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 권하는 책] 새로운 가능성의 전위로 변방을 재발견하다 – 변방을 찾아서
늦은 나이에 첫 아이를 낳았다. 휴직을 하고 집에서 정신없이 애를 보는데 신영복 선생님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싸가지가 없어서인지, 직접 보고 겪지 않고서는 잘 인정을 못 해서인지 나는 존경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까칠한 성격이다 보니 직접 접할 기회가 없었던 분을 존경하기란 쉽지 않은데, 그 중 한 분이 신영복 선생님이다. 신간 소식에 반가워 책 볼 여력도 없는 주제에 냉큼 책을 사 애를 재우며 짬짬이 읽었다. 선생님 글은 어렵지 않다. 그래서 좋다. 그렇지만 쉬이 읽을 수 있다 해서 담고 있는 내용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눈으로는 쉬 읽히나 마음으로 담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이번 ‘변방을 찾아서’는 신영복 선생님께서 써준 글씨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그 글씨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찾아가보니 글씨가 있는 곳 모두가 ‘변방’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책 제목도 “변방을 찾아서”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통혁당 사건으로 20여 년 징역형을 사신 선생님의 삶 자체가 변방을 대표하고 있지 않은가. 같은 변방끼리 통했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변방은 일반적으로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주변부로 인식되고 그렇기에 변방에 대한 관심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온정주의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변방을 낙후되고 소멸해가는 주변부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전위로 읽어 내고자 했다고 한다. 즉 공간적 의미의 변방이 아니라 담론 지형에서의 변방, 즉 주류 담론이 아닌 비판 담론, 대안 담론의 의미로 재구성하고자 한 것이다. 나아가 주목해야 할 것은 ‘변방성’, ‘변방 의식’이라고 제시한다. 우주의 광활함과 구원함을 생각한다면 인간의 위상 자체가 변방일 수밖에 없으며 이로부터 세계와 주체에 대한 통찰과 성찰이 가능해진다고 보았다. 변방성 없이는 통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하더라도 변방의식을 내면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며, 변방에 존재한다 하더라도 중심부에 대한 열등의식이 없어야 창조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인류사는 언제나 변방이 새로운 역사의 중심이 되어 왔으며, 문명이 변방으로 이동하는 까닭은 중심부는 변화하지 못하는 반면 변방은 변화의 공간, 창조의 공간, 생명의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공감’ 사무실에도 신영복 선생님의 글이 있다. “희망을 그리는 길, 공감”, “쇠귀” 지난 2009년 공감 5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며 선생님께 어렵게 부탁드려 받은 글씨다. 표구해 사무실 벽에 고이 걸어두었다. 2004년 공감이 첫발을 내딛으며 처음 벌인 사업이 소수자․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인권현장으로 변호사를 파견하는 사업이었다. 어느 변호사도 일하고 있지 않은 곳에 뛰어 들었으니 그곳이야말로 “변방”이라 할 수 있겠다. 만 8년간 공감은 어찌했던 공간적 의미에서 늘 “변방”에 있어왔다. 그런데 변방에 “있는 것”에서 나아가 변방성 즉 비판담론, 대안담론을 만들어 사람들을 만나며 소통하고 공감하고자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함께 일한 동료는 참 지지리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며 탄식을 했었다. 슬럼프를 박차고 올라온 동료가 다시 한 말은 세상은 바뀌지 않았지만 나는 바뀌었다, 그로부터 변화는 시작되는 게 아니겠냐는 낙관이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시간 안에 성과를 내려는 조바심보다는 긴 호흡으로 낙관하는 자세가 아닐까. 문명이 그래왔지 않은가. 변방이 새로운 중심으로!
* 아! 저는 6개월간의 출산․육아 휴직을 마치고 지난 8월에 업무에 복귀하여 엄마 노릇과 일을 행복하게(?) 함께 하고 있습니다.^^
글_소라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