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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감이 권하는 책] 우리는 해외입양에 대하여 과연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 『해외 입양과 한국 민족주의』






 




 

“해외입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의 대답은 이러했을 것이다.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기회.” 몇 년 전 해외입양인들이 다가왔다. 입양절차가 얼마나 부실하였는지, 아동들의 이익이 얼마나 철저하게 무시되었는지, 해외입양아들이 얼마나 고가의 상품으로 취급됐는지를 알게 됐다. 그러나 “시간의 경과로 법적인 문제 제기가 불가능하다.”, “입양절차 및 사후관리 관련 법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말만을 하면서 나는 한동안 그들이 이야기하는 ‘진실과 화해’란 법의 영역을 벗어나는, 따라서 나와는 무관한 것으로 간주했다.


 

많은 이들의 공동의 노력으로 우여곡절 끝에 입양, 특히 해외입양절차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입양인의 정보접근권을 보장하는 입양특례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그 후 ‘입양절차가 까다로워져서 더 많은 아이가 버려진다.’는 취지의 기사가 줄을 이었다. 새해 벽두에 한 신문사는 작심한 듯 며칠 새 다량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법적인 논의가 한번 크게 이루어지고 간 그 자리에서 최근 “진실과 화해”의 의미가 불현듯 나에게 절실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오래전에 저자인 토비아스 휘비네트 박사에게 직접 받았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스스로 해외입양인인 저자는 1996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충격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국가를 가족처럼 생각하며 단일성을 강조하는 한국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해외입양을 행하고, 다시 이 입양인들을 복원하여 다시 한국인으로 만들고자 하는 역설을 본다.  
  
“그들은 우리가 … 본질적으로는 … 한국인이라고 말해 주기를 바랐다. … 갑자기 한국 문화에 눈뜨기 시작했고, …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했다. … 한국의 “엄마”를 찾아서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묘사하고 싶어 했다. … 해외 입양에 관련된 상실과 슬픔과 같은 강렬한 감정, 그리고 동정과 연민이 조작되고 요란한 구경거리로 만들어져 유통되고 있었다.”  


 

저자는 도발적으로 해외입양을 아직도 존재하는 비서구 아동의 식민주의적 무역으로 개념화하고 노예무역, 인신매매와의 유사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한국의 해외입양의 역사를 찬찬히 고찰한다. 소위 ‘혼혈아’들을 없애기 위해 시작되었던 해외입양은 전쟁고아에 대한 인도적 접근으로 이어졌고, 산업화 이후에는 도시빈곤으로 버려진 아이들이 그 대상이 됐다. 그리고 지금은 거의 비혼모 자녀가 해외입양의 대상이 된다. 세계 제1위 아동수출국이라는 평가가 정책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기는 하지만, 해외입양은 계속되고 있다. 해외입양 반세기 동안 15만 6천 명의 입양 한국인이 발생했고, 이중 2/3는 미국으로 보내졌다. 입양 한국인은 1948년부터 2004년까지 이루어진 세계의 해외입양 49만~50만 명 가운데 1/3을 차지한다.  


 

저자는 4개의 장편영화와 4개의 대중가요의 분석을 통해 한국 대중문화에 나타난 해외입양과 입양 한국인의 모습을 분석한다. 대중문화에 나타난 입양 한국인들은 대개 불행하고 비극적인 삶을 살고 있고, 양부모는 이들을 온갖 방법으로 학대한다. 해외입양인들은 한국인의 외모를 가졌기 때문에 인종주의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입양 가족과 입양 국가, 그리고 한국 및 동아시아 이민, 디아스포라 사회에서도 적응을 못 했거나 배척당하며 따돌림당한다고 표현된다. 그러면서도 절실하게 한국의 가족과 어머니를 만나기를 열망하고, 다시금, 한국, 한국 문화, 한국 사람들과 연계되기를 바라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대중문화 속 입양인들의 모습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무절제하게 생산되고 소비된다. 모든 입양인의 운명을 하나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동일화하고 있다.


 

입양특례법의 개정은 그동안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 없이 이루어졌던 입양절차와 사후 관리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저자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한국의 입양이 가지는 부정적이고 치욕적인 이미지를 없애려는 국내의 과제에 잘 들어맞는 질문, 즉 한국은 왜 OECD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여전히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을 보내는가에 관한 답이라는 지극히 협소한 민족주의적, 법적 접근의 산물에 불과할 수 있다. 저자는 해외입양은 중단되어야 하고 과거의 청산, 즉 진실을 규명하고 사과와 용서, 화해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법제의 일부 변화에 대해서도 강한 저항이 일어난다. 기존에 탈법적, 불법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해외입양의 문제점을 개정 입양특례법에 뒤집어씌우는 방식으로, 그리고 개정 입양특례법의 내용조차 왜곡시키는 방식으로. 해외입양의 역사, 그 정치·경제적 배경, 해외입양인의 겪어야 했던 현지와 국내에서의 여러 상황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찾아보기 어렵다.       


 

과연 어떠한 상황이 부모가 자녀를 버리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부모가 자녀를 기르는 것이 정신적으로 혹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을 이 사회는 버려두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가? 그러한 사회적 방치가 입양으로 치유될 수 있는가? 아동 보호의 최후의 보루처럼 보도되고 있는 “베이비 박스”의 묻지마식 유아 유기의 조장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입양절차가 까다로워져서 아이들이 버려진다.”는 주장이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사회, 나는 이러한 사회가 너무 두렵다.      



 

글_황필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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