 그것이 다시 항소심에서 반복되었을 때, 박경주 대표는 벽에 부딪히는 기분,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었다고 술회했다. 박경주 대표는 자신과 변론을 맡았던 소라미 변호사에게 이 소송은 승패를 떠나 하나의 ‘수사기관 및 사법부 관계자 교육하기 프로젝트’였다고 농담 삼아 지난했던 소송 과정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그러나 그 농담에는 한국의 국제결혼중개업의 현실에 대해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수사기관 및 사법부 관계자들에 대한 답답함과 질책이 묻어있었다. 그 과정에서 마주했던 사법부의 권위적 태도는 또 다른 어려움이 되었다. “피고, 당신은 피고라는 것을 잊었는가? 법정에서 피고는 질문을 할 수가 없어”라고 말하는 판사 앞에서 박경주 대표는 상대 측 증인의 이름조차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이러한 소송 과정은 소수자 미디어이자 대안 미디어인 샐러드TV에게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박경주 대표는 샐러드TV 뿐만 아니라 다른 소수자 언론, 대안언론들이 가지게 되는 어려움에 대해 토로했다. 소수자 언론, 대안언론으로서 민감하고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다 보면 명예훼손죄로 고발당하게 될 가능성을 지울 수 없고, “현재 기사를 쓸 수 있고 활동할 수 있는 인력이 한정되어 있는데 그런 일에 매달릴 수 있는 인력이 과연 있느냐?”면서 그러한 상황에 놓였을 때 소규모 언론이 대처하기 힘들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이로 인해 소수자 언론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가 들었다. 박경주 대표 말에 따르면, 실제로 다른 소규모 언론에서는 이러한 현실적 문제로 인하여 “처음에는 되게 세게 쓰다가도 나중에는 지쳐서 웬만하면 합의 보는” 경우가 있을 수밖에 없게 된다고 한다.


 


박경주 대표는 안정장치가 있다면 작은 언론사들도 할 말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언론중재위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무조건 형사법정으로 가기보다는 언론중재위원회를 이용해 객관적인 입장에서 그 내용을 가림으로써 양측 모두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중재위원회가 좀 더 대중들에게 많이 홍보되어야함을 역설했다. 또한 공감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서는, “공감이 작다는 게 제일 아쉽죠.”라며 공감과 같은 단체가 소수자 언론, 대안 언론과 같은 소규모 언론의 표현의 자유 보호에 대해 한 부분을 맡을 수 있었으면 한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자주 열리지 않더라도 1년에 몇 번 포럼 개최 등을 통해 소규모 언론에 힘을 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한편, 그러한 언론들의 기자에게도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 즐겁게, 꿈꾸며 희망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박경주 대표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이번 명예훼손 소송으로 인해 이제는 이런 일을 겪지 않도록 조심스러워지신 부분은 없는가?” 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문이었다. 박경주 대표는 “이 사안은 그러기가(사과글, 정정글을 올리는 등 상대방과 합의보기가) 힘든 사안이어서. 그렇게 되면 너무 말도 안 되는 거고”라며 “그렇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제가 이 기사를 쓸 때 아무 문제없이 썼다고 저는 확신을 했는데 거기서 잘못 판단한 거니까.”라고 당당하게 답했다. 소규모 언론들이 명예훼손과 표현의 자유 문제와 관련하여 처한 현실을 간과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뚝심 있게 전달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녀’들을 우리가 기억하게 되고, 세상이 조금씩 바뀔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박경주 대표에게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물었더니, 2010년 초까지는 언론 활동에 초점이 모아져있었지만, 최근에는 ‘문화예술단체 샐러드’로서 그동안 언론으로는 말할 수 없었던 부분을 보여주기 위해 극단 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명예훼손 문제와 같이, 언론이라는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었기에 연극을 통해 좀 더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 보람 있고 즐겁다. 올해 16회의 지방 순회가 예정되어있는 ‘이주여성 한국생활도전기’와 얼마 전 공연을 마치고 9월에 변방연극제를 기다리고 있는 ‘란의 일기’가 바로 그 결과물들이다. 특히 ‘란의 일기’는 국제결혼중개업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 아니라 그 결말에서 앞으로 박경주 대표가 꿈꾸고 있는 이주민 문화예술운동의 방향을 암시하고 있다. 극 ‘란의 일기’에는 란의 죽음을 캐는 친구인 외국인 유학생 ‘차우’가 등장한다. 차우의 ‘복수’는 한국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그들 내부의 연대를 상징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최근 박경주 대표는 극단 활동을 함께 하면서 오프라인 몽골어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이주민들이 기사를 쓰고 편집해서 직접 목소리를 내는 이 신문에 대해 박경주 대표는 “이 목소리란 게 한국인을 향한 목소리가 아니에요. 그런 공동체를 공동체 자체로 인정해주고 놔두는 게 참 중요하거든요.”라며, “저희는 언론 일 뿐이고 정보를 줄 뿐” 이 신문이 가지고 있는 공동체 내부의 소통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벌써 반응이 뜨거워서 곧 5개 언어로 확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8월에 밝혀질 것이라는 또 다른 프로젝트. 그동안 이주민 담론이 결혼이주여성에 초점이 맞춰져 왔던 것에 비해 이번에는 이주민의 새로운 부분을 다룰 예정이라는데, 박경주 대표는 싱글벙글 웃을 뿐 그 자세한 내용은 베일에 감춰두었다.


 


8월에 ‘커밍 순’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극단 샐러드를 나오는 길, 철공소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희망을 본다.


 


 


글_이수정


정리_김건, 여동근, 이종희(13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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