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칼럼] 그럴싸한 것은 기만이다 – 의약품을 환자에게!!
[공감칼럼]
그럴싸한 것은 기만이다 – 의약품을 환자에게!!
나는 약을 조제하고 파는 일을 하고 있다. 약을 손바닥위에 놓고 가만히 쳐다보자면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약 한 알에 응축되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인다. 아주 종종 약국밖에서 해결되어야 할 것 같은 일들이 약국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대표적인 예는 돈이 없고 노동강도가 심한 이들이 박카스와 진통제를 많이 찾는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빈곤해결과 안정적인 일자리와 충분한 쉼인데 이것이 보장되지 않으니까 무한경쟁속에서 살아남기위해 카페인, 비타민, 진통제 등으로 아등바등 버티기를 한다. 한편 체지방의 비중과 상관없이 그것도 100%본인부담하에 비만약을 구입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내가 볼 때는 두 가지 경우 모두 엉뚱한 약을 먹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환자들에게 필요한 약은 환자가 처한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이 시대의 환자가 처한 조건은 엉뚱한 약이든 건강상의 필요한 약이든 점점 약을 많이 사용하게 만든다. 환자는 자신에게 어떤 약이 필요한지 결정할 권한도 통제할 능력도 주어지지 않은 위치에 있다.
두 번째 예는 약이 상품으로 통용되고 있는 현실과는 달리 환자들은 약값에 많은 거부감을 갖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일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는 돈1만원 들고 나가봤자 장바구니에 담을게 없다는 서민들의 실물경제 그 자체 때문인 것 같다. 감기 때문에 진찰받고 약 타서 오면 돈1만원이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모든 것을 돈을 주고 사야한다지만 약마저 돈을 주고 사야 되냐는 불만의 표현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약은 무엇인가와 관련해서는 환경파괴, 전쟁, 빈곤, 노동착취, 광우병 위험 쇠고기를 강제로 먹이려는 2mb, 외모지상주의 등 이 글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주제이다. 이 글에서는 환자가 약에 접근하는데 일차적으로 부딪히는 약값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최근에 백혈병치료제 ‘스프라이셀’의 약값이 결정되었다. 스프라이셀을 판매하는 제약회사 BMS(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는 1년치 약값으로 5000만원을 요구했다. 5000만원이 누구에게는 전세값이고, 누구에게는 5~10년간 허리 졸라매가며 저축한 돈일 것이고, 누구에게는 평생 손에 쥐어보지 못한 돈일 것이다.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복지부)는 5000만원을 두고 10%를 인하할지 20%를 인하할지를 저울질 하였다. 5000만원이든 4000만원이든 환자들과 건강보험이 감당할 수 없는 ‘살인적’ 가격이라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환자생명을 놓고 4000만원, 5000만원 판돈을 거는 노름판이나 다름없는 약값결정과정에 대해 환자들이 ‘어떤 기준으로 약값을 정하는지’ 묻자 돌아온 답은 ‘약값은 오직 신(神)만이 알 뿐’이라는 것. 스프라이셀 약값은 결국 연간 4000만원으로 결정되었다. BMS는 그 가격이면 공급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흘리며 큰 손해를 본 듯이 오버액션을 하였고, 복지부가 자존심을 세운 모양새인 마냥 짜고 치는 고스톱을 연출했다. 그러나 약제급여조정위원장이 밝혔듯이 복지부가 알아서 ‘제약사가 공급거부를 하지 않을 수준을 고려해 결정’해준 것뿐이다. 약값을 내리라는 환자들의 요구에 대해 복지부는 보험적용되어 환자의 부담은 적지 않냐며 약값을 결정할 권리는 환자와는 무관하다고 말한다. 건강보험재정은 하늘에서 떨어지나?
같은 시기에 에이즈치료제 ‘푸제온’에 대한 약가협상이 벌어졌다. 푸제온은 2004년에 연간 1800만원으로 보험등재 되었다. 하지만 푸제온을 판매하는 로슈는 연간 3200만원을 요구하며 공급하지 않았다. 로슈는 다시 연간 2200만원으로 약값을 정해달라고 신청했다. 2200만원은 실질적 약가인하가 아니라 환율변동에 따른 것일 뿐. 건강보험공단과 로슈는 푸제온에 대한 약가협상을 벌였으나 약값을 올려줄 이유가 없다는 결론이 났다. 환자들은 현재 보험약값인 연간 1인당 1800만원도 한국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고 에이즈치료에 대한 지원이 불안정하고 미흡하여 지속적인 에이즈치료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 2004년 이후 3년이 넘게 치료받을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점을 이유로 ‘약가인하, 즉각공급’을 요구하고 있다. 로슈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의약품 공급에 관한 문제는 해당 국가 국민이 해당 의약품을 구매할 능력이 되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며 “실제 푸제온의 약값이 비싸다는 점에서, 한국뿐만 아니라 경제수준이 낮은 동남아지역 국가에는 푸제온 공급이 안 되고 있다. 푸제온이 한국 환자들이 구매가능한 제품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즉 로슈는 구매력이 없는 환자는 푸제온을 이용할 자격이 없다며 공급을 하지 않고 있다. 약을 먹고 건강할 ‘권리’를 ‘자격’으로 둔갑시키는 제약회사에 대해 복지부는 사기업의 ‘상품’을 강제로 공급시키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로슈를 ‘구슬리기 위해’ 협상을 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표면적으로는 1)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을 선별하여 보험적용여부를 결정한 후 2)건강보험공단이 제약회사와 약가협상을 하여 적정한 약값을 결정하면 3)모두에게 평등하게 공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럴싸해 보인다. 그러나 푸제온과 스프라이셀의 사례가 보여주듯 3)의 과정을 보장하고 있지 못하다. 공급방안이 복지부에겐 없고 제약회사만 공급열쇠를 쥐고 있을 경우 ‘공급’의 문제는 앞의 1)과 2)의 과정에 모두 불리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제 약가협상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건강보험공단 실무자들이 제약회사가 요구한 약가에 대해 인하의 필요성을 제기할 때 제약회사가 공급을 거부할 경우를 우려하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며, 스프라이셀의 경우 역시 BMS가 공급을 거부할까봐 연간 4000만원의 비용이 비싸다는걸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현 제도상에서는 우리나라 환자의 수가 적거나 비싼 약값을 지불할 수 없는 경우 제약회사는 아예 의약품 허가신청을 하지 않는다. 제약회사들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대륙을 아예 제켜 버리듯이. 즉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약품 선별 폭은 제약회사가 정한 범위내로 한정된다. 즉, 한국정부는 제약회사가 약을 한국에 팔 마음이 생기도록 시장성을 충족시켜주는 절차를 그럴싸하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어떤 약을 얼마에 공급할지를 제약회사가 정한 범위내에서 선택하는 방식은 건강보험재정을 위협하는 순간을 불러왔을 뿐 아니라 제약회사의 횡포앞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복지부는 제약회사가 공급을 거부한 사례가 많지 않다는 얘기를 반복하며 의약품관련 법과 제도에 내재되어 있는 결함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푸제온, 스프라이셀의 사례는 ‘특별’한 예가 아니라 그 결함에 따른 필연적 결과이자 대표적 사례이다.
의약품이 환자에게 오기까지는 크게 연구.개발과정, 특허등록과정, 판매승인과정을 거치는데 이 모든 과정에서 제약회사는 압도적인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다. 제약회사는 돈이 안되는 약은 개발하지 않는다. 돈이 될 만한 신약을 더 빨리, 더 많은 시장에 팔 수 있도록 판매승인을 위한 절차를 간소화하도록 요구한다. 특허로 보장되는 독점때문에 이 세상에서 유일해진 약의 가격은 천문학적이다. 컴퓨터기업 IBM과 제약기업 화이자가 나서서 전 지구적으로 특허지상주의를 만들었지만 법적으로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환자의 건강권을 확보하기위해 브라질, 태국 등에서는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를 발동하여 값싼 복제약(generic)을 공급하기도 하고, 국영제약회사를 통해 자체연구, 생산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정부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신성장동력사업으로서 의료를 돈벌이수단으로 만들고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침울해하지 않기로 했다. 살아야 하니까. 스프라이셀과 글리벡에 대한 약가인하신청을 냈다. BMS가 5000만원을 요구했던 이유는 최초의 먹는 백혈병치료제인 글리벡의 가격에 빗대어 계산했기 때문이다. 노바티스가 요구했던 글리벡의 가격은 25000원, 1년에 3600~9000만원. 백혈병환자들이 1년 반 동안 글리벡 약값인하를 요구하면서 싸웠지만 2003년에 복지부는 23000원으로 결정했다. 1년에 3360~8400만원. 글리벡의 1알의 생산 단가는 최대 760원밖에 들지 않는다. 1알 약값 23000원 중 22000원이 순수익이다. 노바티스는 글리벡을 출시한지 1년 8개월만에 그 어마어마하다는 연구개발비를 다 회수했다. 그래서 우리는 글리벡을 760원으로 인하할 것을 복지부에 신청했다. 그리고 스프라이셀 역시 생산 단가를 추정해보니 1890원. 즉 스프라이셀 1정 가격 55000원 중 53,000원의 순익을 BMS에게 보장해주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프라이셀의 연구개발비를 생산단가의 10배만큼 후하게 쳐주고 18900원으로 인하할 것을 복지부에 신청했다.
이 참담함과 침울함을 넘기 위해 여러분께 드리는 첫 번째 부탁은 아래의 약가song를 기억하고 제약회사와 정부가 어떻게 하는지 널리 널리 알려달라는 것이다. 제약회사가 좋은 약을 빨리 개발해주기를 마냥 기대하는 것은 광우병위험 쇠고기를 자율규제에 맡기면 안전할 것이라고 믿는 것과 같다.
약값 내리라면 씹으면 되고, 기준 밝히라면 신(神) 찾으면 되고
5000만원이 비싸다고 한다면 4000만원으로 하면 되고
그래도 환자들이 난리칠 때면 아예 공급중단하면 되고
내 맘대로 하면 되고 제약회사 마음대로
공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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