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통신] 공감이 힘이다 – 박래군(인권중심 사람 소장)
ㅁ사진출처_코리아넷(www.korea.net)
같이 아파하는 것, 같이 슬퍼하는 것, 같이 분노하는 것…. 이런 걸 공감이라고 하는 것 같다.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는 살벌한 사회다. 옆에서 우는데 웃고, 분노하는데 왜 그러냐고 묻는 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사회가 그랬다. 옆에서 아프다고 울어도 애써 외면하고, 옆 사람은 분노하는데 그걸 피해왔다. 그러니까 결국 혼자서 아파하고, 울고, 그렇게 분노하다가 자살의 길을 갔던 사람들이 많지 않았겠는가.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사는 걸 걱정해야 하고, 일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왔다. 그러니까 자살률 세계 1위를 오래도록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고통은 철저하게 ‘타인의 고통’이었을 뿐이고, 나만 그런 고통의 나락에 빠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경쟁하며 살았다. 먹고 살기 위한 짓이라면 모든 게 용서가 되었던 그런 사회가 세월호와 같은 참사들이 이어지는 ‘참사공화국’을 만들었다.
그런데 같이 울 줄 모르던 사람들이, 같이 분노하는 건 잊어버린 양 하던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를 보고 같이 아파하고, 슬퍼하고, 분노했다. 갑자기 터진 버린 공감…이 공감대가 아주 넓게, 그리고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다. 그러다가 한편에서는 그만 울자고 하자, 이제 그만큼 울었으니 됐다고도 한다. 가족을 잃고 우는 유족들에게 상처를 헤집는 막말을 해대는 족속들도 나타났다. 하지만 그들은 소수이고, 아직은 같이 아파하고, 울고, 분노하는 사람들의 사회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공감사회가 되었다. 갑자기 잃었던 능력인 공감능력이 되살아났다. 신기할 정도다. 그리고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는 점도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는 너무도 소중한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이 사람으로 보인다. 저 사람도 나와 같이 울 줄 아는 사람이다. 저 사람도 나의 일에 자기 일처럼 분노한다. 그리고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다양한 행동들을 이어 간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촛불 행동에서, 그리고 지역과 현장에서 이어지는 자발적인 힘들이 세월호 참사 석 달째 이어지고 있다.
▲ 시청광장 세월호 추모. 사진출처_참여연대
글_ 박래군(인권중심 사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