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월례포럼_성전환자 인권
공감월례포럼_성전환자 인권
“ 지렁이는 땅을 비옥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생물체입니다”
–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사무국장 한무지
글_ 이선희 인턴
“늦어서 죄송합니다.”라며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문을 열고 그가 들어왔다. 작은 체구와 동그란 얼굴의 그는 흡사 80년대 명랑만화의 ‘똘이’를 연상케 했다. 약간은 굵은 목소리에 다양한 손짓과 표정으로 성전환자가 겪는 역경을 쭈욱쭈욱 뽑아냈다.
“왜 단체이름이 지렁이냐구요? 보통, 사람들이 지렁이 생각하면 바로 꿈틀꿈틀하고 땅 밑에서 몸 비비다가 비가 오면 꾸물꾸물 기어나오는 뭔가 징그러운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지렁이는 땅을 비옥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생물체잖아요. 무엇보다… 자웅동체이기도 하구요.”
일반적으로 성전환자는 G.I.D(Gender Identity Disorder), 즉 정신적 성과 육체적 성이 불일치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외관적인 성적 요건을 갖추기 위한 수술을 모두 마친 사람을 trans sexual로 다시 구분한다. 한무지 씨는 “진보적인 진영에서는 ‘성전환자’를 매우 넓게 해석해서 성 자체의 구분을 거부하는 사람 모두를 지칭하기도 한다.”라고 했다. 성전환증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규명된 것은 없다. 더군다나 성전환증이 후천적이냐 선천적이냐 혹은 장애냐 기호냐의 논쟁도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한무지 씨는 성전환증을 장애로 보는 시각은 매우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성전환증이 ‘참을 수 있는’ 가벼운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임신했을 때 부적절한 약을 먹고서 호르몬 부작용으로 태아의 뇌하수체에 영향을 끼쳐서 생겨 선천적으로 성전환증을 갖기도 한다. 그러한 경우 아이는 유년기부터 육체와 정신의 성이 불일치해서 고통을 받는다.
그들의 어린시절
성전환자들 다수가 어렸을 때 로봇을 가까이 하거나(Female To Male 여자->남자), 인형놀이를 (Male To Female남->여) 즐겼다고 한다. 한무지 씨 역시 유년시절 ‘건담;을 좋아해 부모님을 졸라 ’건담 운동화’를 사기도 했다.
“남자는 머리를 짧게 깎고, 여자는 머리를 곱게 기르는 등 초등학교에서 서서히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는 교육을 하잖아요. 저는 머리 기르는 것이 싫어 삭발했어요. 물론 엄마한테 먼지 나도록 맞았었지요.”
사춘기시절에 2차 성징을 겪고 신체적 변화가 두드러지면서 성전환자들의 정신적 고통은 더 심해진다. 이 시기에 대부분의 성전환자는 생식기관을 감추려고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신체 혐오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의 경우 가슴을 보는 것이 싫어서 항상 불을 끄고 샤워를 했다고 한다.
“제 친구 중에는 정말 기막힌 비유로 신체를 표현한 녀석이 있어요. 그 녀석 어머니께서 진짜 바퀴벌레를 싫어하거든요. 자신의 가슴을 볼 때마다 그 녀석은 바퀴벌레를 가득가득 담은 주머니 두개를 줄에 매달아서 목에 걸고 있는 것 같대요. 그 정도로 자신의 가슴이 꼴 보기 싫다는 거죠.”
더 극단적인 경우로는 군대에서 자신의 성기를 자른 MTF 성전환자도 있었다. 앞의 사례들은 신체혐오증의 극단적인 예들이다. 그에 따르면, 대부분의 성전환자는 신체혐오증을 성장기에 경험한다고 한다.
이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 – 주민등록증과 취업
내가 아무리 마음은 남자로 살아도 어디를 가든 주민등록증을 보여줘야 하는 사회에서 취직도 하고 병원도 가고 술집도 가려면 주민등록증 제시해야한다. 그는 3년간 근무했던 회사에서 자신의 뒷 번호 ‘2’가 발각된 순간 쫓겨났다. 주민등록증 뒷번호를 꼭 1~2번으로만 시작해야 하나? 3번, 4번도 만들어서 성전환자용 뒷번호를 제공하는 건 어떨까? 그러나 3번 4번은 자신이 성전환자임을 온 세상에 알리는 이름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남들과 다른 ‘외계인’ 딱지가 아니다. 남들처럼 살 수 있게, 묻혀 지낼 수 있는 평범한 이름표가 필요하다.
‘신분증’을 제시하는 상황을 피하다보니 신분증을 요구하지 않는 일들에만 지원하게 된다. 성전환자의 대부분은 비정규직에서도 신분확인이 필요 없는 어둠의 업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주로 대리운전, 유흥업소, 배달 등의 일이다. 요즘에는 대리운전에도 신분증을 요구해서 직업구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한번은 그가 배달을 하다가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어떻게든 신분증을 제시하는 상황을 피하려고 혼자 뒷수습을 하려 했으나 사고의 피해가 커서 병원에 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신분을 속이고 취업을 했으므로 보험 혜택은 받을 수 없어 몇 백만원의 치료비를 스스로 부담해야했다. 성전환자들은 법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에 사고가 났을 때 보상과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처지다. 경찰로부터 모욕을 당하거나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하는 등의 차별을 겪고 있다. 그 외에도 그가 성전환자임을 아는 낯선 사람들에게서 받은 폭력은 그 형태와 내용 또한 각양각색이다.
“여보세요.”
“야 이 개새끼야. 여자가 왜 그 모양이냐. 너 같은 새끼 때문에 나라가 이 모양이지….”
갑작스런 욕설에 화가 났지만 그는 전화를 건 상대방에게 침착하게 말을 걸었다고 한다.
“당신! 도대체 뭐가 문제야? 뭐가 무서워서 그래?”라고 시작된 대화는 결국 그가 수화기 속의 남자를 설득하고 위로하면서 끝났다고 한다.
수술
대법원의 ‘성전환자 호적정적을 위한 사무처리지침’을 보면, 성전환을 허용하는 요건 중에 하나가 성전환 수술이다. 호적 정정 신청을 위한 첫 번째 준비단계는 신뢰할 수 있는 정신과 의사로부터 진단서 떼어오기. 그러나 정신과에서 떼 온 이 ‘진단서’라는 것이 부르면 값이 되는 형식적 종이이다. “자신의 성 정체성은 자기 자신, 주위 친구들, 혹은 가족처럼 자신의 생활과 밀접한 사람들이 더 잘 알텐데, 생면부지의 의사에게서 받은 진단서로 자신의 성을 증명하는 게 웃기다.”고 그는 말한다. 더군다나 이 진단서는 병원에 따라, 의사에 따라 발급 비용이 천양지차라고 한다. 두번째 단계는 호르몬 치료이다. 호르몬 치료는 주로 비뇨기과에서 받는다.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비정규직에 저임금으로 가난 속에 몸담은 성전환자들은 약국에서 호르몬제를 직접 구입하여 스스로 팔에 주사를 꽂는다. 집에서 투입하는 호르몬제의 부작용은 결국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데, 그 책임의 대가가 혹독하다. 그의 한 친구는 호르몬 한번 잘못 맞았다가 간과 심장의 기능이 정지될 뻔 했다. 하반신이 마비되거나 피부질환으로 얼굴이 처참하게 상하는 경우도 있다. 뒷감당하기 버거운 부작용 때문에 몸뚱이가 망가지고 있다.
‘신체적 외관을 갖출 것’, 이 조항을 성전환자들은 독소조항으로 지정한다. 의학계도 성전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혹은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신체에 일어나는 변화를 우려하여 성전환 수술의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한다. 그러나 호르몬제 맞을 돈도 없어서 스스로 투여하는 마당에 천만원에서 억대를 넘나드는 외관수술 비용을 어떻게 마련하란 말이며, 안전성이 검증도 안 된 수술의 뒷감당은 누가 한다는 말인가.
‘에피소드’라고 하기에는 살벌한 수술과 관련된 ‘사고사’를 들어보자. 그의 한 친구는 대전 어느 병원에서 성전환 수술을 싸게 해준다는 소식을 듣고(거의 반값에) 달려갔다. 수술은 ‘대실패’였다. 병원 측에 항의를 했더니 ‘불쌍해서 수술 줬더니 의사 선생님에게 고마워해야지 무슨 뻔뻔한 짓이냐’며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 상황을 연출했다고 한다.
이렇게 위험하고 비싼 수술을 꼭 해야 하나? 수술의 비용과 위험성은 차치하더라도 수술의 효과는 어찌할 것인가? FTM의 경우 외관 성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성기의 생식기능은 없으니 장식물 수준이다. 하긴 생식 능력이 없는 것 또한 호적정정의 요건이니 수술로 얻은 성기는 생식할 때 발기해서야 쓰겠는가! 그렇다면 외관상 성기는 순전히 ‘정상’ 남자라는 요건을 채우기 위한 겉치레일 뿐이다.
“꼭 성기가 있어야 남자인가요?” 그가 묻는다.
이 세상에는 자궁에 혹이 생겨서 자궁을 떼어낸 여자도 있다. 성기는 있지만 성적 능력이 없는 남자도 있다. 외관의 구비조건이 성전환의 필요조건인지 고민해 보자. 게다가 성기를 붙이는 과정은 잔혹한 수술이다. 우선 왼쪽 팔목, 다음은 오른쪽 팔목의 순서로 살을 떼어서 성기를 만든다. 수술이 미완일 경우에는 최후의 수단으로 살 한점 안붙어 있는 발목의 살을 떼어내야 한다. 생살을 떼어내는 고통에 더해서 뼈가 잡히는 발목에서 살을 떼어낸다고 상상해보자. 아!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자신의 성을 자신이 결정할 권리
한무지 씨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한 소시민으로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프면 병원에 가고, 친구들과 술 한잔 걸치는 소소한 일상을 즐길 권리를 갖길 원한다. 그가 사회가 정한 틀 안에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려면 에베레스트 산보다 높은 장애물을 연신 넘어야 한다. 주민등록제가 폐지되지 않고, 성정체성을 사회가 지정하는 세상에서 발 딛는 이상, 그도 1로 시작하는 뒷 번호가 필요하다. 그도 먹고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인권’을 위해 세상을 바꾸는 움직임은 보기에는 멋지지만 정작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상처처럼 아파할 수 없고, 소수자가 처한 현실을 내가 겪어볼 수 없다. 그래서 항상 ‘인권’은 흐릿하고 빈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런 활동들 덕분에 우리는 고통의 세세한 무늬와 또 다른 현실을 또렷이 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