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 권하는 책] 이제는 당신이 수신할 차례 –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새롭고 특별한 인권 책이 나왔다. 인권에 대한 개설서나 인권사상사, 국제인권문서나 특별한 주제의 인권 현실을 다룬 책들은 많았지만, 비혼모, 성전환자, 결혼이주여성, 게이, 이주노동자, 장애를 가진 여성, HIV 감염인, 10대 레즈비언, 비정규직 노동자가 겪는 차별 이야기를 묶은 책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내용도 새롭지만(이들의 진솔한 속 이야기를 쉽게 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보다 더 새롭고 그래서 더욱 특별한 것은 이 책이 취하고 있는 구성과 형식이다. 추천 글, 내는 글, 마지막 장을 뺀 책의 몸통은 모두 아홉 장인데, 『차별받는 당사자의 ‘어떤’ 이야기 – 이야기를 글로 쓴 사람의 짧은 후기와 사오십 개의 열쇳말 – 당사자의 이야기에 대한 활동가의 수신확인의 글』로 구성되어 있어, 읽는 이가 각 장에서 다루는 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느끼고, 알고, 생각하게 해 준다.
이 중에서도 당사자의 ‘어떤’ 이야기를 담은 부분에 담긴 엮은이들의 발상과 노고는 특히 기록할 만하다. 당사자의 이야기는 여러 활동가들의 협업으로 쓰였다. 차별받는 당사자를 직접 인터뷰한 사람, 인터뷰를 녹취하고 녹취록을 정리한 사람, 녹취록을 기초로 ‘이야기’를 ‘쓴’ 사람이 모두 각기 다른데, 인터뷰 녹취록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는 단순한 ‘보고’나 ‘인터뷰’의 형식이 아니라 다양한 형식을 취한다. 이 책을 기획한 2011년 인권운동사랑방의 ‘변두리스토리 프로젝트’팀이 세운 최초의 계획(한국사회에서 차별받고 있는 인터뷰이를 섭외하고 이들의 이야기로 생애구술사 작업을 하면서 ‘복합차별 당사자의 차별사례를 생애주기에 기반을 두어 살펴보고 보고서를 작성하자’)이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이기도 하다.
활동가가 재구성한 ‘이야기’의 형식은, 비혼모로 대학을 다니면서 사회복지 수업시간에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들에게 발표하는 글, 성전환자가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에서 법원장에게 최종 변론하는 글, 한국인 남편과 이혼한 후 남아프리카공화국인과 재혼하고 한국에서 살아가는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은 식이다. 때로 1인칭 에세이로, 기사로, 당사자의 대화만 들리는 녹취록으로, 다양한 형식을 취하는 이야기들은 인터뷰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조금씩 넘나들면서 이들의 경험을 우리가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활동가들이 차별을 겪은 사람이 인터뷰에서 들려준 삶의 이야기를 다시 옮기면서, 이들의 느낌과 삶의 맥락을 삭제하지 않고, 선정성과 불편함과 또 다른 차별을 만들지 않고, 이야기를 처음 들은 사람이 들었던 바로 그 목소리를 전한다는, ‘재현의 윤리’를 어기지 않으면서 당사자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 어려운 작업은, 활동가들의 감수성과 운동경험과 이해 덕에 충분히 성공한 것 같다. 활동가들의 작업에 힘입어 우리는 ‘차별받고 있다’는 한 마디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이들의 삶에 아주 조금은 다가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차별의 상황에 대처하는 이들의 자세는 모두 조금씩 다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각기 서 있는 자리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 글이 비혼모인 승민, 성전환자인 혜숙, 이주여성인 수민, 게이인 정현, 10대 레즈비언인 서윤, 가벼운 시각장애를 가진 여성 이숙, HIV 감염인인 민우, 이주민인 타파, 노동자인 명희와 영석.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 활동가들에게 소략한 수신확인 문서가 되기를 바라며, 당신에게 이 책을 건넨다. 이제 당신이 이 특별한 이야기들을 수신할 차례다.
글_ 차혜령 변호사
*이 책을 기획하고 엮은 인권운동사랑방은 출간안내문에서 이 책의 ‘이어말하기’를 제안하며 다음과 같은 수신인의 행동지령(?)을 내리고 있어 소개합니다.
수신확인한 당신의 한 걸음
친구에게 책을 읽어보라고 하기
책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친구에게 책 선물하기
여럿이 모여 책을 읽고 이야기나누는 자리 만들기
SNS에서 책 읽은 티 내기
인터넷에서 책 참 좋다고 소문 내기
동네 도서관에 책 신청하기
이야기 주인공들에 대한 공감백배 표현하기
그리고 내게 왔던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기
공감지기
- 이전글 : [공변의 변] 미혼모에게 입양을 권하는 사회
- 다음글 : [공감이 권하는 책]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