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통신] 세월호 사건, 사법처리가 전부인가? – 홍성수(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에도 세월호 실종자 숫자는 29명에서 멈춰있다. 상대적으로 검경합동수사본부의 수사 속도는 빠르게 느껴진다. 수사 착수 한 달 만에 선장과 승무원은 물론이고, 선사와 계열사의 임직원, 유병언 전 세모회장 일가, 해양 관련 관료들, 한국선급, 인천운항관리실, 선적, 고박, 증축업체 등을 상대로 수사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선장과 주요 승무원에 대해서는 도주 선박죄 외에 살인죄를 적용하기로 했으며, 해경의 과실 여부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하지만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면, 문제 해결의 향방을 ‘수사’와 ‘법적 처벌’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수사를 통해 법적 책임을 규명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그리고 재발방지를 위해서도 책임자는 처벌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고의 원인을 밝혀내고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당면과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수사에만 의존할 수 없다. 수사는 개인의 책임을 밝혀내는 것에 한정될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검찰의 무능이나 정치적 중립성과는 다른 문제다. 국회에서는 특검을 임명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지만, 특검도 결국 형사처벌이 목적인 이상 동일한 한계를 갖는다.
실제로 세월호 사건의 경우 이미 사고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된 수십 가지의 요인들이 하나하나 다 밝혀지고 있다. 이미 지적된 것들만 해도, 선장과 선원의 직접적인 행위 외에, 증축 등 선박 자체의 결함, 과적, 평형수, 고박 부실, 선원들의 고용조건, 운항관리자의 운항점검 부실, 실소유주의 비리, 해경의 과실, 해상교통관제센터와 상황실 운영 문제, ‘관(官)피아’의 문제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것들 중에는 사법처리가 가능한 것도 있지만, 법의 영역이 아닌 윤리적 문제나 정책적인 문제들도 포함되어 있다. 수사기관의 소관사항이 아니지만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는 얘기다.
▲ 사고 전 인천항에 정박한 세월호. 사진 출처 _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Ferry_Sewol_1.jpg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서 큰 사건사고가 터지면 검찰이 최전선에 서서 문제 해결을 주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검찰은 검찰대로 해야 할 일이 있고, 다른 국가기관이나 사회의 다양한 층위에서도 각자의 몫이 있다. 세월호 사건에서도 검찰 수사만 지켜보고 있을 게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필요한 모든 대책을 논의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미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국정조사나 국정감사 외에도, 정부나 정치로부터 독립된 ‘시민조사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이 위원회에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번 사고의 원인이 된 모든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밝혀내고, 그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대책들을 꼼꼼하게 제시해야 한다.
물론 엄정한 수사와 관련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도 중요하다. 다만 그 방향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한 고민이 필요하다. 당장은 사고에 관련된 사람의 죄책을 밝혀내고 있는 것이 그것대로 중요하지만, ‘사후’처벌뿐만 아니라 사고 ‘이전’에 안전‘예방’을 소홀히 한 행위에 대한 철저한 규제가 중요하다. 이번에 드러난 것처럼 연안 여객선 관리가 이렇게 허술한데도, 사고는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사고를 낸 자들이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나에게 닥칠 일’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을 아무리 엄하게 처벌해도, “설마 내 배가 사고가 나겠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다수라면 처벌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규제가 효과를 거두려면, 사고 이전에 안전예방규범의 미준수 자체가 범죄라는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또한,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의 죄책을 묻는 것도 필요하다. 안전에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형사처벌이 조직 자체를 벌함으로써 조직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결과적으로 ‘조직적’ 차원에서 사고예방을 위해 노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안전문제에 관련된 문제를 직접 실행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들의 책임을 철저하게 묻고, 이들 모두가 집단적으로 안전문제에 민감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조직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입법적 차원의 개선도 요구된다. 영국의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이나 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punitive damage)처럼 조직(기업)적 차원에서 강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법 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조직 자체가 경각심을 갖게 되고, 조직적인 대책을 마련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화는 경제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기업이 스스로 안전에 민감하도록 하는 동기를 제도적으로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시민들의 관심이다. 대형사고가 나도 책임자 몇 명을 처벌하는 것으로 넘어가고 그렇게 위험이 방치되면 또 다른 사고를 막기 어렵다. 몇몇 사람들이 사법처리 되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문제가 해결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 해결의 일부일 뿐이다. 그동안 의례히 그래 왔던 것처럼 정형화된 사법처리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개인을 형사처벌하는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문제들을 집요할 정도로 끈질기게 묻고 따져야 한다. 이것은 수개월이면 종료되는 사법처리 절차와는 달리 십수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세월호를 잊어서는 안 된다.
글_홍성수(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