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감

[공감이 권하는 책]구반포 상가를 걸어가는 장자 – 정정훈 변호사






1. 


“낙타야, 나의, 낙타야 어서 온. 나를 태워다오”


(『구반포 상가를 걸아가는 낙타』, 황지우)




   강신주는 『장자』를 ‘타자성의 철학’이라는 현대적 주제로 변주하여, 당대의 우리에게 불러온다. 알튀세, 부르디외, 스피노자 등, 오늘날 철학의 강호를 주름잡는 협객들을 『장자』라는 텍스트 주변에 소환해 마주치게 하고, 그 마주침의 결과를 21세기 우리들 삶의 문제의식으로 풀어놓는다. 가장 첨예한 오늘의 문제의식으로 읽는 강신주의 장자는 ‘구반포 상가를 걸어가는 장자’ 정도가 될 수 있을까. 그러나 현기증은 없다. 당대의 현실이라는 건널목에 선 장자가, 호기심으로 동그란 눈을 껌벅거리는 유쾌한 장면이 연상된다.




   타자에게로 이르는 길은 미리 주어진 방법론이 존재할 수 없다. 강신주는 그 어려움이 ‘목숨을 건 비약’이고, ‘날개 없이 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타자에게로 나아가는 소통의 길은 모래알 같이 서걱거리는 관계의 사막을 건너야 하는 ‘낙타의 길’일 것이다. 저자는 그 낙타의 길을 나비의 가뿐함으로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2. 


“치열하게 싸운 자는 적이 내속에 있음을 안다”


(「109-5」, 황지우)




   저자는 타자성에 주목하는 장자의 철학이 소통과 연대의 철학임을 설명하고, 그 핵심을 “잊어라, 연결하라!”는 한 문장으로 제시한다. 타자와 소통하여 새로운 연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비워야 한다. 망각은 내 ‘속’에 있는 ‘적’과 싸우는 일이다. 국가, 종교 등 우리들 삶 위에 군림하는 초월적 가치들을 잊고, 타자와 마주할 수 있는 창조적 공백을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망각(忘)은 비움(虛)이고, 막힌 것을 터서(疎) 연결(通)하는 소통을 위한 것이다.




   외부가 없다면 길이 존재할 수 없듯이, 타자 없는 소통은 무의미하다. 도(道)는 어떤 고정불변의 초월적 형이상학이 아니다. 걸어가면서 만들어지는 것((道行之而成)이며, 타자에게로 나아가는 길이고, 타자와 함께 봄을 맞는 일이다.(物與爲春)






3. 


“이제 한 사람이 아프면 모두 아프다는 것을 안다”


(「아내의 편지」, 황지우)




   ‘타자성의 원리’에 주목하는 강신주의 장자 해석은 ‘인권’의 문제의식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타자와 함께 봄을 이루는 연대의 전략은 인권의 핵심 가치다. 나를 내세워 타자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낮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 나와 우리를 다시 구성하는 것, 한 사람의 아픔을 모두의 아픔을 예민하게 읽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권의 관점이요 방법론이다.




   군주를 향해, 군주를 위해 이야기하는 노자나 다른 제자백가의 방식과는 달리, 장자는 낮은 삶의 목소리를 통해 사유를 전개한다. 이런 장자의 방식은 인권적 방법론의 빼어난 모델이 아닐 수 없다.




   권리의 말뚝으로 세운 서구적 인권 이론이 아니라, 관계에 주목하는 동양의 사유 전통 속에서, 살아있는 오늘의 인권 이론을 다시 정립할 가능성을 강신주의 장자 해석을 통해 확보하게 된 것은 아닌지. 그 이론적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도 의미 있어 보인다.

공감지기

연관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