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통신] 또 하나의 약속, 아버지의 약속 – 박진(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가 영화가 되었다. 현장 싸움을 많이 하다 보니 몇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에 출연도 했지만, 이번 영화는 극영화다. 사실을 기초로 해서 만든 논픽션 드라마다. 물론 출연도 안 하고 등장인물 역시 아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두근거렸다. 노래자랑 대회에 나간 자식을 무대 아래서 바라보며 실수는 하지 않을까 사람들한테 박수는 많이 받을 수 있을까 걱정하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러닝 타임 내내 가슴 졸이면서 영화를 봤다. 어떤 장면은 현실 그대로, 어떤 장면은 상상과 허구에 의해 잘 버무려졌다. 객관적인 눈이 아닐 테지만 영화 점수를 주라고 하면 별 다섯 개를 주고 싶다. 2월 6일 전국 개봉관에서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약속’이다. 이 글을 본 누군가 영화 예매를 눌러 주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글을 시작한다.
영화에서 유난주 노무사는 살아있는 한윤미를 만난다. 하지만 이종란 노무사(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는 실제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황유미를 만나지 못 했다. 이종란 노무사와 황상기 아버님의 인연은 황유미, 그녀가 죽은 뒤에 찾아왔다. 배우 박철민이 연기한 황상기 아버님은 유미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맨몸으로 여기저기 부딪히는 중이었다. 착한 딸 유미가 고등학교 졸업 전에 취직한 대기업에 다니다가 백혈병을 얻어, 돌아와서 죽어간 진실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백방으로 소문을 냈다. 한 인터넷 언론이 다산인권센터를 소개했다. 삼성과 싸우는 단체가 있는데, 한번 찾아가 보라는 조언을 듣고 연락해 왔다. 아버님 전화를 누가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님을 처음 만나는 곳에는 이종란 노무사와 내가 함께 나갔다. 삼성 휴대전화 위치 추적 사건, 이마트 해고 싸움, 삼성 X파일 진상 규명 투쟁마다 함께 한 이종란 노무사한테 심상치 않은 일 같으니 같이 가자고 했다.
속초에서 택시 운전하는 그는 휴가를 내서 서울로 올라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그를 만난 것은 동서울 터미널의 커피숍이었다. 영화에서 아버지 한상구는 유난주 노무사의 노무법인을 마지막 희망을 걸고 찾아온다. 그렇게 아버지 황상기도 어쩌면 마지막이었을지 모를 희망을 걸고 우리를 만나러 왔을지 모른다. 만약 그때 그의 손을 거절했더라면 어쩔 뻔했던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인권운동은 타인 삶에 선물을 주는 것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그날 동서울 터미널은 내 인생에서도 참 감사한 일이었다. 황상기를 만났고, 황유미 씨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를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커피 잔 드는 손은 떨렸고 지금처럼 여전한 속초 사투리로 말했다. “우리 유미가 삼성 기흥공장에 들어가서 일하다가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려 치료를 받다가 죽었습니다. 유미 치료하다가 집은 다 망했는데, 회사에서 온 사람은 유미 병은 회사와는 상관없는 개인질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유미 치료할 때 같은 병원에 다른 사람도 백혈병으로 치료받았는데 그 사람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했던 사람이래요. 그리고 유미랑 같이 3베이에서 일했던 이숙영 씨도 2006년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려 한 달 만에 사망했습니다.” 그는 헤어지기 전에 이런 말도 했다. “삼성에 노조만 있었어도 우리 유미가 그렇게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버지의 우직함이 그대로 드러난 마지막 대사가 이종란 노무사와 우리 마음 모두를 붙들어 맸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삼성과 싸우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 빼고는 전문지식도 없고 힘도 없었다. 오랫동안 산업재해 관련 활동을 한 사람, 의사들, 변호사들을 만났지만 승산 없는 싸움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쉽지 않은 일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처럼 다가왔다. 성벽처럼 완고한 회사보다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사람들의 패배감이 더 무서웠다. 그런데 희망은 비극적이게도 절망에서 나왔다. 유미처럼 무서운 화학물질을 다루다가 가족을 빼앗긴 사람들이 찾아오고, 백혈병과 희귀질병을 얻어 몸이 망가진 연약한 생명들의 제보가 줄을 잇기 시작했다. 제보는 죽어가거나 다친 사람들에게 증거가 되고 희망이 되었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슬픔을 만나는 일은 힘겨운 일이었다. 희생자가 늘어갈수록 회사의 악행도 늘어갔다. 유미가 일했던 기흥공장 앞에서 반올림 발족 기자회견하던 날도 회사는 기자를 사칭해서 참석자들의 얼굴을 하나씩 채증하다 적발되었다. 삼성본관 경비들은 항의하는 유가족에게 욕을 하고 린치 했고, 돌아가신 이들의 영정을 짓밟아 깨트렸다. 영화처럼 이종란 노무사는 자신의 집에서 경찰에게 연행되기도 했다. 삼성 경비 뿐만 아니라 관할 경찰서인 서초 경찰서 경찰들과 싸우는 일은 피해자 가족들과 활동가들에게 일상이었다. 경찰이 하도 유가족과 활동가들을 괴롭혀서 “삼성한테 돈 받았나 보네”라고 했다가 명예훼손으로 연행당하는 일도 있었다. 정말, 그런 일이 삼성 본관 앞에서는 늘, 일어나고 있었다. 아니 오늘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반올림은 황상기 아버지와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하고,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가며 싸웠다. 그 사이에도 사람들은 사망자로 찾아왔다.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퇴직 후 뇌종양이 걸린 이윤정 님은 행정소송 도중에 사망했다. 영화 속 배우 이경영 씨가 연기한 김교익이라는 이름의 주교철님도 기흥공장 백혈병 피해자다. 그는 산재신청 후 결과를 보지 못하고 2010년 사망했다. 그보다 한해 앞서 2009년엔 김경미 씨(29세)가 같은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박효순 님도 있었다. 박효순 님은 악성 림프종으로 2년 동안 고생하다가 2012년 2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황유미의 죽음 이후로 벌써 삼성에서만 180여 명이 넘는 피해자들이 나타났고 이미 70여 명이 죽었다. 이종란 노무사는 지금도 가끔 방에 이렇게 누워 있으면, 젊어서 돌아가신 그분들 모습이 떠오르고 용서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가 많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반도체 소녀의 죽음으로 기억하는 박지연 씨는 지금도 여전히 마음 아픈 기억이다. 삼성반도체 충남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은 지연 씨는 23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19살 여상 졸업 전에 취직했던 그녀는 몰드 공정과 피니시 공정에서 일했고 2대의 방사선 발생 장치 아래서 일했다. 검사업무를 했던 그녀는 장비가 켜진 상태에서도 많은 작업을 했었다. 아마도 그녀의 백혈병은 방사능에 많은 시간 노출된 것이 원인이리라. 일한 지 3년 만에 백혈병을 진단받고 7차례 항암치료를 받고 골수이식까지 했지만 결국 재발해 숨을 거두었다. 그렇게 수많은 소녀들이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도 모르면서 세계 일류 기업이라는 공장에서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동안, 그들의 희생이 세상을 향해 비명을 지르기 전까지 우리는 아무도 진실을 알지 못 했다. 아버지가 우리를 찾아오기 전까지는.
영화는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님이 행정소송 1심에서 승소하는 것까지 보여주며 희망을 놓지 말 것을 당부한다.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유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항소심 법정에 나가고 있으며 삼성과의 교섭에 반올림 대표로 서 있다. 이 글을 읽는 그대에게 다시 권하고 싶다, 딸과의 약속을 지키려던 한 아버지의 위대한 걸음이 지금 또 다른 희생을 막는 유일한 희망이 되고 있음을. 지금 당장 ‘또 하나의 약속’을 봐 달라, 살아있는 계란이 바위를 깨는 모습을 만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이건희가 아니라 황상기라는 한 평범한 아버지였음을 그대가 보여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