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칼럼] 아동성폭력범죄의 가해자처벌과 피해자보호
[공익칼럼]
아동성폭력범죄의 가해자처벌과 피해자보호
강은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사회학박사)
성폭력범죄는 법제도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차원에서도 범죄예방, 재범방지 및 피해자보호에 신중하고도 효과적인 대책이 요청되는 형사정책적 문제이다. 특히 아동 성폭력은 그 근본적인 기저에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권력관계가 내재해 있다는 점에서는 성인에 대한 성폭력과 유사하지만, 피해자인 아동이 신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자기 방어능력이 없고, 발달적 측면에서 취약하다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사회적 관심과 형사사법적 대책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에서 아동 성폭력에 관한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라 할 수 있으며, 특히 최근 들어 2006년 2월 용산 허양 사건과 2008년 혜진, 예슬양 사건 등이 알려지면서 아동성폭력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이 과정에서 논의된 아동성폭력 관련대책은 주로 ‘아동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처벌강화와 재범억제방안’에 초점을 두고 있다. 법무부가 최근 발표한 ‘혜진예슬법’에서는 성폭력특별법의 개정을 통해 아동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가석방, 집행유예선고 금지와 아동강간살해범에 대한 사형구형 등의 처벌강화방안이 마련되었다. 또한 재범억제방안으로는 성범죄자 등록법(sex offender registration laws), 성범죄자 고지법(sex offender notification laws), 전자감시제도(electronïc monitoring system), 거세법(castration laws), 성범죄자 치료 등 다양한 제도들이 거론된 바 있고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도 신상공개제도나 전자감시, 아동성폭력신고제도 등의 일부 제도는 이미 도입되어 실행되고 있거나 시범실시될 예정이고, 성범죄자치료감호제도 등 일부 제도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서구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논의보다 더 나아가 아동성폭력범죄자에 대해 보다 강도 높은 재범억제방안들을 도입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폭력적성범죄자에관한법률(Sexually violent predator laws)을 제정하여 형기를 마치고 교도소에서 출소한 성범죄자들을 치료시설에 강제수용하여 완치될 때까지 격리시키도록 하는가 하면, 플로리다 등 일부 주에서는 기존의 전자감시법을 보다 강화하여 특정 아동성범죄자들은 출소 후에도 평생 전자위치추적장치를 부착하도록 하는 ‘제시카 런드포드법(Jessica Lunford Act)’을 통과시킨바 있고, 전자감시와 함께 아동성범죄자의 주거지 제한 및 특정지역에 대한 접근제한명령을 병과하기도 한다.
신상공개제도나 전자감시제도, 거세법 등 재범억제방안들이 이중처벌 문제나 가해자 인권침해의 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제도인 것은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실시해온 제도적 장치들이 우리의 기대만큼 재범억제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 바도 없다. 그럼에도 이같은 제도들을 도입하는 것은 아동성범죄자들이 성폭력범죄 전문화 경향이 강해 동종재범 가능성이 높으며, 또한 그동안 엄청난 자원을 투자하여 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해온 여러 치료 재활프로그램들의 효과가 미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검토하고 있는 여러 재범억제방안들은 성폭력범죄자의 인권과 피해아동의 인권 중 최종적으로 어느 편에 무게를 둘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선택의 결과이며, 아동성폭력문제를 근절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가해자 인권을 담보로 선택한 이중삼중의 사회안전장치라 할 수 있다.
대검찰청 공식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한 해동안 형사사법기관에 인지된 성폭력범죄는 2006년의 경우 약 13,500건에 이르며 이 중 아동 성폭력범죄는 932건이다. 또한 신고된 성폭력사건 중 기소율은 약50%이다. 그러나 성폭력범죄는 그 특성상 다른 어느 범죄보다 신고율이 낮아 암수범죄가 많은 범죄유형이다. 이를 입증하듯 2007년 여성부가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 성폭력 피해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폭력범죄 발생율은 대검찰청의 공식범죄통계보다 약168배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168건의 성폭력 사건 중 한 건만이 신고가 된다면, 그리고 신고된 사건 중 절반 정도만이 기소된다면 유죄가 입증된 가해자를 엄벌하는 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아동성폭력 범죄의 신고율이 다른 성폭력범죄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낮고 유죄입증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같은 의문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아동성폭력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찾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이미 체포된 가해자에 대한 처벌강화나 재범억제에만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침해를 불사하면서까지 강력한 가해자처벌법을 마련한다 해도 아동성폭력 사건의 신고가 이루어지지 않고, 신고된 사건의 유죄입증이 용이하지 않다면 아동성폭력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아동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의 확실성을 증가시켜야만 처벌법과 제도 역시 범죄 억제효과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반 시민들, 특히 최근 유행하고 있는 ÇSÏ류의 과학수사 드라마에 익숙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성폭력사건은 다른 어느 범죄보다 유죄입증이 어려운 범죄이며, 이는 아동성폭력범죄 역시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아동성폭력 사건은 법의학적 증거에 기반하여 수사되기 보다는 아동의 증언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나마 확보가능한 증거도 늦은 신고나 부모의 무지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아동성폭력 사건의 약30%는 가정내에서 이루어지는 친족성폭력이며 이 경우 성폭력 사실의 발견이나 신고 가능성을 더욱 낮고, 친권제한 등의 문제로 피해아동 사후보호에 어려움이 많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아동성폭력범죄 피의자의 경우에는 수사상 인권보장 및 적법절차 원칙, 무죄추정의 원칙 등의 예외로 인정해야한다는 논의까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가해자 처벌을 통한 재범억제와 피해자 보호지원에 대한 균형적인 정책시각이라고 보여진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엄벌정책을 도입하는 논의는 접고, 이미 도입한 가해자 처벌 및 재범억제방안의 내실을 기하면서 더불어 피해아동을 보호지원하고 숨은 범죄를 드러내어 처벌의 확실성을 높이는 방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여야 한다. 또한 이와 함께 가해자나 피해자에 대한 대책뿐 아니라 지역 사회내에서 전체 아동의 일상적인 활동, 즉 등하교, 학교생활, 가정생활 등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는 방안 역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