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통신] 세상의 유가족들을 생각하며 _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대통령이 “오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세상에 알리려했던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함께 기리고 싶다”며 박관현, 표정두, 조성만을 불렀다. 그리고 “1988년 ‘광주는 살아있다’고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숭실대생 박래전”을 불렀다. 5.18 37주년 기념식장에 참석했던 나는 순간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 아마도 세월호 유가족들이 곁에 없고 나 혼자 그 기념사를 들었다면 엉엉 울고 말았을 것이다.
29년만이었다. 세상에, 별로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내 동생, 박래전을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불러주다니…. 뜻밖의 큰 선물을 받았다. 너무도 감격스러웠던 그날 오후 내내 기자들의 전화에 시달렸지만 가급적 담담하게 소감을 전하려고 했다. 누군가가 불러주는 일이 이토록 감격스러울 수 있다니, 나도 별 수 없이 유가족인가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이름이 불리지 않은 사람들과 그 유가족들은 어떨까 생각되었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광주의 아픔을 간직하며 싸우다가 죽은 사람들, 아니 그 뒤에도 더 많은 이들이 있을 터인데 누구는 불리고 누구는 불리지 못하고…조성만은 1988년 5월 15일 명동성당에서 할복 투신했고, 사흘 뒤인 5월 18일 단국대생 최덕수는 학교 교정에서 분신했다. 겨우 만 스무 살이었다. 내 동생 래전이는 최덕수의 분신이 안타까워서 화상 치료를 받는 한강성심병원을 내내 지켰고, 장례식 전 과정도 함께 했다. 그런 래전이를 기억하시는 최덕수의 부모님, 특히 주름이 얼굴 가득하면서 늘 손잡아주면 안아주시던 그의 어머님이 생각났다. 그날 밤 불리지 않은 8명의 자료를 찾아서 기념사 형식으로 적어서 애초의 대통령의 연설문에 들었다던 12명의 이름을 부르는 글을 페북에 올렸다.
세상에는 유가족들이 참 많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산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유족이 된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그들을 유족이나 유가족으로 기억하지는 않는다. 유족회, 유가족협의회로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전쟁민간인학살희생자 유족회는 전국에 걸쳐 있다. 제주에는 제주4.3유족회가 있고, 광주에는 5.18유족회가 있고, 서울에는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가 있다. 안산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대부분인 4.16세월호가족협의회가 있다. 전쟁에서 학살당했고, 폭도와 빨갱이, 부역자로 몰려서 학살당했고,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던진 사람들의 가족들이 모였다. 그리고 세월호참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도 남아서 단체를 구성하고 있다.
이처럼 무언가 특별한 사연이 있는 죽음들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유족·유가족이다. 이 땅에는 억울한 죽음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의 억울한 죽음 위에 대한민국이 서 있다. 해원을 못해줄망정 억울함을 풀겠다는 유가족들에게 가했던 가혹한 처사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유가족들은 유가족이란 이유로 감시와 사찰을 당해야 했고, 연좌제에 묶여서 고생해야 했고, 온갖 불이익을 당하고 이 악물고 살아야 했다. 그런 고통을 못 이겨서 세상을 등진 사람도 많았다.
그런 유가족들에 대한 가해행위는 21세기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도 행해졌다. 자식의 억울한 죽음을 풀겠다고 거리에 나선 그 가족들에게, 아이들이 물속에서 왜 죽어갔는지를 알려달라고 울고불고 다니는 그들에게, “지겹다”고 하고 “시체장사”라는 비난까지 해댔다. 대통령부터 나서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블랙리스트도 만들어 문화예술인들을 탄압했다. 그런 유가족들이 견디면서 세상을 바꾸어내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은 사연이 저마다 다르고, 억울함의 이유도 다 다르겠지만 유가족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세상이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기억해 달라는 것은 알아달라는 것이기도 하다. 같은 이유로 유가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세상에서 잊히는 일이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것, 내 가족이 왜 죽었는지를 아무도 몰라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누군가가 죽어간 내 가족의 이름을 불러주면 감격하기 마련이다. 세월을 견디며 살아온 이유와도 같은 것, 그것이 호명이다.
그러기에 유가족들은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어주고, 세월호 진실규명을 같이 외쳐주고, 먼 길을 손잡아 동행하였던 그 모든 사람들이 유가족들이 버티며 살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지지와 응원, 그리고 연대…그 억울함을, 분함을, 그리움을 알아주는 것만큼 유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공감 뒤에 그 유가족들이 원하는 바,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한다면 유가족들은 편히 눈감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먼저 간 사랑하는 가족의 곁으로 갈 수 있기에 그런 죽음은 오히려 기다려진다고까지 말하지 않던가.
세월호 유가족들이 수없이 되뇌는 말이 있다. 자신과 같은 유가족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한다, 그런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야 저 세상에 가서 아이들을 떳떳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다. 유가족과 동행하게 되면 그만큼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런 유가족들의 견딤과 버팀과 걸음, 그리고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의 동행이 있었기에 세상은 좀 더 좋아졌고, 좀 더 민주화가 되었지 않았을까.
세상의 각자 다른 사연을 간직한 유가족들을 기억하는 일, 그건 다시는 그 유가족들이 겪은 비참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런 작은 다짐 하나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고 바래본다.
글_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