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통신] 국민을 상대로「복지와의 전쟁」벌이는 정부 –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것은 단연코 전쟁이다. 그것도 아주 불온한…. 이 정부가 국민의 삶을 걸고 벌이는 복지와의 전쟁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담당 지역 내의 주민들을 위해 없는 재정을 아껴 그나마 마련한 복지사업조차도 이 정부는 복지의 중복이라는 이유로 혹은 포퓰리즘이라는 이유로 가로막고 나섰다.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막중한 책무를 지고 있는 바로 그 정부가, 지방자치의 헌법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며 지방정부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고 지원하여야 할 바로 그 정부가 사회보장기본법이나 교부금이니 하는 몇 안 되는 권력을 빌미 삼아 국민과 지방자치정부를 대상으로 복지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주민자치의 현장인 지방자치단체들에 「지방자치단체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정비 추진방안」이라는 긴 이름의 지침을 보냈다. 지방자치단체가 실시하는 이런 저런 복지사업이 중앙정부 등이 하고 있는 복지사업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일제 정비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이다. 그 대상사업은 무려 1,496개에 이르며 그에 충당되는 예산은 9,997억 원으로 거의 1조 원에 육박한다. 현재 지방자치단체가 실시하고 있는 복지사업 5,981개 중 1/4에 해당하는 것이며 예산규모로만 따져 보아도 15.4%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복지사업이 그 정비대상이 되어 존폐의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규모보다는 그 내용이다. 국무총리 산하 사회보장위원회의 의결에 따라 시행되는 이 정비지침은 대부분 노인이나 장애인, 저소득자 등 사회적·경제적 취약계층을 위한 사업들을 표적으로 한다. 예컨대 정비 대상 사업 중 노인을 위한 복지사업은 총 230개, 1172억 원에 달하며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사업의 경우 역시 230개에 1813억 원에 이른다. 저소득자를 대상으로 한 경우는 이의 두 배에 달하여 466개 사업 2627억 원이 된다. 그뿐 아니다. 이런 취약계층을 돌보고 지원하며 그들이 생활을 의지할 수 있는 복지시설의 경우에도 총 160개 사업 2536억 원이 사라져 버리게 될 위험에 처해 있다.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자. 혼자서는 생활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의 경우 24시간 활동보조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이 박절한 정부는 예산 운운하며 겨우 13시간의 활동보조만을 제공할 뿐이다. 이동이나 세면, 신변처리 등을 혼자서 할 수 없는 이 중증장애인들을 하루 24시간 중 나머지 11시간 동안 아무런 보조도 받지 못하는 최악의 생활환경에 내팽개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활동보조인이 없을 때 화재와 같은 사고에 결정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실제 2012년에는 불과 10분 만에 진화된 작은 화재에도 중증장애인 한 분이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
이에 지방자치단체들은 나름의 예산을 투여하여 중증장애인들에게 정부가 하지 않는 그 결여의 시간 동안 추가의 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예컨대, 인천광역시의 경우 월 80시간의 활동보조 서비스를 별도로 제공하여 적으나마 나름의 편의를 마련해 왔다. 그리고 이런 활동보조 서비스가 전국적으로는 총 36개 사업에 그 예산은 744억 원에 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 정비지침은 이런 활동보조 서비스가 그 알량한, 13시간에 불과한 정부사업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없애라는 성화가 불길 같다. 중증장애인에 대해 24시간의 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은 이미 거품이 되어 날아가 버린 지 오래 되었다. 여기에 무슨 억하심정인지 이 박근혜 정부는 지방자치단체가 하던 일까지 못 하게 가로막고 나선다.
또 하나 보자.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이 가장 열등한 우리나라에서 노인복지는 무엇보다 중차대한 정책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이런 당위를 정면에서 거부한다. 지난 대선에서 모든 노인에게 기초노령연금 20만 원을 제공하겠다던 굳은 약속은 현 정부를 출범할 수 있게 하였던 득표원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고령에서 오는 불편함에다 만성질환에 시달리게 되는 노인들에 있어서는 그 20만 원이라는 것이 노인의 삶의 질은커녕 가장 기초적인 생계조차도 확보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금액임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그런데도 예산 타령이 버릇이 된 이 정부는 그조차도 삭감하여 국민연금과 연계하니 어쩌니 하면서 현저히 축소해 버렸다. 여기에 최근 증가일로에 있는 가족해체의 조짐은 이 노인들에게 손자녀 양육의 책임까지 떠맡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난다. 이른바 조손가정의 애로는 이런 척박한 복지정책으로는 도저히 감당 되지 않는 하나의 텅 빈 공간이 되고 있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가 이런저런 명목으로 이들에게 지급하는 3-5만 원 정도의 수당이라든가, 혹은 지역 아동센터와 같은 쉼터, 돌봄터의 존재는 비록 그 절대량은 보잘것없다 하더라도 이들의 생활에서는 적지 않은 보탬이 된다. 취약한 환경에 처한 노인들에게는 생활용품을 구매하거나 의약품을 살 수 있는 자원이 되며, 조손가정에는 학용품을 구매하고 문화활동비나 정서교육비를 충당할 수 있는 큰 금액으로 다가간다. 지역 아동센터 역시 마찬가지다. 조손가정이나 취약계층의 가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양육의 어려움을 그나마 효과적으로 보완해주는 중요한 공간이 되어 있다.
그런데도 저 고약한 정비지침은 지방자치단체의 이런 복지지원사무들을 내칠 것을 명한다. 그뿐 아니다. 정비지침의 칼날은 경제성장의 소외지역으로 내몰린 저소득층 사람들에 대한 복지정책 또한 겨냥한다. 그들에게 주어졌던 건강보험료지원금이라든지, 월동난방비지원, 노숙인 지원, 소년소녀가장 학원비 지원, 아동복지시설 간식비 지원 등등 너무도 절실한 생존의 토대들을 하나같이 정비대상으로 삼아 없애고자 하는 것이다. 요컨대, 이 정비지침은 노인은 물론, 조손가정이나 취약계층의 아동들, 저소득층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봉착하게 되는 생존 그 자체의 문제들을 제대로 치유해내기는커녕, 그나마 쥐꼬리만큼 부가되는 복지조치조차도 아예 축소하고 훼방하고 폐지하지 못해 야단인 셈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갖지 못한 모든 사람은 벌거벗긴 채로 저 황량한 벌판에 내던져진다.
지난 대통령선거를 지배했던 최대의 이슈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라는 정책의제였다. 여야 간에 구체적인 내용에는 차이가 있을지나, 복지국가라는 것이 이 시대의 당면과제이자 대한민국이라는 한 국가의 최우선적 지향점임은 모든 국민과 더불어 이 정부가 명확히 확인하고 또 굳게 다짐한 셈이다. 그러나 이 정비지침은 이런 시대적 당위를 정면에서 거스른다. 아니, 그나마 OECD 최하위권 수준에 머무르던 복지마저도 줄이지 못해 안달이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장애인활동보조를 축소하고, 최악으로 몰려 인간다운 삶이 위협받는 실정에도 장수수당, 월동난방지원, 건강보험료지원 등의 복지조치들을 빼앗아버린다. 올해 초,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후손들에게 빚을 넘기지 않으려면 지금 허리띠를 졸라매는 게 먼저”라고 했다지만, 이 정비지침은 그 졸라맬 허리띠까지도 빼앗아 버리는 정책, 넘겨주는 빚을 받을 후손조차도 없애버릴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벼룩의 간”이라는 말은 강자의 폭력에 침탈당하는 약자의 호구수단을 일컫는다. 너무도 작아서 보이지도 않는 이 “벼룩의 간”은 그럼에도 강자에게는 무한한 권력의 원천으로 포착된다.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지방의 복지사업은 그 어떤 것이 되었든 일단은 없애고 보자는 것이 현 정부의 심보이다. 마치 역사교과서의 국정화가 국민의 사고와 인식 틀을 국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고착시키듯이, 이 정비지침은 그나마 자리 잡아가는 지방자치제를 형해화하면서 모든 국민의 삶을 현 집권층의 의사에 종속시켜버린다. 지방자치가 주민과 국가(중앙정부)의 사이에서 생활정치로서의 지방정치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정비지침은 중앙정부의 권력이 국민의 생활 하나하나에 직접 파고들 수 있게끔 지방정치, 생활정치를 제거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어쩌면 나 아닌 다른 권력의 존재를 불편해하는 이 정부의 독재적 발상이 주민복지를 지향하는 지방의 생활정치까지도 무력화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비록 현 정부가 사회보장 기본법을 들이대며 혹은 그것도 모자라 지방교부세법 시행령까지도 손을 보며 지방자치와 지역 정치를 휘어잡으려 하더라도, 그래서 총선과 그 이후의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틀을 확보하려 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이 내 품는 절박성은 이를 그대로 수용하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시민사회는 이러한 음모에 대응하여 전국복지수호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는 등 강력한 저항에 나섰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 막가파식의 정부를 상대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거나 그 준비에 임하고 있다.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거스르는 정부의 횡포에 전민중이 저항하고 나서듯, 복지국가라는 시대 명령을 국부적인 정치논리로 부정하고 있는 정부의 이 오만함에 대해서도 만만찮은 항거가 조직되고 있다. “벼룩의 간”은 아주 작고 미미한 것이지만 벼룩에게는 지키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 그 자체가 된다. 그러기에 “벼룩의 간”이라는 말은 가장 강력한 저항의 명령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가렴주구가 판을 치던 그 옛날에도 그러했고, 복지를 희생양 삼아 권력의 확대재생산을 꿈꾸는 이 박근혜 정부의 현시대에도 그러하다.
그들이 자행하는 복지와의 전쟁에 과감히, 그리고 단호히 맞설 때이다.
글_한상희(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