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 달려가다 – 사형폐지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탐방]
사형폐지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평화로 생명을 노래하다’
지난 10년동안 사형이 집행된 적이 없는 ‘실질적사형폐지국’. 하지만 사형이 여전히 법적으로는 존재하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 사형이라는 제도에 있어 모순적 기로에 놓여 있는 대한민국에 평화와 생명을 함께 노래하는 생명 중심의 문화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작은 노력들은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지난 2008년 6월 16일 명동성당 꼬스트 홀에서 사형제 폐지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평화로 생명을 노래하다’ 행사가 열렸다. 사형제 폐지와 생명의 문화를 위한 아름다운 시와 노래들을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고자 공감 홍보팀이 달려가 보았다.
행사가 시작되기 30분 전인 늦은 6시 반 즈음, 아직 행사 시작까지 조금은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로 명동성당 보스꼬홀의 로비가 가득 차 있었다. 사형제라는 죽음의 문화에 반대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 하나로도 이 작은 행사에 커다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시작 전부터 많은 취재진들에게 인터뷰를 받고 있던 이영우 토마스신부님(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 위원장)께 공감 취재진 역시 사형제에 관련한 말씀을 청해 보았다. 이 신부님은 “사형제 폐지의 홍보 수단으로 이 행사를 기획했지만, 사형제에 대한 사건 보도 보다는 생명 경시 사상이라는 바탕 하에서 사형제가 만들어 졌다는 인식 하에, 더 큰 생명 중심의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시와 낭송의 밤을 준비했다.”고 말하며, “생명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통해 생명에 대한 소중함과 그 공감대 형성이 이뤄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 신부님은 “18대 국회가 곧 시작 되면, 사형제 폐지 법안이 다시 한 번 논의의 중심이 되고, 당과 이익을 떠나서 사형제 폐지를 위해서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자 명동성당 꼬스트홀 내부의 500여 석이 가득 찼고, 많은 취재진들 역시 행사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생명과 평화의 외침을 고스란히 담아 가고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행사의 사회를 맡은 배우 권해효씨가 올라오고, 본격적인 행사가 진행되었다. 사형제 폐지를 위한 여러 모임에 참석하면서 느꼈던 경험담들과 함께 생명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임을 다시 한 번 일깨우며 행사의 시작을 알리던 권해효씨의 모습에서 무엇보다 이 행사를 기획하고 또 만들어 나간 모든 사람들의 생명에 대한 열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행사의 첫 번째 무대에는 행위예술가 다음님의 그림자놀이가 있었다. 큰 붓을 이용하여 강렬하게 서막을 연 그는, 스크린과 그림자를 이용해 생명과 자연, 그리고 우리의 삶의 소중함에 대한 깨우침을 예술로 승화하여 전달해 주었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사형이라는 제도, 즉 생명에 정면으로 반하는 제도에 대한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느낌으로 전해질 수 있었기에 무엇보다도 뜻 깊은 시작이 되었다.
다음으로는 배우 정수영씨가 나와 자신의 할아버지인 정호승 시인의 ‘가을에’를 낭독했다. 언제나 사람을 사랑하고 따뜻한 마음을 간직하라고 가르치신 할아버지의 휴머니즘에 대한 기억을 함께 나누며, 그녀는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것을 다시 한 번 당부했다. 정수영씨는 시 낭독 이후에 이해인 수녀님의 시에 노래를 덧입힌 ‘사랑한다는 말은’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공연을 마쳤다.
행사 중에 사회자 권해효씨는 많은 뜻깊은 말들을 전해주었다. 지난해 통계로 총 64명의 사형수가 있었고 그 중에서 6명은 무기수로 전환되었지만 최종적으로 사수의 이름을 달고 있는 사람은 58명이라는 말로 운을 뗀 그는 “이 58명을 살려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있어서 어느 누구의 생명도 경시하지 않는 생명과 평화의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이 58명의 목숨 역시도 소중하다는 것”이라며 사형제의 폐지가 미시적인 관점에서의 용서를 의미하기 보다는 생명이 중시되는 인간적인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임을 역설했다.
다음으로는 시인 정희성씨께서 직접 나오셔서 ‘몽유백령도’라는 시를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고, 시와 더불어 사형수의 마지막 5분이라는 사형수가 쓴 글의 내용을 소개하는 시간으로 생명의 인사를 전해주는 시간도 나눌 수 있었다. 또, 가수 이지상씨는 “자신의 감정이나 자신의 이익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인간만이 하고 있는 해위”라고 지적하면서 “사형제 폐지는 생명 존중을 의미하며 이는 자연과 어울리면서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행사의 반 즈음이 지나간 뒤, 배우 박철민씨가 많은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등장했다. 박철민씨는 평소에 사형제도에 대해서 깊이 있는 고민을 해 본 적이 별로 없지만 이 행사를 통해서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하는 점을 다시 한 번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말하며 사형수가 보내온 편지를 읽어주었다. 이 편지는 한 사형수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자신을 언제나 묵묵히 지켜봐주고 용서하며 화해해 준 세상과 신부님, 그리고 그 외의 많은 봉사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내용을 담아 쓴 편지였다. 이 편지를 낭독하는 동안 장내에는 어느 순간 침묵이 감돌았고, 낭독이 끝난 이후에도 사형수의 반성과 회개, 그리고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여운이 끝까지 맴돌았다. 직접 사형수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변화를 체험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행사의 취지에 맞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박철민씨가 무대를 마치고 내려간 뒤, 시인이자 수도자이신 이해인 수녀님께서 자신의 시를 아름다운 노래로 불러줄 가수 김정식씨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해인 수녀님께서는 직접 사형수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느꼈던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 그리고 그와 나누었던 인간적인 신뢰가 담긴 서간들에 대한 기억을 소개해 주셨다. 그가 형 집행을 당하고 결국 죽었을 때, 가슴이 미어지는 안타까움을 느꼈다는 말씀을 전하시며, 생명의 소중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며 이를 침해하는 사형제라는 악습을 실질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법적인 면에서도 없앨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러한 당부의 말씀에 이어 ‘장미의 기도’로 대표되는 생명과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시들과 함께 앞서 언급하신 사형수가 보내온 편지를 직접 낭독해주는 시간을 가졌다. 하나하나의 편지 속에서 이미 사형 집행을 통해 죽은 그의 진심과 회개를 고스란히 전해 받을 수 있었고, 이해인 수녀님의 진중한 얼굴에서 다시 한 번 사형제 폐지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행사의 마지막으로는 ‘너를 사랑해’라는 아름다운 가사의 노래로 우리에게 친숙한 가수 한동준씨가 나와서 모든 생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나눔의 자세에 대해 언급하며 그의 대표곡들을 불러 주는 순서가 진행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사랑의 마음을 가득 담아 갈 수 있었던 시간 이었다.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에서 주최한 이번 행사를 통해서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생명 중심의 문화에 반하는 사형제 폐지를 위한 목소리들이 어떤 바람 앞에서도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든든하게 버티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모든 생명을 사랑하라는,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사형제로 사라져간 생명들을 기억하며 다시는 이러한 증오의 굴레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작은 다짐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생명의 물결이 꺼지지 않고 이어져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취재를 마무리 했다.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 소위원회는…
복음적 관점에서 한국의 사회 현실을 연구, 검토하여 하느님 백성에게 사회 안에서 시대적 사명을 자각시키고, 그리스도교적 증거의 생활을 격려, 권장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 사회 구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정의평화위원회 내의 소 위원회로, 사형제도의 법적 폐지를 위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
*천주교 인권위원회는…
인간 존엄성과 보편적 진리 구현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로, 매주 월요일 인권 법률 상담 활동을 비롯하여 인권 침해 사안에 대한 조사 및 대책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으며, 다양한 인권 단체들과의 연대를 통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천주교 인권 단체.
주소 100-809 서울시 중구 명동 2가 1-19 천주교인권위원회 / 전화 02-777-06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