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 권하는 책] 법문학 – 정정훈 변호사
[공감이 권하는 책]
차이의 목소리를 듣는 법학 방법론
『법문학』(이상돈 ·김소영, 신영사, 2005)
1.
“지나치게 아마츄어적인 발상으로 성매매 특별법처럼 우리들이 원하지도 않는 법 조항을 제멋대로 고쳐 마치 성노동자들의 ‘인권’을 대단하게 보호하는 양 왜곡하지 않으면 좋겠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7년 2월 26일 보건복지부의 에이즈 예방법 개정안과 관련, 성매매 여성에 대한 에이즈 검진 의무화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을 포함한 권고 결정을 하자, 민주성노동자연대(민성노련)는 성명서를 통해 국가인권위원회를 위와 같이 강도 높게 비판했다.
당시 나는 인권의 관점에서 에이즈예방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공론화한 공동행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강제검진 문제에 대한 공동행동의 입장은 분명한 것이었다.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강제검사를 통해 예방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은 근거 없는 환상에 불과하며,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뿐이다. 폐지돼야 하는 것은 ‘강제’검진이며, ‘강제’검진을 폐지함으로써 자신과 타인의 건강을 함께 고려할 수 있는 자발적 ‘검진’의 기회와 조건이 확대·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 논의 과정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는 공동행동이 공론화한 이러한 입장을 상당 부분 반영한 것이었다.
강제검진 문제에 대한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인권은 결론이기 이전에 과정이어야 했다. 당시 민성노련의 성명서는 아프게 다가왔다. “우리 성노동자들의 인권침해를 고려했다면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공청회 같은 사회공론화 과정이 먼저 있었어야 했”다는 비판은 인권을 말하는 방식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법에서 배제되었던 에이즈 감염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법에 담고자 했으나, 그 과정에서 또 하나의 소외된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했던 것이다. 법으로 차이의 목소리를 담고자 했으나, ‘차이들의 차이’마저는 온전하게 고려하지 못했던 하나의 에피소드다.
2.
법이 ‘차이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을까ς 『법문학』은 이 문제에 대한 하나의 입문적인 응답이다. 이상돈 교수는 서문에서 ‘법문학’의 시도로써 “이성의 빛이 비켜간 그늘진 곳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반성의 계기를 갖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법문학』은 법이 문학작품처럼 해석되어야할 ‘이야기’(내러티브)라는 관점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렇기에 이야기를 대상으로 하는 문학비평의 방법론이 법해석의 방법론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이론적·실천적 근거를 가지게 된다.
저자들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해체적 문학비평의 방법론이다.『법문학』은 ‘이야기하기’를 통해 기존 법담론이 소외된 타자의 목소리를 담고 있지 않음을 폭로하고, 문학적 수사로 수행되는 권력적 억압을 해체하는 해체주의적 입장을 소개한다. 해체주의 방법은 법의 억압적 구조를 들추어내고, 그것을 해체함으로써 해방적 관심에서 법을 재구성할 수 있게 한다. 저자들은 ‘귀 기울이기’와 ‘드러내 보이기’로 요약되는 해체적 방법을 대화(토론민주주의)의 과정에 배치함으로써 의사소통의 장을 역동성과 차이에 개방하고자 한다.
3.
저자인 이상돈 교수는 『인권법』(세창출판사, 2005)에서 ‘인권개념은 실체가 아니라, 대화적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절차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는 입장과 함께 ‘인권은 말함 속에 있다’는 관점을 제시한 바 있다. 이는 하버마스를 이론적 근거로 인권을 절차적으로 재구성하는 시도였다. 그러나 인권을 토론(대화)의 절차적 과정으로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인 차이의 회피와 배제, 입법과정에서의 정치적 가치의 서열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또한 공론영역에서의 대화 과정이 권력 관계가 전제되지 않는 매끄러운 과정이지도 않음은 분명하다. 이러한 경우 절차적․대화적 인권 개념의 구성은 또 하나의 문턱을 만드는 위험한 것일 수 있다. 『법문학』은 이러한 한계를 해체주의적 문학비평의 방법론으로써 보완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인권법』과 『법문학』은 서로의 한계를 출발점으로 삼는 서로 다른 시도들로 읽힐 수 있다.
차이의 목소리를 담아야한다는 제안이나 차이로서 보편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야 여성주의 이론의 오래된 통찰이지만, 『법문학』이 잃어버린 목소리를 법학의 영역에서 복원하려는 늦었지만 소중한 시도임에 분명하다. 또한 ‘문제는 해석이 아니라 변화’라고 한다면, 법학의 변화 방향을 제시하며 ‘법문학’이라는 독자적 영역의 대상과 방법론을 모색하는 큰 걸음이라는 의미에서도 넉넉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4.
이 책에서 또한 빛나는 부분 중의 하나는 서로에게 배웠다며 고마움과 감사를 전하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다. 스승인 이상돈 교수는 자신의 모더니즘적 법이론이 반성의 계기를 가졌다고 하고, 후학인 이소영 연구원은 자신의 포스트모던 사고가 니힐리즘적 부정의 늪에서 벗어나 생산적 합리성을 얻었다고 한다.
공부나 학문이 자기와의 싸움을 통해서 그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면, 스승과 제자도 일방적인 관계일 수만은 없고,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하는 교학상장의 관계라는 점을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서문에서 제시한 두 저자의 관계가 한국 법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밝은 은유’로서도 읽히는 점 역시 독자를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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