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소송 당사자 이야기] 당신은 일하시겠습니까?
<채용 공고1>
하루 11~12시간 근무
일주일 중 6일은 잔업
임금 130만원
기타: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음, 진급 없음.
<채용공고2>
아파서 출근을 못할 경우 회사에 직접 나와서 고용주에게 본인이 얼마나 아픈지 확인 받아야 함. 집이 얼마나 멀든, 아파서 일어설 수 조차 없는 상태이든 어떤 경우에라도 회사에 직접 나와야 함. 상태를 확인 받은 후에 고용인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 쉬면 됨. 전화로는 확인을 받을 수 없음. 그렇지 않을 시엔 무단 결근으로 간주, 해고 가능.
<채용공고3>
근무 시간 중 잡담 일절 금지.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게 대화하고 운동도하고 일하다 잠깐 쉬더라도, 다른 직원들에 상관없이 앉아서 일해야 함. 근무 시간 중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잡담이라도 할 시에는 어떤 처분을 받더라도 수용할 것.
한국 사람이라면 이런 직장에 몇 명이나 일하려 할까? 혹은 이 셋이 모두 다 합쳐진 직장이라면 며칠이나 다닐 수 있을까? 첫 번째 공고는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근무 조건에 대한 추정치다.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가 2009년 경남지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400명에게 설문조사를 해서 평균을 낸 것이니, 더 못한 사업장도 많을 거란 얘기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경우는 필리핀에서 온 미셀씨가 직접 겪은 이야기다. 한국 직원들은 전화 한 통이면 되는 결근이, 이주노동자들은 얼마나 아픈 지를 직접 보여 줘야 했다. 회사에 나오고 나면 돌아갈 길도 멀고, 여기까지 온 것도 아깝고, 괜찮으면 일 해 보라고 관리자가 꾀기도 하니 결국 아파도 쉬기 어렵다. 이주노동자에게만 잡담 및 휴식을 금지하는 것도 그렇다.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은 근로조건에서의 평등을 규정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대우는 일상이 된지 오래다.
성폭력을 당해도 하소연할 데 없는 현실
울산의 한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던 A씨는 한국인 매니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회사에서는 “신고를 하는 건 자유지만, 신고하면 본국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했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근로자는 회사에 문제가 있을 경우 작업장을 세 번 바꿀 수 있지만, 한국에 온 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본국인 필리핀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대사관에서는 “새벽 2시에 왜 문을 열어주느냐”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렸다. 한국에 오기 전에 받은 교육에서는 ‘야근이 있으면 새벽에라도 사장이 문을 두드릴 수 있다’며 ‘문을 열어 주라’고 했었다. 잘못이라면 배운대로 한 게 잘못이었다.
이주노동자는 억울한 일을 겪더라도 하소연조차 쉽지 않다. 노동부에서 운영하는 근로자지원센터와 잡센터(job center)가 있지만 통역 인력의 숫자가 부족하다. 직원들의 반말도 예사다. 미셀씨는 “상담을 받으러 가면 나를 사람이 아니라 마치 ‘걸어 다니는 문제’로 여기는 것 같았다”고 했다. 억울한 일을 겪어도 풀 길이 없으니, 이주노동자들은 결국 스스로 문제를 풀어 보기로 했다. 자신들의 일이니까 자신들이 모여서 해결해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서울경기인천지역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는 그런 생각에서 만들어졌다.
MTU는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이주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한다. 한국어 수업이나 통역 제공, 캠페인 등 활동 영역은 다양하다. 노동법 위반 사항에 대해 상담을 하거나 도움을 줄 단체를 연결해 주기도 한다. 법률지원의 경우 공익변호사그룹 공감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이주노조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미셀씨는 자기 일처럼 도와주는 그들이 “굉장히 고맙다”고 했다. 차별을 받으면 한국이 싫다가도,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서 자신들을 돕는 한국인들 때문에 이 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게 “한국에 사는 진짜 좋은 점”이란다.
미등록이주노동자도 노동자일까?
MTU는 2005년에 만들어졌지만 아직 노동부로부터 승인을 받지 못했다. 흔히 불법체류자라고 부르는 미등록이주노동자가 노조원으로 포함된 까닭이다. 미등록이주노동자는 노동조합을 만들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이 노동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이미 대법원은 미등록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인정한 바 있다. 미등록이주노동자를 규정하는 출입국관리법은 취업자격이 없는 외국인의 고용이라는 사실 행위를 금지한 것이지, 이미 취업한 외국인의 근로에 따른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미등록이라고 하더라도 ‘노동자는 노동자’란 말이다.
같은 이유로 MTU 역시 2007년 고등법원에서 노조설립 인정 판결을 받았다. 미등록이주노동자가 노조원으로 가입되어 있다고 해도 노조 설립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주노조에서 2006년부터 일하고 있는 이정원 선전차장은 고등법원의 판결에 “한줄기 빛이 내리는 듯 기뻤다”고 한다. 그러나 곧 위원장과 부위원장 등 지도부가 표적단속으로 한꺼번에 추방됐고, 노동부 상고가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3년째 판결이 나지 않고 있다.
미등록이주노동자를 조합원에서 제외하면 안될까.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미셀씨는 «미등록노동자들의 상황이 등록노동자보다 훨씬 더 어렵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순 없다는 뜻이다. 2009년 말 현재 한국에 머무르는 미등록이주노동자는 약 20만 명. 적지 않은 숫자다. 이들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을 작업장도 꽤 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말 제조업체 1211곳을 조사한 결과, 평균 외국인 근로자가 2.7명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만약 미등록이주노동자가 한꺼번에 다 빠져나간다면 중소기업이 더 큰 인력난을 겪을 것이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우리를 무서워하지 마세요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손을 놓지 않기에, 이주노조의 앞길은 순탄치 않다. 이정원 차장은 조심스럽게 “이번 정부 안에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긴 어렵지 않겠느냐”고 했다. 때문에 캠페인을 통해 이주노조의 존재와 필요성을 계속 알려 나갈 계획이다. 미셀씨는 “왜 사람들이 한국에 일하러 오는지, 왜 미등록이 되는 위험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지 관심을 가지고 살펴 봐 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주노조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을 부탁했다.
“우리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위협이 아니에요. 우리는 그저 살고 싶을 뿐이고, 내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여기 왔을 뿐이에요. 우리는 단지 국가, 문화간 상호적 이해가 있는 사회에서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이주노동자들의 존재에 대해 위협을 느끼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글_11기 인턴 김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